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기(63·사진) 광주 남광건설 회장은 1982년 두 도시 자매결연단의 일원으로 미국 텍사스 샌안티니오를 방문했다. 그는 이 곳에서 일본 구마모토시가 기증한 정원을 보고 부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일본 고유의 건축문화가 이 정원을 통해 미국 현지인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샌안토니오는 인구 수 기준 미국 7대 도시로 광주와 여러 점에서 사정이 비슷했다.
고리 모양의 샌안토니오강을 따라 산책로와 공원, 상가를 조성한 이 도시의 ‘리버워크’는 나중에 청계천 복원사업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도시 어디를 둘러봐도 고작 1000명도 되지 않는 일본의 흔적만 있을뿐 교민 수가 8000명이 넘는 한국의 숨결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귀국한 그는 당시 광주시장 등에게 우리도 미국 땅에 한국식 정원을 만들거나 작은 누정이라도 세워보자고 건의했지만 ‘메아리 없는 외침’에 그쳤다.
사업에 몰두하느라 한동안 이를 잊고 지냈던 김 회장은 1990년대 중반 10여년만에 다시 경제교류 협력을 위해 샌안토니오를 방문했다가 묻어두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라도 정자를 세우겠다고 결심했다.
이후 1997년부터 8억 여원의 사재를 털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 정원인 전남 담양 소쇄원을 본 딴 가로 12m 세로 9m 높이 7.5m에 부지면적 1560㎡의 정자를 짓는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벌레가 먹는 것을 막고 영구보존을 하기 위해 목조건축 재료로는 가장 강도가 높은 캐나다산 소나무가 사용됐다. 그는 이를 한국으로 싣고 들어와 ‘장인’들의 손으로 가공한 뒤 컨테이너에 실어 현지로 다시 공수하는 등 그동안 고충도 마다하지 않았다.
못질을 전혀 하지 않는 전통 방식을 사용한다고 설명하자 미국인들은 물 위에 세우는 만큼 혹시 붕괴사고가 발생할지 모른다며 좌불안석했다.
그는 ‘견본’을 직접 가져가 한옥의 안정성을 직접 설명하고 한국 전통 방식대로 정자를 세우겠다고 설득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지난해 가파르게 치솟은 환율도 발목을 잡았지만 그의 강한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한국 고유의 멋을 간직한 광주의 정원이 우여곡절 끝에 완공되자 140만 샌안토니오 시민과 250만 재미교포들은 한국인이 자부심을 가져도 될만한 색다른 관광명소가 탄생했다며 크게 환영하고 있다.
연못 위에 세워진 경회루를 옮겨놓은 듯한 이 정자는 29일 오전 10시(현지시간)한국에서 날아온 강운태 광주시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덴만공원에서 준공식을 가졌다.
드넓은 미국 땅에 한국 전통 문양을 새기고 전래된 건축양식으로 건축물이 세워진 것은 고 박정희 대통령이 한미수교를 기념해 미국 LA 위성도시인 샌패드로시에 서울 종로 종각과 비슷한 ‘우정의 종각’을 세운 것을 제외하면 미국 이민 100년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광주시건설협회장 등을 역임한 김 회장은 지난달(10월) 6일에는 광주시민프로축구단 후원금 10억 원을 광주시에 기탁했다.
앞서 2002년에는 조선대 앞 경전선 도시철도 폐선부지에 13억 원을 들여 나무를 심고 운동 및 편의시설을 갖춘 ‘푸른길 공원’을 조성해 기부하는 등 광주지역 건설업계의 ‘기부천사’로 꼽히고 있다. 김 회장은 이날 샌안토니오 훌리앙 캐스트로 시장으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았다.
그는 “한국 전통을 살린 광주의 정자가 두 도시의 교류를 더욱 활성화하는 교두보가 되기를 바란다”며 “샌안토이오가 화답하는 의미에서 내년에 자비를 들여 광주 도심에 상징물을 세워준다고 하니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샌안토니오=국민일보 쿠키뉴스 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