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노래를 보다] ‘삐리빠빠’ ‘아브라카다브라’…가사가 착하지 않은 이유

[Ki-Z 노래를 보다] ‘삐리빠빠’ ‘아브라카다브라’…가사가 착하지 않은 이유

기사승인 2010-07-24 13:17:00

[쿠키 연예] 2년 전부터 가요계에는 ‘후크송’ 열풍이 불었다. 걸그룹 원더걸스의 ‘텔미’(Tell me)를 시작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더니, 반복적 멜로디와 가사에 무게를 둔 곡들이 우후죽순처럼 나왔다. ‘후크송’은 지금도 쏠쏠한 재미를 줘 그냥 버리기엔 아까운 카드다. 물론 예전만큼 관심을 받지 못하지만 세 집 걸러 한 집 정도는 찾아볼 수 있다.

요즘 인기를 끄는 곡 중 하나인 브라운아이드걸스 나르샤의 ‘삐리빠빠’도 도입부의 반복되는 멜로디가 인상적이다. 가사가 반복되고 멜로디가 비슷한 흐름이라는 점에서 ‘후크’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작사가 김이나와 작곡가 이스트포(East4)가 만든 ‘삐리빠빠’는 조금 색다르다. 이스트포가 멜로디를 작업한 뒤 가이드 가수(작곡가가 멜로디를 만들고 임시로 가사를 붙여 부르는 가수)에게 ‘삐리빠빠’라는 단어로 불러보라는 주문을 한 것이 가사로 고착화 된 경우다. 김이나 작사가로부터 ‘삐리빠빠’의 탄생 과정과 그의 또 다른 히트곡 ‘아브라카다브라’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이나는 멜로디가 먼저 나오면 음악을 충분히 접한 뒤 가사를 입히는 작사가다. 그는 ‘삐리빠빠’라는 가사를 처음 들었을 때, 데모 버전 그대로 가는 것에 흔쾌히 동의했다. 이 단어만큼 멜로디와 곡의 분위기를 잘 살려줄 수 있는 단어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삐리빠빠 삐리빠빠 삐리빠빠 삐리빠빠 / 삐리빠빠 삐리빠빠 back back back back back / 삐리빠빠 삐리빠빠 삐리빠빠 삐리빠빠 / 삐리빠빠 삐리빠빠 back back back back back(삐리빠빠 中)

“이스트포 작곡가가 만든 단어는 리듬을 타기 적당하죠. 작사가는 멜로디를 최대한 생생하게 살려주는 가사를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제가 멜로디를 먼저 받은 뒤에 가사를 써서 그런지 모르겠지만요. 그런데 이번 ‘삐리빠바’는 그 단어 자체가 멜로디랑 잘 어울려서 그대로 가도 좋겠다고 판단해 넣은 거고요.”

아니 무슨 이런 일이 다 알다가 모를 일이다 이건 진리인거다 / 슬픔도 기쁨도 없는 곳 좀 더 확 가도 탈이 안 나는 여기 / 뭐라고 말해야 하나 ah ah ah (이 무서운 나의 bad bad dream 말이야) / 말하면 믿기는 하나 ah ah ah (나 사실은 깨어나고 싶다고 말이지)(삐리빠빠 中)

‘삐리빠빠’는 도입부 가사부터 강렬하게 귀를 사로잡아서 그런지 나머지 가사도 상당히 거칠고 직설적이다. 김 작사가는 댄스곡의 멜로디와 흐름을 가사가 최대한 살려줘야 했기에 운율이나 어감 등 언어의 기술적 측면을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댄스곡에서는 가사를 늘어뜨리거나 길게 쓸 수 없어요. 간결하고 직설적으로 써야 빠른 템포와 멜로디를 살려줄 수 있죠. 그래서 ‘삐리빠빠’는 착한 가사를 쓸 수 없었답니다. ‘말하면 믿겠냐’는 자조 섞인 멘트와 ‘확 가도 탈이 안 나는 여기’까지처럼 자극적 뉘앙스를 넣었죠. ‘다 알다가 모를 일이다 이건 진리인거다’에서 ‘다’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넣은 것도 멜로디의 리듬을 규칙적으로 타게 하려고 넣은 거고요.”

