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등려군’ 헤라 “귀화 후 8년…국민가수 되고 싶어요”

‘제2의 등려군’ 헤라 “귀화 후 8년…국민가수 되고 싶어요”

기사승인 2010-07-06 11:12:00

"[쿠키 연예] 영화 ‘첨밀밀’(甛蜜蜜, 티엔미미)의 O.S.T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 위예량따이삐야오워디씬)을 불러 스타덤에 올랐던 故 등려군(덩리쥔). 그의 유곡을 불러 ‘제2의 등려군’으로 급부상한 솔로 여가수 헤라(한국명 연성옥, 중국명 옌청쉬)가 디지털 싱글 ‘몽중인’(夢中人)으로 돌아왔다.

헤라가 살아온 길을 반추해보면 어떤 에너지를 가진 가수인 지 느낄 수 있다. 헤라는 ‘중국 랴오닝성에서 옌청쉬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몰고 다녔을 정도로 ‘노래’에 끼를 보인 예비 스타였다. 열일곱 살 때 단 1명만 뽑는다는 국립가무단에 당당히 입단해 중국 CCTV, LNTV 공동주최로 진행된 가요대회에서 대상을 거머쥐었으며, 중국 MTV 가요부문 대상을 수상하는 등 화려한 이력이 그의 노래 실력을 입증해주고 있다.

국립가무단에 입단하면 탄탄대로를 달릴 수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다른 곳을 향해 번져나갔다. 우연히 접한 한국 가요에 매료돼 1992년 ‘낭랑 18세’ ‘바람 바람 바람’ ‘애모’ ‘미련 때문에’ ‘잠깐만’ 등 17곡을 직접 번역해 앨범을 냈다. 그러던 중 한국어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위해 유학을 결심하게 됐고, 자신이 만든 앨범이 서울의 심장부인 남대문 시장에서 퍼져나가는 환희를 맛보게 된다.

“유학시절 한국에 와서 우연히 남대문 시장을 들렸는데 제 목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자세히 살펴보니 길거리 좌판 위에 제 얼굴이 담겨 있는 테이프가 놓여있고, 거기에서 제가 불렀던 가요가 흘러나오더라고요. 정말 신기하고 기뻐서 남대문 시장 일대를 샅샅이 뒤져 30여 장의 제 앨범을 사버렸어요.”

평소 동경했던 나라인 한국에서 자신의 노래를 들어주고 좋아해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처음에는 마냥 가요가 좋고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찾아왔지만, 두 발을 딛고 서서 보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상상했던 것 이상의 매력을 느꼈다. 그러던 중 ‘목표의 눈물’ ‘아빠의 청춘’ 등을 남긴 가요계 거목인 故 손목인 작곡가의 제의를 받고 그의 마지막 제자가 돼 한국과 인연을 이어가게 된다.

“중국은 한국처럼 산이랑 물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지 않아요. 한국은 아담하면서도 자연이 아름다워 정말 예쁜 나라인 것 같아요. 풍경에 정말 반했습니다. 한국에서의 삶이 좋아 3개월씩 비자를 연장하면서 살다가 한국으로 완전히 건너오기로 결단했죠.”



중국에서 여러 채의 건물과 땅을 가진 부잣집 딸이었던 헤라는 부와 명예를 과감히 버렸다. 울며불며 매달리는 가족과 지인들의 손길도 뿌리쳤다. 그만큼 한국이 좋았고, 선량한 제작자를 만나 음반 작업에 매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모든 게 멈춰버렸다. 음반 제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발음’이 문제였다. 그러나 “그 발음으로는 앨범을 내기 힘들다”는 냉혹한 평가를 받고 좌절하기보다 이내 연습에 몰두했다.

“혀 근육의 유연성을 키우기 위해 칫솔로 혀를 문지르고 쇳덩어리를 들어 올리는 연습을 하면서 발음을 교정했어요. 전 꼭 한국에서 가수로 성공하고 싶었고, 제 목소리가 담긴 음반을 내고 싶은 마음이 강했기에 혀에서 피가 났을 정도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죠. 지금은 웬만한 한국어 발음은 거의 다 할 수 있지만, 실력이 녹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매일 뉴스를 보면서 연습하고 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그의 열정과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 2007년 1집 앨범 ‘천년동안’을 발표하며 가요계에 데뷔했다. 타이틀곡은 김종찬의 ‘사랑이 저만치 가네’, 최진희의 ‘천상재회’, 조용필의 ‘기다리는 아픔’ 등을 작곡한 김정욱과 시인이자 작사가인 박대홍이 만든 ‘천년동안’이 그에게 선물처럼 다가왔고, 발표되자마자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이후 3년 동안 크고 작은 무대를 거치면서 ‘한국가수 헤라’로 거듭났다.

“중국말에 ‘무대에 서는 것은 소방관이 불을 끄는 것과 똑같다’고 하는데요. 불이 나면 소방관이 부리나케 출동해 불을 끄느라 여념이 없잖아요. 일단 무대에 서면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자기의 노래에 책임을 지고 내려와야 한다는 걸 의미하는데요. 저도 무대에서만큼은 완벽한 가수의 모습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중국에서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건너온 헤라. 열악한 환경도 어려운 한국어 발음도 그의 고집과 신념을 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 그가 정진해야 할 목표는 단 하나다. 바로 ‘한국가수’이자 ‘국민가수’로 인정받는 것이다.

“중국인으로 살았을 때 제가 한국 노래를 부르면 ‘아 중국인이구나’하고 신기하게 쳐다봤는데, 귀화한 후에는 ‘굳이 한국인이 될 필요가 있었냐’며 냉혹한 시선으로 바라보시는 것 같아요. 낯선 나라에서 한국인으로 산다는 게 쉽지 않지만 ‘제2의 고향’인 한국에서 가수로서 당당히 인정받고 싶어요. 그리고 ‘귀화가수’라는 꼬리표에서 벗어나 ‘국민가수’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거고요. ‘한국가수 헤라 노래 참 잘하네’라는 칭찬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테니 지켜봐주세요.”

‘국민가수’가 되겠다는 포부를 담아서 낸 노래 ‘몽중인’. ‘꿈속을 걷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이 노래는 ‘진정한 한국가수가 되겠다’는 헤라의 간절한 바람이 담겨진 것이 아닐까.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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