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섭 기자의 오프더레코드] 휴대전화 폭발, 피해자 ‘합의서’ 보니…“아주 가관”

[김현섭 기자의 오프더레코드] 휴대전화 폭발, 피해자 ‘합의서’ 보니…“아주 가관”

기사승인 2010-05-18 16:40:00
어제는 IT 분야에서 가장 큰 화두는 유명 회사의 휴대전화 단말기의 폭발이었겠죠. 자신의 휴대전화기가 폭발했다고 주장한 미국 사용자가 나온 후 불과 하루가 지나 국내에서 같은 사례가 나왔으니 소비자들도 깜짝 놀랐고 해당 회사도 난감했을 것입니다.

잊을만하면 나오는 휴대전화 폭발 사고의 진행 과정을 쭉 지켜보다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문제의 제품을 만든 회사는 밑도 끝도 없이, 최소한의 객관적 근거도 없이 “‘일단’ 제품 자체의 결함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정확한 원인은 조사를 해봐야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과거의 기억을 한 번 더듬어보시죠. 사건이 터진 후 수주일이 지나건, 수개월이 지나건 “조사결과 당시 OOO 제품의 폭발 원인이 이렇게 나왔다”는 회사 측의 납득할만한 설명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런 내용을 다룬 보도나 기사를 본 적이 있으십니까? 제 기억에는 사고가 났을 때 소비자고 언론이고 할 것 없이 냄비처럼 들끓었다가 조용히 잊혀져갑니다.

예전에 모 회사의 휴대전화 폭발 사고를 취재했던 적이 있습니다. 전 이 때 이 회사가 피해자에게 제시한 ‘합의서’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아주 가관이다”라는 표현을 쓰는 줄은 아시죠? 이 합의서 역시 최소한 제 눈에는 ‘아주 가관’이었습니다.

합의서에는 이런 조항이 명시돼 있습니다.

△ 합의서 체결 이후 ‘갑(휴대전화 주인)’은 즉시 ‘갑’이 철회할 수 있는 모든 언론(인터넷 포함)에 내용을 삭제하고 이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또한 추후 언론 및 인터넷, 타인 등에게 공개하지 않도록 한다.(블로그 등)

좋습니다. 기업은 어떤 상황이라도 대외적 이미지 손상을 방지해야 하니 최대한 이해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조항이 저를 더 놀라게 했습니다.

△ ‘을(회사)’은 합의 후 ‘갑’에게 반박 보도나, 시료 검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을 것이며 기술적인 부분을 공개할 경우 ‘갑’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한다.

피해자에게 시료 검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즉, 휴대전화 주인은 자신의 휴대전화기가 제품 결함으로 폭발한건지, 자신에게 무슨 과실이 있어 폭발한건지 알 수 없다는거죠. 만약 회사측에서 주장하는대로 제품 결함이 아니라면, 내가 무슨 실수를 했길래 이런 일이 벌어졌으며, 앞으로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을 조심해야하는지 등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사고가 난 후 “정확한 원인은 조사를 해봐야 알 수 있다”는 말은 “우리만 알 수 있다”는 의미인가요?

휴대전화 폭발은 중상이나 화재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큰 사고입니다. 사고의 크고 작음을 떠나 피해자가 객관적 조사를 기반으로 한 원인을 몰라야 한다는 건, 회사측의 어떤 말 못할 속사정이 있는지 몰라도 선뜻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합의서라는 것은 회사마다 다르기 때문에 업계 전체가 이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휴대기기 제조업체는 대부분 국내 굴지의 기업들입니다. 이런 기업들의 뭔가 다른 대처를 기대해봅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김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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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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