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연예] 주어진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해내는 연예인이야말로 국민이 인정하는 ‘호감 스타’가 된다. 가수는 본업인 노래로, 연기자는 연기력으로 평가받는 게 당연지사. 이 중 타인의 삶 속에 녹아들어가 새로운 인물로 재탄생되는 연기자는 대중의 심금을 울리는 최루성 감동을 선사하는 경우가 많다.
진심 어린 연기를 보여준다는 건 말만큼 쉬운 게 아니다. 캐릭터가 천차만별이라 자신에게 딱 맞는 역할을 만나기 어려울뿐더러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는 연기력은 하루아침에 쌓아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 방송국 공채 출신으로 연기자를 배출해냈던 경우 시간적 여유를 두고 단역부터 시작해 조연과 주연을 거치면서 차근차근 경험을 쌓는 게 다반사라 연기력이 논란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외모지상주의가 팽배해지고, 군소 매니지먼트사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실력보다는 외적 요인을 갖춘 연기자에 대한 공급 및 수요가 늘어나면서 미흡한 연기력이 도마 위에 오르는 경우가 허다해졌다. 아이돌 그룹 출신 멤버들도 어설프게 연기에 도전해 연기력 논란을 부추기는 주체가 됐다. 체력 및 실력 저하로 생명력을 잃어간 아이돌 출신 멤버들은 돌파구로 연기를 택하며 속속 연기자의 길로 전향하고 있다. 문제는 명성에 걸맞지 않는 미흡한 연기력. 가수 활동에 집중하다가 단기간의 연습 기간을 거쳐 작품에 출연하자니 손발이 오그라드는 연기가 연출되는 게 태반이다. 방송사나 제작사로서도 인지도가 전무한 신인배우보다는 거대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아이돌 출신 멤버들이 더 달갑기에 ‘연기력 미흡의 악순환’은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연기력 논란은 ‘배우’라는 명함을 다는 연기자라면 풀어야할 평생 숙제. 특히 잘생긴 외모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꽃미남 스타’도 연기력 논란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들은 때에 따라 심한 연기 굴곡을 겪기도 한다. 이 중 ‘연기력 논란’을 벗고 배우로 재평가 받고 있는 톱스타들이 있다. SBS 주말 인기드라마 ‘시크릿가든’의 현빈, MBC 새 수목드라마 ‘마이 프린세스’의 김태희,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대물’의 권상우가 그 주인공이다.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음으로 인해 높이 솟아오른 3인의 연기를 들여다봤다.
◇현빈, ‘삼순이’ 설움 딛고 ‘주원앓이’로 비상
연기 경력 8년 차의 현빈. 그는 최고의 맛을 봤기에 매 작품 시청률 부담감을 안고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2005년 방영된 MBC ‘내 이름은 김삼순’이 그에게 독이 된 것이다. 당시 ‘내 이름은 김삼순’은 최종회가 50%를 넘기면서 국민드라마로 큰 사랑을 받았다. 국내 드라마 중 최고가로 일본에 팔렸고, MBC 다시보기 서비스에서 최고 기록을 수립하는 등 각종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브라운관계의 ‘괴물’로 평가받았다. 김선아의 털털한 푼수 연기를 맛깔나게 받아준 현빈은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으며 일약 스타가 됐다.
하지만 이후 이렇다 할 활약이 없었다. 드라마 ‘눈의 여왕’ ‘그들이 사는 세상’ ‘친구 우리들의 전설’은 시청률 참패로 시청자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고, 스크린 성적도 <백만장자의 첫사랑> <나는 행복합니다>가 줄줄이 관객몰이에 실패하면서 흥행과는 거리가 먼 톱스타가 됐다.
