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Style] 김연아의 ‘강인한’ 블랙재킷, 디자이너 곽현주의 ‘완벽주의’에서 탄생

[Ki-Z Style] 김연아의 ‘강인한’ 블랙재킷, 디자이너 곽현주의 ‘완벽주의’에서 탄생

기사승인 2011-05-21 13:02:01

[쿠키 문화] 지난해 7월, 김연아는 발목 부상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여성들에게 ‘강해지라’는 메시지를 담아 갈라쇼를 선보였다. 아이스쇼 ‘블릿프루프’에서 가장 돋보이던 반짝이는 김연아의 검은 재킷, 그 밖에도 많은 선수들이 입고 나와 감동을 준 81벌의 의상은 전부 한 사람의 손에서 탄생했다. 패션 디자이너 곽현주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난 19일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곽현주를 만났다.

“처음엔 런웨이와는 사뭇 다른 스포츠 의상이 너무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피겨 스케이트 의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신축성이다. 앞서 치러진 경기에서 외국인 선수가 협찬사에서 준비한 의상의 신축성 문제로 점프를 하지 못해 결국 본인의 옷을 입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곽현주 디자이너가 가장 고민한 부분했던 부분도 신축성이다. 게다가 김연아는 갈라쇼 내내 의상을 몇 번씩 갈아입어야 했다.

“시간 낭비 없이 의상을 한 번에 벗을 수 있어야 했죠. 그래서 레깅스를 입혔구요. 게다가 이미지도 고려해야 했어요. 김연아만의 사랑스러운 매력과 강한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의상이 뭐가 있을까, 고민했죠.”

실제로 쇼가 끝난 뒤 김연아의 쇼와 의상에 대한 찬사가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음악과 어우러지는 펑키하면서도 시크한(파격적이면서도 세련되고 멋진) 느낌, 여기에 반전의 핑크 재킷은 김연아의 소녀답고 어린 느낌을 십분 살렸다. 런웨이와는 또 다른, 3분짜리 컬렉션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아 좋다며 곽현주는 웃었다.

“다음에 또 스포츠 스타 의상을 한다면, 리듬체조 선수 손연재 씨 의상을 해 보고 싶어요. 맑고 깨끗한 느낌이 너무 좋아요.”



★ ‘일은 내 사랑’ 일에서 모든 걸 얻어요

디자이너 곽현주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상반기 대한민국 디자이너 중 돋보이는 활동을 한 사람 중 하나다. 파리 프레타 포르테에 이어 ‘컨셉 코리아 2’ 뉴욕 패션쇼, 서울 컬렉션, 네스프레소와의 협업까지 눈코 뜰 새가 없다.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처음 시작할 때, 어릴 때는 힘들었죠. 나이 들면 오히려 재밌어요. 일에 중독된 것 같을 정도로 계속 일만 해요. 일하는 게 휴식이고, 취미이고, 천성이에요.”

“어릴 때부터 줄곧 한 우물만 팠어요. 저한테 옷 말고 다른 재능이 있었다면 눈을 돌리거나 포기했을 텐데, 할 줄 아는 게 옷뿐이었어요.”

곽현주는 일곱 살부터 패션 디자이너를 꿈꿨다. 중고등학생 때는 창작 욕심에 블라우스도 만들어 입고, 심지어 청바지를 다려 각까지 세워 입었다. “평소에는 길도 잘 못 찾고, 허술한 면이 많은데 일에 있어서는 항상 꼼꼼해요. 바쁜 컬렉션 직전에도 웬만하면 제 사무실 직원들은 야근을 안 해요. 평소 계획에 맞춰 완벽하게 해두는 버릇이 들었거든요.”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도 시간을 짜내 틈틈이 개인컬렉션을 준비하던 게 습관이 됐단다. 심지어 곽현주는 일일이 런웨이 음악에 맞추어 모델이 워킹하는 타임라인 초 단위까지 미리 확인해 둘 정도로 완벽주의자다.





그의 사무실에서도 그런 면을 엿볼 수 있었다. 원단이 널려 있고, 먼지로 가득하기 십상인 디자이너들의 작업실이건만 곽현주의 사무실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고 아늑했다. 이제까지 해온 20여 개 컬렉션의 패턴을 빼곡히 정리한 책장이며 가구와 문 등을 셀룰리언 블루로 칠한 컬러 감각도 눈에 띈다. 사무실을 칭찬하자 손사래를 친다.

“아직 쇼 준비 단계라 그래요. 쇼 직전이 되면 정신이 없어요. 9월 파리 전시, 10월 서울컬렉션 준비 중인데, 아직도 컨셉트가 안 잡혀서 고민이에요.”

