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연예] 뮤지컬 ‘삼총사’의 인기가 매섭다. 서울 공연이 후반부로 치닫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평균 예매율이 여전히 80% 이상에 육박한다. 그것도 서울 충무아트홀 대극장이라는 대형관인데도 연일 꽉 들어찬다. 배우 김법래(42)와의 인터뷰를 위해 찾은 화요일 공연도 빈 객석을 찾아보기 어려웠을 정도로 관객으로부터 높은 호응을 얻고 있었다.
‘삼총사’는 1844년 프랑스 작가 뒤마의 소설을 뮤지컬로 만든 작품으로 17세기 왕실의 총사가 되기 위해 시골에서 올라온 ‘달타냥’(엄기준, 김무열, 제이, 규현)이 궁정의 총사 ‘아토스’(유준상, 서범석), ‘아라미스’(민영기, 최수형), ‘포르토스’(김법래, 김진수)를 만나 우정을 나누며 루이 13세를 둘러싼 음모를 밝히는 과정을 담았다.
이 중 김법래는 중저음에 익살맞은 표정으로 ‘포르토스’에 새로운 영혼을 불어넣으며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1995년 서울 예술단의 ‘꽃전차’로 데뷔한 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브로드웨이 42번가’ ‘루나틱’ ‘명성황후’ ‘사랑은 비를 타고’ ‘아가씨와 건달들’ ‘노트르담 드 파리’ ‘살인마 잭’ 등 대형 뮤지컬 무대에 출연하면서 선 굵은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명품배우다.
특히 지난 2009년 국내에 초연된 ‘삼총사’에 3년 연속 출연 중이다. 그에게는 줄곧 ‘포르토스’ 역이 주어졌다. 이는 ‘포르토스’를 김법래 만큼 하는 배우를 찾기 어려웠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연습 기간을 거쳐 무대에서 ‘포르토스’를 연기하는 기분이 어떨까.
“‘포르토스’ 역 만큼은 언제나 자신 있었어요. 저 말고는 아무도 저 만큼 잘하지 못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임했습니다. 오랜 시간 연기하면서 ‘포르토스’에 맞는 저만의 애드리브를 넣었고, 캐릭터를 익살스럽게 만들어갔죠. 큰 덩치인데다 목소리가 특이하고 인상도 남달라서 저를 많이 기억해주시더라고요.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3년 동안 ‘삼총사’를 거치면서 연기 포인트를 ‘무게감’에 뒀다. 무대 분위기를 띄우려고 만들었던 유머성 애드리브를 과감하게 줄이고, ‘포르토스’의 익살맞은 캐릭터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와 극 분위기를 잡아나갔다.
“그동안 애드리브로 만들었던 대부분의 것을 버렸어요. 연출자와 상의해 애드리브로 심하게 웃겼던 부분을 덜어냈거든요. 주인공의 사랑이 드러나야 하는데 제가 너무 웃기게만 보인 거죠. 다른 캐릭터가 웃음을 줘야 하는 포인트가 있는데 제가 방해하는 듯한 느낌도 났고요. 다시 투입됐을 때에는 배우로서 뭔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강했는데 자꾸 줄어드니까 살짝 섭섭하고 서운하기도 했죠. 그런데 작품 전체를 봤을 때에는 그 방향이 맞더라고요. 지금 와서 보면 훨씬 더 깔끔해진 것 같습니다.”
김법래는 ‘삼총사’ 무대에 서면서 얻었던 것 중에 가장 기뻤던 경험에 대해 “함께 울어줬던 관객”을 꼽았다. “관객의 분위기에 따라 흥분을 잘하는 성격이에요. 마지막에 ‘포로토스’가 발랄했던 캐릭터와 달리 눈물을 보이거든요. 그런데 얼마 전에 앞에 앉아계신 관객 한 분이 제 감정에 따라 펑펑 우시더라고요. 그 분의 눈물을 보고 저도 격해져서 울었죠. 제가 느꼈던 벅찬 감정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기쁘고 행복합니다.”
여러 무대를 경험하면서 뮤지컬 배우로서 살아야 하는 고충을 절감하기도 했다. 지난 15년 동안 인간답지 못한 대우를 받을 때가 있었고, 제작사의 비인격적 횡포에 심신이 고단한 적도 많았다. 김법래는 “뮤지컬계에만 노조가 없다”며 배우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단체나 모임이 결성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방송, 영화 각 분야에 노조가 있는데 유독 뮤지컬에만 없어요. 유명배우가 나서야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수 있는데 다들 자신의 입장이 있기 때문에 선뜻 나설 수도 없고요. 앞장섰다가는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제작자의 입장과 반대편에 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제가 15년 동안 활동하면서 배우로서 권익을 보호받지 못할 때가 많았어요. 그럴 때마다 힘을 키워서 뮤지컬 배우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요. 뮤지컬 노조, 정말 필요합니다.”
“뮤지컬 배우도 공인이기 이전에 인간”이라는 김법래의 신념은 15년 전 발생한 사건에서도 알 수 있다. 당시 제작사로부터 정당한 개런티를 받지 못해 결국 공연 당일 보이콧을 선언한 것. 당시 김법래는 신인이었다. 혈기 넘치는 행동에 대부분 “건방지다”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옳지 못한 일을 눈 감고 덮어줄 수는 없었다. 그 사건 후 5년 동안 러브콜의 횟수가 현격히 줄어들 만큼 뮤지컬계에서 이단아로 평가받았지만 뮤지컬 배우들의 권익 보호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800명이 되는 관객이 집으로 발을 돌린 일대 사건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무모하기도 하고, 건방져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돈을 주지 못한 제작사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더라고요. 하지만 배우니까 무조건 참고 무대에 아무렇지 않게 선다는 걸 제 스스로가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제가 좀 더 힘을 키워서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15년 동안 ‘뮤지컬 쟁이’로 살았던 김법래가 드라마와 영화 진출을 고민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힘을 키워야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홀로 활동하다가 소속사를 잡아 새 둥지를 틀게 된 것도 활동 영역을 넓히기 위해서다.
일단 그 발걸음은 서울 ‘삼총사’ 뮤지컬 공연을 끝내는 것이다. 이후 대전, 대구, 부산, 일산, 광주, 구미 등지로 넘어가 지방 관객과 만난다. ‘삼총사’를 끝낸 이후에는 다음 달부터 서울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랙에서 상연되는 ‘사랑은 비를 타고’ 아듀 무대에 선다. 일단 ‘삼총사’에 혼신의 힘을 쏟아 붓겠다는 다짐이다.
“‘포르토스’ 역은 제 모든 것을 다해 끝까지 최선을 다할 예정입니다. (유)준상이 아들 이름이 ‘동호’고 우리 아들 이름도 ‘동호’인데요. 둘이 만나면 늘 이래요. ‘우리 동호들이 달타냥까지 하는 걸 보고 무대에 내려갔으면 좋겠다’라고요. 기회가 된다면 50대까지 ‘삼총사’ 무대에 서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하하”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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