그러다가 영화 <백만장자의 첫사랑> 이후 다시 만난 김은숙 작가와 참패 굴욕을 씻어내고 있다. 연일 화제를 낳고 있는 ‘시크릿가든’을 통해서다. 김 작가가 방영 전 “현빈에게 진 빚이 있다. 영화 성적이 정말 안 좋았는데 이번에 그 빚을 갚고 싶다”며 현빈을 위한 드라마를 집필했다고 우회적으로 털어놓은 것처럼 ‘시크릿가든’은 현빈을 위한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빈이 이번 작품을 통해 배우로 다시 인기를 얻고 시청률도 확보하게 된 것은 백화점사장이자 까칠한 성격의 ‘주원’이라는 캐릭터가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배우의 캐릭터가 얼마만큼 잘 맞는지는 1,2회에 승부가 난다. 현빈은 1회부터 ‘주원’과 동일시되며 시청자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주원’은 인간 현빈이 갖고 있는 장점을 극대화시켜주는 인물이다. 현빈은 어떤 옷을 입어도 무난히 소화할 만큼 184cm의 장신인데다 뚜렷한 이목구비를 갖고 있어 ‘왕자님’ 캐릭터에 잘 맞는다. 매회 입고 나오는 정장과 액세서리가 현빈의 외모와 잘 맞물리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느끼하기만 한 ‘왕자님’은 아니다. 도도하면서도 까칠한 ‘까도남’으로서 매력이 ‘왕자님’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이는 기존 연기 패턴을 깨는 ‘변신’이 통했다는 것이다. 김 작가가 설정한 스턴트우먼 ‘길라임’(하지원)과 영혼이 바뀌는 설정을 통해 현빈은 코믹 연기에 도전했다. ‘길라임’의 영혼이 들어간 ‘주원’은 다소곳하게 손과 다리를 모으기도 하고, 긴 머리카락 가발을 쓸어올리는 깜찍한(?) 모습도 시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연기가 억지스럽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남자의 몸속에 들어간 여자의 영혼을 표현해야 하는 비현실적 상황이기에 어느 정도의 오버 연기는 용납이 되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김삼순’은 데뷔한지 2년 만에 꿰찼던 작품이라 실력보다는 운을 더 높이 평가받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시크릿가든’을 통해 ‘연기파 배우’라는 입지를 다질 수 있게 됐다. 이번 작품을 끝으로 군에 입대하는 현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국방의 의무를 다할 수 있게 됐다.
◇김태희, “이제야 맞는 옷 찾았나?” 푼수 연기로 급호감
수목 극장은 시청률 대전 중이다. 박신양과 엄지원이 합작한 SBS ‘싸인’과 송승헌과 김태희가 힘을 합한 MBC ‘마이 프린세스’(이하 ‘마프’)가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다. 지난 5일 같은 날 첫 포를 쏜 ‘싸인’과 ‘마프’는 16.1%, 15.9%(AGB 닐슨미디어리서치 기준, 이하 동일)로 ‘싸인’이 0.2%포인트로 조금 앞섰다. 6일에는 17.7%, 17.6%로 ‘마프’가 ‘싸인’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사실 방영 전에는 ‘싸인’의 압도적 승리가 예상됐다. 연기력 논란 꼬리표를 달고 있는 두 배우 송승헌과 김태희가 만났기에 ‘마프’의 열세가 점쳐졌기 때문이다. 반면 ‘싸인’은 안정된 연기력을 검증받으며 고정 시청 층을 확보 중인 박신양과 ‘스크린 샛별’ 김아중이 가세했기에 어느 정도 시청률이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예상을 뒤엎는 성적이 나왔다. 막상막하다. 그렇다면 ‘마프’의 위력은 어디에서 왔을까. 대체적으로 중복되는 의견은 ‘김태희의 재발견’이 시청률 호재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단 2회 방영에도 불구하고 매회 화제를 모으며 인기를 얻고 있다. 김태희가 부진에 빠졌던 MBC를 살렸다는 극찬도 나오고 있다.
