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디페, 이건 아니죠!

월디페, 이건 아니죠!

기사승인 2011-04-11 11:59:01
[쿠키 문화] 이번 ‘월드 DJ 페스티벌’(이하 ‘월디페’)의 ‘공모를 통해 뽑은 국내 아티스트 노 개런티’ 만행은 최근 접한 가장 우울한 사건이다. 우선 국내 언론사 중 쿠키뉴스와 다른 한 곳을 제외하고는 거론조차 하고 있지 않는 탓에 혹시라도 사건의 내막을 궁금해 할 분들을 위해 본지에 소개된 관련 기사를 링크하도록 하겠다(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ent&arcid=1301928849&cp=nv).

‘총 35개라는 공모팀의 숫자를 고려하여, 팀당 10만 원의 교통비를 지급할 예정입니다. 참고로, 공모팀의 공식 페이는 책정되어 있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이번 사건의 시발이 된 이 두 개의 문장을 아무리 완화해서 해석하려고 해도 나에겐 ‘티켓 파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너희들, 이렇게 큰 무대에 세워주는 것만 해도 어디냐! 그래도 큰맘 먹고 교통비는 챙겨줄게’라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슬프다. 이제 막 공연문화가 움트기 시작하던 때부터 봐오던 씁쓸한 관행을 굵직한 페스티벌이 몇 개씩이나 열리는 오늘날까지 봐야 한다는 사실이 슬프고, 사건의 주체가 바로 그 굵직한 페스티벌 중 하나라는 사실 때문에 더 슬프다.

공론화되지 않아서 그렇지 솔직히 공식 출연료 없는 공연은 인디씬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 배경은 대개 두 경우로 갈린다. 자본의 한계가 있는 탓에 전문 공연 기획자보다는 뮤지션들끼리 서로 도와가며 공연을 준비하는 경우이거나, 공연을 기획하는 측에서 해당 뮤지션에 대한 존중 없이 구색 맞추기에 급급한 경우다. 전자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후자는 화나는 일이다. 그리고 이번 사건은 후자에 가깝다. 문제는 태도다. 아직 유명하지 않아서 큰 무대에 설 기회가 없었던 뮤지션들에게 ‘월디페’처럼 자리를 잡은 페스티벌에서 수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공연할 수 있다는 건 돈과 바꿀 수 없는 경험일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점을 공연기획자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순간, 이번처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 순간을 기점으로 공연기획자는 ‘선심 쓰는 갑’이 되고 뮤지션은 ‘초라한 을’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의도한 상황이든, 의도하지 않은 상황이든 결과는 똑같다.

‘무대에 서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그 뮤지션에게는 큰 도움이 될 거야’와 ‘사정상 출연료를 적게 밖에 줄 수 없지만, 큰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다는 게 도움 됐으면 좋겠어’는 전혀 다른 뉘앙스이다. ‘월디페’ 측은 애초에 이렇게 접근했어야 했다. 비록, 이번에 피해를 입은 뮤지션들의 공연에 대한 참여욕구가 더 강했던 것이라 하더라도, 엄연히 정식 공모를 통해 선발한 팀들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공식 출연료를 지급해야 하는 게 맞는 것이다. 아니면, 처음부터 출연료에 대한 부분을 명확하게 하거나, 아예 공모 자체를 하지 말던가 했어야 했다. 굳이 없어도 대세에 지장은 없기 때문에 출연료를 줄 생각조차 하지 않은 사람들이 만든 무대 위에서 최소한의 대우도 받지 못했다는 마음으로 뮤지션들이 공연하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이름값에 따라 출연료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공모를 통해 뽑힌 뮤지션들에게는 그 땅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들이 분노한 건 출연료가 없다는 사실보다도 그들이 뮤지션으로서 일말의 존중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이란 걸 알아야 한다. ‘월디페’는 페스티벌이기도 하지만, 엄연히 사업이기도 하다. 좋은 페스티벌이 생기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뒤에서 쉴 새 없이 비즈니스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도 안다. 이상만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월디페’ 측은 이번에 양평군과 비즈니스에는 성공했지만, 뮤지션과 비즈니스에는 실패했다.


끝으로 아래 문구를 보자.

‘꿈꾸는 자들이 만들어 내는 또 다른 세상의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는 곳!’

이것은 ‘월디페’를 주최/주관하는 ㈜상상공장이 내건 슬로건의 일부다. 부디 이번 사건이 초심을 다잡고 뒤를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들이 꿈꾸는 또 다른 세상의 문화가 ‘페이 안 줘도 되는 공연 문화’는 아닐 것 아닌가?

강일권 흑인음악 미디어 리드머 편집장(www.rhythmer.net)

*외부 필자의 기고는 국민일보 쿠키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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