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영화人] 배광호 대표가 밝히는 영화 포스터의 ‘비밀’

[Ki-Z 영화人] 배광호 대표가 밝히는 영화 포스터의 ‘비밀’

기사승인 2010-12-25 13:04:00

"[쿠키 영화] 아이디어 경쟁 시대에 접어들면서 상상력의 접전지인 포스터계에도 전쟁이 치열하다. 적확한 메시지가 응축된 포스터는 영화의 세계로 인도하는 좋은 안내자 역할을 한다. 포스터계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림커뮤니케이션(주) 배광호 대표를 만났다.

배 대표는 15년 동안 한국영화와 동고동락하며 ‘섬세한’ 포스터를 생산해낸 ‘거장’으로 통한다. 그가 진두지휘한 포스터는 <8월의 크리스마스><마파도><동갑내기 과외하기><말아톤><음란서생><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과속스캔들><국가대표> 등 180~200편이 넘는다. <트랜스포머> 시리즈 1,2편 등 외화도 다수 포함돼 있다. 한 편의 포스터를 만드는데 평균 2~3개월 정도 걸리니 지난 15년 동안 쉴 새 없이 작업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극장가에도 그의 손길이 닿은 포스터를 찾아볼 수 있다. 공유와 임수정이 실제 연인처럼 느껴질 정도로 밝은 날, 나들이를 나선 연인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표현한 <김종욱 찾기>, 속이려는 남자(한석규)와 까칠한 집주인(김혜수)의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이층의 악당>, 차태현의 익살맞은 표정이 돋보이는 <헬로우 고스트> 등이다.

배 대표 작품의 매력은 영화 내용 및 주제와 정확하게 맞물리는 포스터 콘셉트에 있다. 그 비법이 어디에서 오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끊임없는 연구와 반복”이라고 자평했다. 포스터 작업이 대체적으로 크랭크인과 동시에 시작이 되기에 시나리오 분석을 통한 콘셉트 도출에 있어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촬영이 시작되면 재빨리 포스터 작업에 돌입하죠. 촬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포스터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작품을 분석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과연 이 영화는 어떤 부분을 강조한 걸까’ ‘이 영화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일까’ 철저하게 연구하는 작업이 필요하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읽고 회의하고 반복해서 최선의 지점을 찾아냅니다. 오차의 범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하고요.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는 감독이 의도한 방향대로 포스터가 잘 나오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웃음).”

<8월의 크리스마스>도 무던한 노력을 통해 맺은 결실이다. 연기파 배우 한석규와 심은하가 합작한 <8월의 크리스마스>는 지난 1998년 개봉해 그해 극장가를 강타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진관 주인 ‘정원’(한석규)과 천진난만한 매력을 지닌 주차 단속 요원 ‘다림’(심은하)의 눈물 시린 사랑 이야기는 ‘최루성 멜로’로 많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이 둘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한 폭의 포스터로 표현되며 관객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8월의 크리스마스> 포스터를 작업했던 배광호 이사는 당시의 촬영 상황에 대해 설명하며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영화 제목이 <8월의 크리스마스> 독특하잖아요?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라, 그것을 포스터에서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을 정말 많이 했는데요. 과거에는 지금처럼 컴퓨터그래픽이 발달하지 않아서 실사 컷에 자막을 살짝 입히는 수준이었는데요. <8월의 크리스마스> 역시 두 배우의 표정에 집중하면서 작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눈을 피하는 남녀의 모습을 표현했는데 사진을 찍고 보니 어색하더라고요. 그래서 뭔가를 뒤집어쓰고 눈을 피하는 느낌을 살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사방을 찾아봐도 마땅한 소품이 없었습니다. 입고 있던 제 옷이 그나마 나을 것 같아서 벗어서 뒤집어 쓰고 바로 촬영했죠. 그걸 하니까 눈을 피하는 느낌이 잘 표현돼 새로웠어요. 그날 제가 재킷을 입고 가지 않았다면 어떤 포스터가 나왔을지 궁금하면서도 아찔합니다(웃음). 집에 아직도 그 재킷이 있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경매에 내놓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8월의 크리스마스> 히트 덕분에 배 대표의 사무실도 활기를 띠었다. 하지만 “멜로물을 잘 만드는 회사”로만 소문나면서 다양한 장르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맡게 된 <동갑내기 과외하기>로 변화를 맞는다. 김하늘과 권상우가 출연한 이 작품은 ‘닭대가리 잡는데는 내가 전문’이라는 카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공부에 취미가 없는 ‘지훈’(권상우)에게 과외를 강요하는 ‘수완’(김하늘)의 캐릭터를 살리는 방향으로 포스터를 만들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히트 이후 코미디 물에 대한 섭외가 빗발쳤다.