이러다 미쳐 내가 / 여리여리 착하던 그런 내가 / 너 때문에 돌아 내가 독한 나로 변해 내가 / 널 닮은 인형에다 주문을 또 걸어 내가 / 그녀와 찢어져 달라고 고(아브라카다브라 中)

‘아브라카다브라’도 ‘삐리빠빠’처럼 발라드 곡에서나 볼 수 있는 감미롭고 따뜻한 일명 ‘착한’ 가사를 쓸 수 없었다고. 이민수 작곡가가 만든 하우스 계열의 전자음으로 구성된 멜로디에 가사를 붙여야 했기에 곡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잡았다.

사실 ‘아브라카다브라’는 ‘비비디바비디부’라는 가사로 쓰일 뻔했다. 김 작사가는 늘 머릿속에 ‘비비디바비디부’를 갖고 다니면서 적절한 멜로디를 만나면 사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지난해 SK텔레콤의 광고 캠페인으로 먼저 사용되면서 아쉬움이 남는 가사가 되고 말았다. ‘비비디바비디부’는 미국 월트 디즈니사가 만든 애니메이션 ‘신데렐라’에서 마법을 거는 요정이 외친 말로 ‘ㄷ,ㅂ’ 초성이 반복돼 리듬감이 느껴진다. ‘비비디바비디부’가 ‘아브라카다브라’ 멜로디에 쓰였다면 어땠을까.

“‘비비디바비디부’는 ‘다 이루어져라’는 긍정적 말이지만 ‘아브라카다브라’ 만큼 강렬한 느낌은 없죠. 게다가 멜로디가 몽환적이고 무거워서 ‘비비디바비디부’보다는 어둡고 짙은 느낌의 ‘아브라카다브라’가 더 잘 어울렸고요.”

리듬 자체가 무엇인가를 읊조리는 듯해 ‘아브라카다브라’라는 주문을 넣게 된 것이라고. 여기에 요즘 젊은이들의 사랑과 감정 표현 방식에 주력했다.

“‘아브라카다브라’는 ‘삐리빠빠’보단 현실적인데요. 젊은이들의 이별 방식과 표현 방법에 대해 다룬 가사죠. 과거에는 어떤 사람을 좋아하다가 큰 상처를 입고 헤어지게 되면 먼발치서 바라만 봤는데 요즘은 아니잖아요. ‘저 남자 저 여자랑 깨졌으면 좋겠다’는 발칙한 상상을 하죠. ‘사랑하니까 난 떠나. 넌 행복해야해’처럼 착한 척 하지 않잖아요. 멜로디가 빠르고 거친데 가사만 아름다우면 불협화음이 나기 때문에 멜로디에 보조를 맞춰 직설적으로 풀어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곡들이 반드시 좋은 것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란다. 김이나 작사가는 반복되는 멜로디나 가사가 담긴 곡에 대해 폄하하는 현상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들리는 것만 귀가 쏠려 음악적 완성도에 대해선 깊이 있게 관찰하지 못하는 현상이 일어나 안타깝다”고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쉽게 따라 부르는 가사일수록 정말 만들기 어렵거든요. 그런데 반복되는 가사나 쉬운 단어로 이루어진 노래를 듣고 ‘고민 없이 쓴 가사’ ‘단순한 곡’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들이 계신데요. 일단 이런 노래일수록 멜로디의 완성도가 높은 것들이 많아요. 가사도 마찬가지죠. 다른 단어를 넣어보면 확실히 곡의 느낌이 떨어진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삐리빠빠’라는 단어에 다른 걸 넣어보면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은 것처럼요. 작곡가나 작사가들이 청취자들을 단순히 중독 시키기 위해 무의미한 것들을 만들어내지 않아요. 곡의 느낌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가사나 멜로디를 변형시키죠. 모든 사람들을 다 만족시킬 수 없겠지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서 만들고 있는 만큼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댄스곡의 반복되는 경쾌한 가락에 맞춰 가사도 직설적으로 쓰게 됐다는 김이나 작사가. 짧고 간결한 문장이라 진한 울림이 덜한 편이지만,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그가 말하고 싶어 했던 의미가 떠오를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댄스곡에서도 잔잔한 감동을 얻어갈 수 있지 않을까.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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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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