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토 이사무, ‘어느 살육 사건’ 전문

사이토 이사무, ‘어느 살육 사건’ 전문

기사승인 2010-03-01 20:48:00
<김문길 교수 해석>

어느 살육 사건-사이토 이사무(齋藤勇)

아르메이나 만행 아닌가 / 300년 전 피에도엔도 살육 아닌가 / 아시아 대륙 동쪽 끝에서 벌어진 참사 / 영원의 평화를 기도하는 회중에 생긴 일이다 / 우리가 사랑하는 조국(일본)에서 / 인종차별을 철폐해야 한다고 / 소위 지사들이 힘줘 말할 때다

5대 열강 가운데 하나인 군자국(일본) 방백이 / 빼앗은 영토의 백성을 속박하니 / 군자국 관헌의 억압을 못 견뎌 / 자유와 권리를 찾겠노라 시위를 일으켰을 때 / 필경 서양 이방 종교의 소행이라며 검을 빼 진압했다 / 몇 월 며칠 어느 교회로 모이라 하니

그곳은 한적한 시골 / 목조로 지은 조그만 교회가 서 있었다 / 흰 옷 입은 순박한 농민들 / 어떤 이는 중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떠나 / 어떤 이는 만삭인 부인을 두고 / 어떤 이는 용케도 살아남았건만 / 일요일도 아닐 진데 교회로 모이라 하니 / 무서운 호령이고 엄한 헌병의 명령이기에

모인 자 20~30명 중 기독교를 믿지 않은 자도 있었다 / 관헌은 심문했다, 왜 폭동에 가담했느냐고 / 아아, 내 조국이 이렇게 망하고 희망은 없다니 / 당국자가 선정을 가지고 행하지 않는다면 / 누가 굴욕과 욕설과 멸시를 참겠는가 / 만약 무단과 폭력으로 / 백성을 겁주는 위정자가 있다면 / 기독교도들은 관헌을 향해 / 신교의 자유를 요구했는지 누가 알리요 / 그러한 언동이 있었다 하더라도 / (그들을) 우상숭배를 강요하는 / 불유순(不柔順)이라고 누가 말하리오

돌연의 총소리 한 발, 두 발 … / 회당은 금세 잿더미로 변한 곳 / 불을 들고 온 사람도 있었다 / 타는 불꽃은 창밖으로 새 나오니 / 관헌의 독수에 타버린 망국 백성을 / 서양 사교를 믿는 자라고 / 소름 끼치고 떨리니 / 죽은 시체는 타지도 않네 / 그것 뿐 아니라, 한적한 마을의 집도 불태우고 / 타고 또 타고 40여 채 부락은 / 일순간 잿더미로 변해 / 어떤 이는 잿더미에 우두커니 서 있으니 / 아직 연기가 코 밑에도 오지 않았듯 / 젖꼭지를 물린 채 애를 안고 있는 어머니 / 도망가다 넘어진 늙은 할멈들 / 검게 타버린 시체는 본체만체

헤롯왕이 저지른 살육보다 더 크지 않은가 / 피에도엔도나 아르메니아 참사보다 덜하다고 하겠는가 / 시마바라(島原)나 나가사키(長崎)에서 있던 일이랄까 / 군자국에 그러한 예가 드물다고 누가 말했나 / 이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 또 있을 텐가 / 저주받지 않을까 / 동해 건너 군자의 나라여

어떤 신문은 간단히 전하지만 병합국사(倂合國士) 기독교도는 군데군데 모여 소동을 일으키니 / 이것은 해산을 명하는 관헌에 대한 반항으로 / 폭동을 일으켜 죽은 자 20여명, 불에 탄 가옥은 수십여 채 / 또 어떤 신문은 일번반구도 기록하지 않으니 / 차가운 아침 춘풍에 떨어진 꽃 같을세



(복음신보 1919년 5월 22일 제1247호 1면)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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