[쿠키 연예] 고려의 이상을 품고 거란의 침략에 맞섰던 고려시대 최고의 ‘여걸’ 천추태후의 일대기를 그린 KBS 2TV 주말사극 ‘천추태후’가 오는 27일 78회로 종영된다. 원래 80회였지만 추석 연휴가 겹쳐 2회 분량을 줄였다. 이 드라마는 초반 시청률 20%를 기록하며 인기사극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중반부터 캐릭터가 엉성하고, 역사왜곡 논란까지 겹쳐 아쉬운 마침표를 찍게 됐다.
‘천추태후’는 2002년 중국의 동북공정을 계기로, 거대한 고구려의 옛땅을 회복하고자 했던 천추태후(채시라 분)를 조명해 보자는 의도에서 제작됐다. 역사에서 궁중 암투를 벌이는 악녀로 묘사된 인물을 진취적인 기상을 지닌 여걸로 재조명한다는 파격적인 설정은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지나치게 파격적이다보니 역사왜곡 논란으로 이어졌다. 아들을 몰아내고 김치양 사이에 낳은 아들을 왕위에 올리는 ‘악녀’가 갑자기 ‘영웅’으로 둔갑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상상에 의존한 이야기들이 지나치게 많아진 것도 흠이다. 천추태후가 의병을 일으켜 안융진 전투에 참가하는 내용이나 실제 역사에선 경종의 충신인 최지몽이 드라마에서는 경종을 배신하는 설정 등이 무리를 불렀다.
하지만 주연배우들의 열연은 돋보였다. 첫 회부터 아역배우들의 열연과 경종(최철호)의 신들린 연기가 화제를 일으켰다. 채시라는 대역을 되도록 배제하고 전쟁터를 누비는 등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를 선보였다. 거란국 왕 앞에서 장수답게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는 강조(최재성)의 죽음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명장면으로 회자됐다.
하지만 인물들의 캐릭터가 충분히 살지 않아 극의 긴장감이 떨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주인공만의 색다른 매력 구축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MBC 사극 ‘선덕여왕’에서 주인공 미실은 강렬하면서 묘한 매력을 내뿜는데 반해, 천추태후는 다소 평면적으로 그려졌다는 평이다. 사랑하는 남자 김치양 앞에서는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고, 정국을 장악하는 자신감과 도도함이 부족하게 묘사됐다. 또 천추태후가 세상의 비난을 무릅쓰고 선택하는 남자 김치양도 흐름 속에 녹아들지 못하고 답답하게 그려졌다. 평생을 짝사랑한 천추태후에게 배신을 당하는 강조의 캐릭터 역시 강렬하지 못했다.
‘천추태후’는 초반에 빼어난 영상으로 시선을 끌어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천추태후가 곰과 맞닥뜨려 싸우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장대한 전투장면 등도 영화를 방불케 했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촬영에 쫓겨서인지, 전차를 10여대 세워놓고 ‘대군’으로 묘사하거나 전투신의 컴퓨터 그래픽이 조악해지는 등 생동감이 떨어져 아쉬움을 남겼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