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북 핵 정책 기조 변화의 중심에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있다. 클린턴 장관은 11일(현지시간) ABC방송의 ‘디스 위크’ 프로그램에 출연해 북한은 핵무기를 갖고 있는 국가로 이란은 핵무기 개발을 추구하는 나라로 분류했다.
앞서 9일 켄터키주 루이빌 대학에서의 연설에선 “북한이 1∼6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 말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8개국(G8) 외무장관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도 “우리는 이미 핵무기들을 가진 북한과 같은 불량정권으로부터 오는 새로운 위협을 인식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과거 미국 정부가 북한에 대해 ‘핵 능력을 갖고 있다’거나 ‘핵 장치를 갖고 있다’는 등의 애매모호하게 표현해왔던 것과는 분명히 차별화된다.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클린턴 장관의 일련의 언급이 정치인 출신 장관으로서의 일회성 실수가 아니라,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미국이 실질적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동안 북한의 핵 보유는 미국 언론과 과학자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져왔다. 미국 과학자연맹(FAS)는 북한이 최대 1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고 추정해왔다.
워싱턴포스트(WP)는 12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제1차 핵안보정상회의에 전세계 9개의 핵 보유국 중 북한을 제외한 8개국만 참석한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북한을 공식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했을 경우 북한이 북·미 양자 회담과 6자회담 등에서 협상 카드로 활용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또 잇따른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통해 국제 사회로부터 핵보유국 지위를 획득하려 하고 있는 북한의 전략에 말려드는 형국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위상은 더욱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지난 6일 발표된 핵태세 검토보고서(NPR)에서 핵공격 배제 대상에 북한과 이란을 포함시킨 것도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정치적 선언으로 풀이된다.
결국 미국으로선 군사적 측면에서 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맞춰 각종 정책을 수립하되 국제외교적 측면에선 핵보유국 불인정 정책을 고수하는 이중 전략을 계속 구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