지금까지 곽현주의 옷은 재단이며 패턴이 딱 떨어지는, 한마디로 ‘각 잡힌’ 옷들이 많았다. 파워풀하고 섹시하면서도 절제되어 있는 느낌이다. 이제는 좀 다른 옷을 만들어 보고 싶단다.

“제 옷을 남들이 봤을 때는 ‘웨어러블’(wearable‧입기에 적합한) 한 옷으로 보이지 않나 봐요. 한마디로 평소에 입을 법한 옷이 아니라는 거죠. ‘웨어러블한 옷은 뭘까?’ 하는 고민이 자꾸 들고, 제 옷에 대한 전반적 요소들이 신경 쓰여요.”

그러나 곽현주는 그런 고민들이 자신을 발전시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쇼에 관객들이 기대하는 바에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그런 말들이 부담이 됐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이 모여 곽현주 자신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직원들이나 강의하는 학생들하고도 제 옷에 대한 얘기를 터놓고 해요. 좀 더 좋은 쪽으로 옷을 발전시키고 싶어서요.”


★ 꼭 우아한 것만은 아닌 ‘치열한’ 패션 디자이너 곽현주

‘패션 디자이너’. 이 단어를 두고 사람들이 떠올리는 모습은 대부분 비슷하다.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사무실에서 우아하게 펜을 놀려 스타일화를 그리고,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며 멋지고 세련된 옷만 입고, 멋진 모델을 카리스마로 휘두른 뒤 저녁에는 파티에서 수많은 연예인들과 어울리는….

곽현주는 웃으며 자신의 손을 내보였다. “제 손 보세요. 손톱이 다 까졌죠?” 손톱을 드러낸 매니큐어를 지울 시간도 없는 그녀의 손은 상처투성이였다. 남들이 상상하는 화려한 모습은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일을 한다. 남들 다 쉬는 ‘빨간 날’에도 사무실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원단과 스타일화를 만지며 머리를 감싸 쥔다. 컬렉션에 쓸 원단을 고르러 시장에 한 번 다녀오면 녹초가 된다.

완벽주의자 곽현주는 하나의 컬렉션에 나가는 수십 장에서 수백 장의 의상에 모두 심혈을 기울인다. 패션은 스타일화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원단 선정부터 옷의 패턴, 수십 번의 가봉(시침질)과 샘플 완성, 그리고 다시 본봉까지…. 숱한 손길을 거쳐야 비로소 옷 한 벌이 완성된다. 그런 작업 하나하나를 전부 자신의 눈으로 일일이 확인하고 만져야 직성이 풀린다는 그녀다.

“남들은 이제 그만 좀 하라고 해요. ‘너는 사무실에 박혀서 작업할 때가 아니다. 지금 밖에 나가서 네 옷을 팔아야 되는데, 일일이 붙잡고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 그래도 그래야 안심이 되는걸요.”

그렇다고 해서 꼭 사무실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시간을 쪼개 사람을 만난다. 호탕하고 ‘쿨’한 성격의 곽현주는 그 모든 것을 다 해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옷을 모델에게 입힐 때, 내가 좋아하는 모델이 내 옷을 입고 런웨이를 걸어 나와 조명 받을
때 심장이 가장 강렬하게 뛰어요.”


★ “가장 기쁜 순간은 내 옷을 입은 사람이 돋보일 때”

디자이너 곽현주가 옷을 만들면서 가장 기쁜 순간은 언제일까. 사실 질문을 던지며 ‘옷이 런웨이에 올랐을 때’ 혹은 ‘옷이 완성됐을 때’ 정도의 답변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있게 “내 옷을 입은 고객이 기뻐하며 만족할 때”를 꼽았다.

“예전에 이런 손님이 있었어요. 패션에 자신이 없는 딸이 시집을 가야 하는데, 마음에 드는 남자분과의 데이트 룩을 스타일링 해 달라는 주문이었어요. 데이트 할 때마다 열 번, 모두 다른 스타일링을 해 드렸죠. 결국 따님은 결혼에 골인하셨는데, 식을 올리면서 그 분이 ‘곽현주 씨 아니었으면 결혼 못했을 거’라고 하셨어요. 가슴이 벅찼습니다.”

