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귀한 선물’ 이주민 위해 현지책 기증하는 사람들

‘너무나 귀한 선물’ 이주민 위해 현지책 기증하는 사람들

기사승인 2009-10-04 17:19:01
[쿠키 사회]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영등포동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하자센터). 연신 생글거리던 두 여대생이 알록달록한 책을 너댓 권씩 들어 보이며 말했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 있는 서점에서 사 왔어요. 몇 살짜리 애들이 받을지 몰라서 숫자 공부 책이랑 동화책부터 수준별로 샀어요.” 모두 12권이었다.

표지 그림으로 보아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와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행복한 왕자’가 섞여 있는 듯했지만 고불거리는 글자는 도저히 해독할 수 없었다. 네팔 문자로만 적힌 이 책들을 읽을 사람은 따로 있었다. 네팔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살고 있는 이주민과 그 자녀들이라고 여대생들은 설명했다.

고려대 인문학부 1학년 장효선(19)씨와 이화여대 사회과학부 1학년 이주영(19)씨는 “우리나라에 사는 네팔 여성의 아이들이 어머니 나라의 글을 접할 수 있길 바라며 책을 골랐다”고 말했다. 이들은 네팔로 떠나기 전 여행 기획자에게서 국내 이주민들이 모국어 책에 목말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책을 사오기로 다짐했다.

두 새내기 여대생은 8월 24일부터 지난달 4일까지 히말라야 산맥 남쪽에 접한 네팔 고지대를 걸어서 여행했다. 여행 전문단체 여행협동조합 맵(MAP)이 기획한 여정이었다. 여행 기획자 2명과 다른 한국인 여성 9명이 동행했다. 장씨는 여자끼리 가는 여행이라는 데 끌렸고, 이씨는 히말라야의 절경이 탐나 여행길에 올랐다.

막상 현지에서도 네팔어로 쓰인 책을 간단히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카투만두 중심가 타멜 거리에 있는 서점에서 점원들은 책장 구석구석을 뒤적이고서야 겨우 몇 권을 찾아냈다. 손님 대부분이 외국인 관광객이어서 거의 영문 서적만 비치해 놓고 있었다. 현지인을 상대로 장사하는 서점을 물어물어 찾아갔다는 여행 기획자들은 “임신이나 출산에 관한 책을 달랬더니 해부학 책을 갖다주는가 하면 한참 만에 동화책을 찾아내선 점원들끼리 읽으며 킥킥대더라”고 전했다.

이들은 책을 모두 비영리 공익단체 아름다운재단에 기증했다. 재단은 네팔 중국 몽골 태국 라오스 베트남 필리핀 등 아시아 각지에서 건너온 책 7000여권을 이달 말 전국 이주민 도서관 20곳으로 분배할 예정이다. 인도네시아 발리를 여행한 부부가 현지 서점 직원이 재미있게 읽었다며 추천한 소설책을 사 왔고, 라오스의 한 청소년센터에서 도서관과 영어 교실을 운영하는 활동가가 도서관에 있던 책들을 기증하기도 했다. 대학생들은 베트남 등지에 봉사활동을 다녀오면서 책을 사오는 방법으로 사업에 동참했다.

아름다운재단 김아란 간사는 “2007년부터 지금까지 아시아 10개국 언어로 쓰인 책 1만2000여권이 전국 29곳의 이주민 도서관에 전해졌다. 이 책들은 국내에서 쉽게 구할 수 없어 이주민들에게 매우 귀한 선물이다. ‘우리 안의 이웃’을 배려하는 운동에 더 많은 분이 동참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강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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