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연예] MBC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이하 나는 가수다)의 잠정적인 방송 중단은 시청자들의 위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첫 탈락자인 김건모가 재도전을 결정한 20일 방송 직후 인터넷은 삽시간에 전쟁터로 변했다. 서바이벌을 강조한 ‘나는 가수다’가 공정한 원칙을 저버렸다며 온갖 패러디물이 등장했고, ‘나는 가수다’ 폐지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MBC가 김영희 책임프로듀서(CP)를 경질할 정도로 초강수를 두고, 김건모가 자진 하차를 결정한 직접적인 이유다.
최근 방송가는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을 도입한 예능 프로그램 때문에 매일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MBC ‘무한도전’과 KBS ‘해피 선데이-1박 2일’의 라이벌 구도는 이제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됐다. 두 프로그램의 팬덤은 방송 직후 시청자 게시판 서버가 느려질 정도로 열정적인 소감을 토해내고, 소재와 연출, 시청률 결과에 이르기까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충성 경쟁을 벌인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연일 설전을 거듭하는 여의도 정치에 비견될 정도다. 새 멤버 투입도 흡사 총선 공천 경쟁을 방불케 한다.
시청자들의 매서운 눈초리는 상상을 초월한다. 시청률을 소재별로 분류하고, 편집 과정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오류를 지적하는 것은 기본이다. 숱한 방송조작 및 설정 논란도 끊임없이 생성된다. PD의 연출력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방송가 한 관계자는 “요즘처럼 시청자들이 무서운 때가 있었나 싶다.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문제점을 잡아내기 때문에 제작시 소요되는 시간이 크게 늘어났다”고 밝혔다.
케이블 채널 엠넷(Mnet) ‘슈퍼스타K’를 시작으로 떠오른 오디션 버라이어티도 안방극장에 불을 붙였다. ‘슈퍼스타K’는 당초 단발성 짝짓기 미팅 소재에 머무르던 오디션 예능 프로그램을 일약 방송가 최고의 블루칩으로 올려놨다. 우승자의 연예인 데뷔를 조건으로 내걸고 치열한 경쟁 구도와 드라마틱한 스토리, 특유의 독설을 버무려 ‘슈퍼스타K’는 케이블TV의 역사를 새로 썼다. 시청자들은 실시간 투표를 위한 돈을 아끼지 않았고, 인터넷은 각자가 선호하는 ‘슈퍼스타K' 감상문으로 도배가 됐다.
가식과 포장을 벗고 날 것 그대로를 선호하는 시청자들의 욕망이 리얼 버라이어티 인기의 원인이라면 오디션 버라이어티는 독설과 순위로 남을 냉정하게 평가하면서도 우승자를 통한 대리 만족을 느끼고 싶은 심리가 투영됐다는 평가다. 두 장르 모두 불합리하게 돌아가는 사회적인 불만이 반영돼 일체 인위적인 조작도 용납하지 않는다. 각종 논란은 프로그램 존폐 위기에 몰릴 정도로 직격탄을 날리기 십상이다.
오늘도 시청자들은 사실상 ‘공짜 대중문화’인 예능 프로그램을 즐기며 치열한 경쟁과 생존 속에서 펼쳐지는 순수한 감동을 찾아 “나는 시청자다”를 외치며 압박하고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조현우 기자 can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