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제작비로 끝내 막 내리는 ‘격동 50년’

부족한 제작비로 끝내 막 내리는 ‘격동 50년’

기사승인 2009-10-04 17:06:00

[쿠키 문화] MBC 라디오 다큐멘터리 ‘격동 50년’(95.9㎒·월∼토요일 오전 11시40분)이 다음달 17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1988년 정통 라디오 다큐멘터리를 표방하며 문을 연 ‘격동 50년’은 충실한 자료수집과 취재를 통해 정치사의 이면을 속속들이 보여주면서 장장 21년 동안 전파를 탔다. 방송을 거쳐간 총 6명의 PD 가운데 현재 연출을 맡고 있는 오성수 CP(53·사진)가 최장 기간(7년6개월) 머물렀다. 서울 여의도 MBC 녹음실에서 1일 만난 오 CP는 “매번 개편이 있을 때마다 폐지 얘기가 있었는데 결국 이렇게 없어지게 됐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는 폐지의 가장 큰 이유로 제작비를 꼽았다. “지금은 라디오시대’나 ‘싱글벙글쇼’ 같은 인기 프로그램도 진행자 2명에 작가 2∼3명이면 족한데, 라디오 드라마는 한 회당 10명 이상의 성우가 필요하다”며 “MBC 입사 26년 만에 추석 보너스가 안 나온 해는 처음일 정도로 회사가 어려운 상황인데 오죽하겠냐”고 설명했다.

하긴 ‘격동 50년’에는 그간 제작비 압박이 끊임없이 거론될 정도로 많은 성우들이 투입됐다. 줄잡아 연인원 10만 명을 헤아리는 기록적인 숫자다. 회당 출연자를 평균 잡아 15명이라고 치면 주 7회 방송 시 ‘365(일)×15(명)×21(년)=11만 4975명’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주 6회 방송으로 계산해도 9만 8000명을 넘는다.

시대적 변화도 프로그램 폐지의 배경이다. 오 CP는 “10년 전까지만해도 청취율이
9∼10% 나왔지만 요즘은 라디오를 집중해서 들으려하지 않는다. 4%대에 정체된 지 오래”라고 말했다. 84년 ‘집념‘이라는 라디오 다큐멘터리 ‘입봉’한 그는 94년부터 ‘격동50년’을 담당했다.
오 CP는 “민감한 아이템도 많이 다루려고 했고 취재도 정말 열심이었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방송으로 96년 7월부터 9월까지 전파를 탄 21화 ‘그 해 5월의 광주’를 꼽았다. “아무도 못 건드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맹렬하게 일하던 오 CP는 97년에 이 프로그램을 떠났다가 2005년에 복귀했다.

최근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3김’의 일생을 조명하는 시리즈를 준비중이었다. 그는 “DJ부터 차례로 YS, JP를 다루려고 했는데 (프로그램 폐지로) 할 수 없게 됐다”고 미련을 내비쳤다.지나간 3김 시대처럼, ‘격동 50년’도 라디오 방송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
이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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