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issue] 여배우들의 언중유골…소신VS거만 ‘엇갈린 시선’

[Ki-Z issue] 여배우들의 언중유골…소신VS거만 ‘엇갈린 시선’

기사승인 2011-01-08 13:02:00

[쿠키 연예] 여배우들이 달라졌다. 열악한 드라마 제작 현실에 반기를 들며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낸 것이다. 연말 연기대상에서 배우 고현정과 문근영의 입으로부터 나온 강력한 한 방은 새해 벽두부터 화제가 됐다. SBS 드라마 ‘싸인’으로 브라운관에 돌아온 엄지원도 녹록치 않은 제작 현실에 볼멘소리를 냈다.

엄지원, 문근영, 고현정 모두 드라마 제작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대중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여배우들의 뼈 있는 한 마디에 대해 “배우로서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바른 소리를 했다”는 소신 발언과 “대중에게 훈계하는 듯한 발언이 듣기 거북했다”는 거만 발언으로 평가하고 있다. 목소리를 높인 여배우들의 발언을 모아봤다.

◇고현정 “시청률 가지고 함부로 얘기하지 말아주세요”

SBS 드라마 ‘대물’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여자 대통령 ‘서혜림’ 역을 맡은 고현정은 지난달 31일 열린 연기대상에서 권위적 말투로 수상 소감을 말했다. 대담한 발언에 늦은 새벽까지 연기대상에 시선을 고정시켰던 시청자들은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 고현정은 “재미를 주기 위해 극중 캐릭터처럼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훈계하는 듯한 수상 소감은 대중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연기대상에서 고현정은 “우리가 드라마를 만들고, 연기를 하고 모든 스태프가 작업에 참여할 때 그 결과물이나 과정이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과정을 잘 모르시는 분들이 ‘이 배우가 어떠네’ ‘저 배우다 어떠네’ 하면서 시청률을 가지고 함부로 얘기한다.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며 “SBS에서 일을 하든 MBC에서 연기를 하든 배우는 그 순간만큼은 진심을 가지고 연기를 한다. 그게 좋은 대본이든 누가 어떻든 상관없이 최선을 다한다”며 방송 도중 작가 및 PD 교체로 내홍을 겪었던 과거 일을 빗대어 말했다.

오종록 PD에서 김철규 PD로 바뀐 상황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나중에 오신 김철규 감독님 제가 팔 벌려서 환영해드리지 못해서 너무 죄송했다. 그때는 그게 잘하는 건 줄 알았다”고 발언했다. 작가에 대해서도 일침을 날렸다. 고현정은 “일하면서 욕을 많이 했던 우리 작가님. 진짜 당신이 미워서 욕을 했겠습니까. 처음에 시청자가 많은 사랑을 주셨는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속상해서 그런 거다. 새해에는 당신에게도 행운이 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일부 대중은 “스태프를 격려하기 위한 게 아니라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 밖에 되지 않는다”며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다.

평소 유머러스한 성격의 고현정은 “연기대상에 즐기러 나왔다가 예상하지 못한 대상을 받게 돼 실언을 한 것 같다”고 털어놨지만, 솔직한 발언이 거친 말투와 직설적 표현에 의해 왜곡되면서 ‘대물’을 아껴준 시청자와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린 스태프에게 격려가 아닌 질책으로 인식된 것이다. 거만하다는 시각도 팽배했다.

대상 결과에 불만을 갖은 일부 시청자의 의견과 맞물리면서 반발도 거셌다. ‘고현정쇼’를 위한 대상 빅딜설과 60부라는 긴 시간 동안 SBS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 준 ‘자이언트’에서 미친 연기력을 보여준 정보석이 대상은 커녕 우수상에 그쳐 논란을 가중시켰다. 결국 고현정의 대상 소감은 본인과 대중 양측에게 상처만 남긴 울림이 됐다.

◇문근영-엄지원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돼야”

SBS 연기대상과 같은 날 열린 KBS 연기대상에서도 문근영의 소신 발언이 이어졌다. 최우수 여자 연기상을 수상한 문근영은 “항상 어떤 현장에서든 배우와 스태프가 고생을 한다. 보람찬 고생이 되기 위해서 제작 상황이나 시스템이 개선되어야 한다. 단순히 시청률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촬영 과정 속에서 맡은 바 임무를 통해 마음껏 연기하고 그것을 통해 만족하는 상황이 만들어져야 한다. 방송사와 제작사의 노력과 개선을 부탁한다. 나 또한 맡은 임무인 연기를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드라마 촬영 환경에 대한 개선을 촉구했다.

고현정과 달리 문근영의 발언은 ‘예쁜 소감’으로 인정받았다. 일각에서는 “당돌하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지만 대중을 향한 훈계보다는 상황을 고려해 배우의 입장을 드러낸 수상 소감으로 평가받으며 박수를 받았다. 올해로 스물넷이 된 젊은 배우이지만 KBS ‘누룽지 선생과 감자 일곱 개’로 브라운관에 데뷔, 12년 경력을 갖고 있어 어느 정도 잔뼈가 생긴 연기자다. 1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역 시절에 경험했던 열악한 처우가 개선되지 않자 성인 배우가 된 뒤 목소리를 낸 것이다.

엄지원도 빠듯하게 돌아가는 촬영 환경에 대해 “극기 훈련을 받으러 온 게 아니다”며 쓴소리를 가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배우는 하루에 몇 시간씩 때로는 이동 중 수면을 취하며 A팀 B팀 실려 다닌다. 스태프 또한 마찬가지다. 최고의 작품을 위한 최적의 환경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극기 훈련이나 인성 훈련을 위해 이곳에 모여 있는 게 아니다. 기본적 환경은 보장되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시설 부족에 대해서도 불만을 털어놨다. 그는 “지금 드라마의 모 세트장은 여자 화장실이 고장이 나있다. 스태프들은 화장실을 참거나 남자화장실에 간다. 세트장 내부 온도는 야외와 별 다른 차이가 없다. 배우들이 대사를 할 때마다 입김이 나온다”며 “몇 시간씩 기다리는 배우들의 스탠바이는 당연지사다. 새해를 전라남도 장성에 와서 11시간째 스탠바이하며 보내고 있다. 대기실도 밥차도 배우의 컨디션을 배려한 진행도 없다 지난 10년간 한국드라마의 위상은 달라졌다. 한류열풍을 이끌었고 수많은 부가 가치 산업을 창출했다. 그런데 왜 제작환경은 개선되지 않는가”라고 성토했다.

엄지원과 문근영이 지적한 드라마 촬영장 개선 사항은 꾸준히 제기돼 온 문제다. 쪽대본에 의한 당일치기 촬영, 쪽잠에 시달리는 상황은 방영 전 완성 작품이 나오는 사전제작이 이뤄질 때 시정될 수 있다. 100% 사전제작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 여유를 가질 수 있어 배우나 스태프가 안정된 환경에서 촬영할 수 있다.

하지만 ‘시청률우선주의’라는 현 분위기상 사전제작 드라마가 대세로 각광받기는 어려울 듯하다. ‘로드 넘버원’ ‘사랑해’ ‘도쿄 여우비’ ‘비천무’ 등 사전제작 드라마가 줄줄이 ‘애국가 시청률’을 올리며 배우와 스태프 모두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 배우, 제작자, 방송관계자가 힘을 합해 난관을 이겨나갈 수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소신과 거만’이라는 극단의 시선을 받은 여배우들의 언중유골. 신묘년 새해에는 여배우들의 한 마디가 드라마 제작 현장을 바꾸는 촉매제가 되기를 바라본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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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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