“<8월의 크리스마스>가 뜨고 나니까 확실히 멜로물에 대한 섭외가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그러다가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맡게 됐는데, 색다른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당시에는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세트장 만들기를 통해 남들과 다른 포스터를 뽑아내려고 했죠. 아마도 제 생각에는 포스터를 위한 세트장을 짓고 작업한 게 그때 우리가 처음일 거예요. 원래 1500만원 정도 비용이 드는데 그 만큼의 여유가 안 돼서 시장을 다니면서 발품을 팔아 가격을 흥정해 400~500만원으로 세트장을 만들어 촬영했습니다. 당시 팀워크가 정말 좋아서 즐겁게 촬영했던 기억이 나요.”

<동갑내기 과외하기> 이후 다양한 코미디 작품을 하면서 “그림커뮤니케이션은 뭐든 잘 만드는 회사”로 입지를 다졌다. 배 대표는 <동갑내기 과외하기>처럼 코미디 장르를 포스터로 표현하는 게 가장 어렵다고 털어놨다.

“사실 코미디 장르라고 하면 은근히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촬영하는 거나 연출하는 것에 있어서 가장 만들기 어려운 장르라고 생각해요. 포스터도 코미디 장르를 표현하는 게 가장 힘들고요. 바로 수위 조절 때문인데요. 조금만 세게 가면 유치하다고 하고, 약하게 가면 코미디의 색깔이 살지 않거든요. 적정선을 유지하는 게 정말 힘든 것 같아요. 지금도 코미디 포스터 작업은 힘이 배로 듭니다.”



<동갑내기 과외하기><마파도><음란서생> 등 다양한 한국영화를 작업하면서 여러 번 얼굴을 보는 배우도 생겨났다. 배 대표는 김하늘, 김수미, 한석규와의 오래된 인연이 즐거움으로 다가온다고 털어놨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청춘만화><그녀를 믿지마세요> 등을 하면서 김하늘 씨와 알게 됐는데요. 자주 만난 사이라서 그런지 포스터 촬영을 할 때에도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김하늘 씨는 다른 배우와 비교해 순발력이 뛰어나요. ‘이런 거 시켜도 될까’ 할 정도로 청순함과 코믹함을 자유자재로 넘나들죠. 저희도 김하늘 씨의 어떤 표정이 가장 자연스럽고 포스터로 표현하기 좋은지 이미 알고 있어서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는 것 같아요.”

“<마파도> 시리즈를 하면서 김수미 씨를 여러 번 보게 됐는데요. 현장에서 만날 때마다 즐겁게 대해주셔서 반갑게 촬영하고 있습니다. 일자 앞머리 스타일은 저희 동네에 실제로도 그렇게 하고 다니시는 할머니가 한 분 계시거든요. 늘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마파도> 포스터에 적용해보니 정말 딱이더라고요(웃음). 김수미 씨를 비롯한 많은 중견배우에게 짓궂은 콘셉트를 부탁하는데 열심히 잘 해주셔서 늘 감사하고요.”

“한석규 씨는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인 것 같아요. 파격적 콘셉트도 찍어봤지만 기본적으로 진지한 면이 강점이라 완전히 망가뜨리는 방향으로 촬영하지 않아요. 오랜 시간 봐온 게 있어 어떤 표정과 자세를 취할 때 잘 나오는지 대략 알 정도입니다. 즐겁게 촬영하고 나면 저도 뿌듯하고 기쁩니다.”

배 대표는 과거와 현재의 포스터 작업을 비교하면서 “요즘은 진정성이 통하는 시대”라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영화의 발전에 따라 포스터도 새로운 옷을 입어오면서 변화무쌍하게 바뀌어왔다”고 지적하며 “기발한 것보다 영화의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진심이 묻어나야 한다”고 설명했다.

“예전에는 포스터에 대해 대수롭게 않게 여겼죠. 사진 촬영도 단 10분 만에 끝낸 적도 있고요. 요즘에는 포스터 한 장이 경쟁이 되는 시대가 됐습니다. 한국영화도 많이 발전해서 다양한 작품이 쏟아져 나오고요. 그에 따라 포스터 작업도 변화를 겪고 있죠. 그렇지만 본질적으로는 작품의 메시지를 꾸밈없이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하더라고요. 아무리 화려하게 잘 만들어도 메시지가 통하지 않는다면 관객이 외면합디다. 게다가 전략도 다양해지면서 1차 티저 포스터, 2차 티저 포스터, 완본까지 단계적으로 접근하는데요. 뭐니뭐니 해도 진정성을 담은 포스터가 각광받더라고요.”

배 대표는 가장 보람을 느낄 때가 “작품이 히트했을 때”라고 털어놨다. 그가 하는 일은 영화를 촬영하는 직접적 작업은 아니지만, 한 작품을 이끌어가는 구성원으로서 많은 관객에게 사랑을 받을 때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영화가 대박이 나면 때에 따라 격려금도 받긴 하는데요(웃음). 금전적 보상보다도 관객에게 큰 웃음과 기쁨을 선사한 것 같아 마음의 보너스를 받는 것 같아요. 많은 관객이 즐겁게 영화를 보고 나온 뒤 우리가 작업한 포스터를 보고 ‘콘셉트 정말 잘 살렸네’ 하는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시대의 흐름에 맞는 재기발랄한 포스터로 관객과 만날 준비를 할 테니까요(웃음).”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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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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