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문화] 육당 최남선(1890-1957)의 장손 최학주(70) 씨가 '나의 할아버지 육당 최남선'(나남출판 펴냄)을 출간했다.
최남선과 17년을 함께 살았다는 저자는 육당의 생애와 인간상, 그리고 작업을 생생히 기록하면서 육당의 행적이 '친일'이었다는 비판을 반박했다. 직계가족이 육당의 생애를 본격적으로 증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할아버지가 평생 일관되게 추진한 것 중의 하나는 조선의 모든 것 - 민족, 문화, 역사를 세계사의 일부로 파악, 해석해야 한다는 신념이었다"고 말했다.
육당의 조선사편수회 참여로 제기된 '변절' 비난에 대해서는 "일제학자들에 의해 단군이라는 뿌리가 없어진 조선사, 반일본화된 조선사를 우려해 마지 않던 할아버지는 조선사편수회에 들어가 그들의 '조선사'에 단군을 편입하고자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저자는 조선사편수회를 주도하던 이마니시, 이나바 등 단군말살론 일본 학자들을 상대로 전개한 투쟁을 예로 들며 단군과 조선사를 지키려던 육당의 노력을 전했다.
또 학병 지원을 찬성한 육당을 입장을 조선의 독립 준비로 이해했다. 그는 "할아버지는 조만간에 세워질 독립국가의 건설요원 확보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며 "조선의 엘리트 청년들이 군대를 통해 사관간부로 훈련받기를 원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독립선언서 집필과 3.1운동 시기 육당의 삶도 드러났다. 3.1운동으로 갇힌 지 2년8개월 만에 가출옥해 '동명'을 창간할 당시 육당에 대해 저자는 "3.1운동으로 상당히 고무돼 있었고, 조선 민족의 경륜과 그 미래에 대한 기대가 매우 컸다"고 전했다.
그러나 현실은 육당의 낙관과 거리가 있었고, '동명'은 결국 총독부의 발매금지 끝에 자진 폐간했다. 이후 좌우익 분열을 막으려는 노력으로 일간지 시대일보를 창간하지만 경영난이 계속됐다. 이때가 1924년 무렵으로, 시대일보를 그만둘 때까지 쓴 돈이 현재 화폐 가치로 약 3백억 원인 30만 원에 달해 육당의 생활은 상당히 궁핍했다고 한다.
6·25전쟁 전후 최남선의 집안도 참담한 비극을 맞았다. 큰딸이 북한군에 피살되고, 사위는 납북됐다. 또 저자의 아버지이자 육당의 장남은 피난처에서 돌연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막내아들은 월북했다.
당시 "남북분단은 누구의 책임이냐"는 저자의 질문에 육당은 "그것은 일본도, 미국도, 소련도, 그 시대도 아니다. 우리 민족의 미숙함 때문이었다"고 답했다고 한다.
책에는 전쟁으로 풍비박산이 난 가운데에도 '조선역사사전' 완성에 몰두했던 육당의 모습과 함께 1954년 초등학교 졸업식 당시 손자의 응석에 못 이겨 졸업생 대표 고별사를 대신 써주는 등 인간적인 면모도 소개된다.
저자는 "우리의 후대들이 역사적 인물로서의 육당 최남선과 그의 시대에 대해 사실 그대로 명료하게 인식함으로써 자신과 나라의 미래를 설계하고 준비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역사학계에서 시대를 넘어선 보편적 접근을 통해 육당학이 총체적 학문으로 지향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씨는 서울대 공대 졸업 후 1967년 미국으로 건너가 제약업계에서 일하다 2005년 현직에서 은퇴한 이후 전기 출판을 준비해왔다.국민일보 쿠키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