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타가와상’ 수상자 재일교포 유미리 “사람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 많아”

‘아쿠타가와상’ 수상자 재일교포 유미리 “사람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 많아”

기사승인 2011-03-11 20:47:00

[쿠키 문화] 28세 때 소설 ‘가족시네마’로 일본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재일교포 작가 유미리(43·사진)씨는 좀체 집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친구에게 전화가 오지 않는 한 자신이 먼저 전화를 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서 계속 글을 쓴다. 우울증이 심할 때는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다. 구토를 참지 못해 화장실을 갈 때만 몸을 움직일 뿐이다.

이 ‘은둔형 작가’가 자신의 희곡이 원작인 연극 ‘해바라기의 관’ 국내 공연(9~13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 맞춰 오랜만에 조국을 찾았다.

지난 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그는 생각했던 것과 달리 상냥하고 쾌활했다. 머리 모양이 예쁘다는 칭찬에는 활짝 웃고, 가장 좋아하는 꽃은 “언제나 해를 바라보는 해바라기”라고 말하는 모습에서는 소녀 같은 풋풋함도 보였다.

“원래 사람을 싫어하지 않아요. 14살 때 ‘이지메(따돌림)’를 당하고 정신적인 균형이 무너졌어요. 사람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지 못했죠. 하지만 전 사람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 글을 쓸 수 있죠.”

지난 6일 저녁 한국에 도착한 그는 다음날부터 하루 종일 언론 인터뷰만 하고 있다고 했다. 유씨는 “관광은커녕 인터뷰 장소인 이 카페에만 있었다. 덕분에 기자들 구경은 실컷 하고 있다”면서 웃었다.

동아 서울국제마라톤대회 참가 이후 8년만이니 세간의 관심이 클 만도 하다. 그의 작품이 국내에서 공연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2005년에는 희곡 ‘그린벤치’가, 2007년에는 ‘물고기의 축제’가 국내 관객들을 만났다.

“그린벤치 때는 아들이 다섯 살, 물고기의 축제 때는 일곱 살이어서 올 수 없었어요. 우울증도 심했죠. 이렇게 다시 조국에서 공연을 보게 돼 감격스러워요.”

‘해바라기의 관’은 유미리가 21세 때 쓴 비극으로, 재일교포 청년이 한국에서 유학 온 여학생에게 한국어를 배우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다가 파국을 맞는 내용이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22년 전, 동경 시부야의 한 건물에서 초연했다. 천장이 낮고, 10층에 있는 소극장이었는데 소품인 고물들을 옮기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고 회고했다.

유씨는 작년부터 일주일에 한번씩 한국어 과외를 받으며 모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 도중 ‘공부’ ‘어떻게’ 등 자신이 아는 단어가 나오면 작은 목소리로 따라했다. “1~2년 뒤에는 서울로 이사 올 계획이에요. 아들(11)이 한국어가 어느 정도 가능하게 되면 이사 오려고요.”

요즘 그는 차기작으로 아버지의 일생을 다룬 희극을 준비 중이다. 1986년 희곡 ‘물 속 친구에게’로 데뷔한 그는 “연극이 ‘본처’고 소설은 ‘후처’다. 그동안 소설 위주로 쓰면서 본처와 낳고 나온 자식이 신경 쓰이는 기분이었다”면서 “20년 동안 침묵한 만큼, 이제는 희곡을 많이 쓸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선희 기자, 사진=스튜디오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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