“나이 많은 영국 여자 손님도 계셨어요. 오십 평생, 늦은 첫 결혼을 위해 웨딩드레스를 맞추고 싶다고 하셨죠. 기성복을 입으실 수 없는 큰 사이즈셨는데, 1주일 만에 해야 했어요. 스스로 만들면서도 자신이 없었는데, 만들어진 드레스를 입어 보시더니 중년의 손님이 그 자리에서 아이처럼 깡충깡충 뛰며 좋아했어요. 너무 예쁘다면서요.”

‘옷이 날개’라는 말 그대로, 자신이 만든 옷이 입은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날개’가 되었을 때 가장 기쁘단다. 디자이너로서 존재 의의를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다.

반면에 그녀를 슬프게 하는 일도 많다. “어제 매장에 잠깐 들렀는데, 지나가던 분이 내 검은 옷을 보고 ‘쓰레기 봉지야?’ 하시더라구요”. 그녀의 옷을 ‘어떻게 입느냐’며 ‘막말’하는 사람들, 물론 있다. 게다가 해외 거대 패션하우스들과 국내 패션을 비교하며 상대적으로 국내 패션을 무시하는 일부 몰지각한 ‘패션 피플’도 있다. 국내 패션은 무조건 해외의 카피라고 생각하며 손가락질 하거나, 대놓고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다.

“그래도 그게 다 관심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안 좋은 경험보다는 행복한 경험이 더 많거든요.”


★ 신민아, 제시카, 장근석… 곽현주를 사랑한 별들

곽현주의 옷은 유난히 많은 연예인들에게 사랑받는다. 소녀시대 제시카, 장근석 등이 끊임없이 입어 팬들의 사랑을 받았고, 최근 배우 노민우는 그녀의 레드 수트를 입은 사진이 화제가 되어 껌 CF도 찍었다. 신민아, 서인영 등 인기 패셔니스타들은 으레 그녀의 옷을 몇 번씩 입었다.

“요즘 연예인들은 다들 체형이 너무 예뻐요. 신민아 씨의 경우에는 완벽한 비율이 돋보이고, 서인영 씨는 사랑스럽고 섹시한 면이 부각되죠. 제 옷은 개인의 장점을 잘 살려주는 것 같아요.”

실제로 연예인 협찬 의뢰와 스타일링 의뢰도 많이 들어온다. “요즘 나오는 아이돌 그룹들이 스타일링 의뢰를 많이 해요, 연예인들도요. 여자보다는 남자 스타들이 제 옷을 더 좋아하는 것 같고요.”

실제로 배우 장근석이 드라마 ‘매리는 외박 중’에서 입었던 가디건과 머플러 등이 그의 옷인데,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 장근석의 해외 팬들은 신사동 매장에 와서 기념사진까지 찍어 가곤 한다. 소녀시대 제시카가 입었던 초록색 니트는 수십 장이 팔리다 못해, 시장에서 저렴한 가격대의 ‘짝퉁’(가짜 상품)까지 색깔 별로 나돌았다. 실제로는 수만 장이 팔린 셈이다.

창작자로서 지적재산권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의 호응이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제 디자인이 그만큼 사랑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한편으로는 기분 좋아요.”



★ 대중에게 사랑받는 패션 디자이너, 이제는 해외로

대중의 사랑에 힘입어 해외 진출 본격화에 시동을 걸었다. 소재의 믹스&매치(Mix&Match)를 세련되게 소화하는 곽현주는 이미 프랑스 파리와 미국 뉴욕, 캐나다 밴쿠버 등지에서 컬렉션을 가졌다. 매우 신선하다는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곽현주는 수줍게 말했다.

“사실 아직도 공부하는 중이에요. 해외로 나가게 되니, 국내와는 달리 다양한 인종과 체형을 전부 고려해야 하거든요. 저번엔 디자이너 하상백 선생님과 함께 출장을 갔는데, 그 분의 컬렉션엔 니트가 많아 상대적으로 사이즈 고민을 저보다는 적게 하셨어요. 저는 딱딱 사이즈가 떨어지는 옷이라 다시 만들어야 했는데!”

“역으로 제 옷에는 어느 나라가 맞을까 고민도 하고 있어요. 될 수 있으면 많은 나라에서 끊임없이 배우고 느끼고 싶어요. 밴쿠버에서 쇼를 할 때 굉장히 많은 것을 느꼈어요. 백인들이 생각하는 동양의 패션과 실제 동양의 패션에는 갭(격차)이 좀 많은데, 제 강점인 파워풀한 섹시함으로 그 틀을 깨고 싶어요. 사실 제가 해외에 나가면 완전히 바닥부터 시작해야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저를 다시 새롭게 해요. 초심으로 돌아가는 거죠.”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은지 기자 rickonbge@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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