사실 김태희는 연기파 배우보다는 반짝 스타에 불과했다. 2001년 이영애·이정재 주연의 <선물>로 스크린에 발을 들여놓은 김태희는 그동안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얼굴을 알리게 된 게 최지우·권상우 주연의 ‘천국의 계단’이다. 그마저도 권상우와 최지우의 인기에 가려졌고, 눈을 흘겨보는 악녀의 표정만 회자됐을 뿐이다.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와 ‘아이리스’로 시청률 공략에 성공했지만 김래원과 이병헌의 후광 덕을 봤다는 냉철한 평가가 내려졌다. <중천><싸움><그랑프리>로 스크린에서도 번번이 쓴맛을 보면서 연기력 논란은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
그렇게 논란의 끝에 만난 ‘마프’. 물 만난 고기마냥 호평 일색이다. 김태희가 극중에서 맡은 캐릭터는 고고미술학과에 재학 중인 여대생 ‘이설’이다. 각종 알바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학생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대한민국 황실의 공주임이 밝혀지면서 180도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이 과정에서 김태희는 망가지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 작은 얼굴에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로 ‘바비인형’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김태희는 이번 작품에서 확실한 변화를 시도했다. 검은색 마스카라가 눈 전체에 번질 정도로 오열했으며, 복통을 호소하며 한 손으로 엉덩이를 잡고 가는 모습은 폭소가 터져 나온다.
김태희의 연기력이 통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동안 예쁘게만 보이려 했던 포장 연기에서 벗어나 인간적이고 친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시청자는 “저렇게 예쁜 배우가 철저하게 망가지다니 보는 재미가 있다” “망가지는 캐릭터가 정말 귀엽다” “공주 역할이 어색할 줄 알았는데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며 호평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 김태희는 주연배우라는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작품이 ‘마프’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논란 딛고 일어난 권상우, 배우로 다시 날다
어디를 가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한류스타’ 권상우. ‘인기에 가려진 배우’에서 ‘연기도 할 줄 아는 배우’로 거듭났다. 지난해 연말 화제를 낳으며 종영한 SBS 드라마 ‘대물’을 통해서다. 권상우는 ‘대물’ 검사 ‘하도야’를 통해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사랑에도 당당한 캐릭터를 온몸으로 표현했다. 권상우의 연기가 시청자의 심금을 울린 것은 ‘간절함’과 ‘진솔함’ 이 크다.
그의 연기 원천은 ‘뉘우침’에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상우는 ‘대물’ 출연을 확정짓기 전인 지난해 6월 서울 청담동 골목길에서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가던 중 주차돼 있던 차량을 들이받고 경찰차와 부딪친 뒤 현장에서 종적을 감췄다. 곧바로 잘못을 시인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늑장 사과가 논란을 가중시키면서 대중의 원성을 샀다. ‘대물’ 하차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아지면서 벼랑 끝에 몰렸다. ‘하도야’ 캐릭터를 마음에 들어 했던 권상우로서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중의 비난은 거세졌고, 급기야 제작발표회에서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공개 사과를 했다.
어렵게 들어간 ‘하도야’는 권상우의 몸에 딱 맞았다. 시련이 가져다 준 성숙함 때문일까.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서혜림’ 역을 맡은 고현정의 그늘에 가려지는 듯 했으나, 안정된 연기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고교 시절부터 여자를 밝히며 춤바람이 난 ‘양아치’에서 정의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열혈 검사’까지 다양한 캐릭터를 열정적으로 소화하며 호소력 짙은 연기를 보여줬다. 극중 부친으로 나온 연기파 배우 임현식까지도 권상우가 오열하는 장면에서 같이 눈물을 흘렸다고 할 정도로 연기력을 높이 칭찬했다. 공인답지 못한 행동에 등을 돌렸던 일부 대중도 그의 열정에 박수를 보냈다.
결국 권상우는 SBS 연말 연기대상에서 ‘대물’로 최우수 연기자 상을 거머쥐었다. 시상대 위에 선 권상우는 마음고생을 했던 지난 시간에 지나가는 듯 감사와 반성의 눈물을 흘렸다. 이제 그는 어느 정도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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