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공연] 기억합니까? ‘용산 참사’ 현장에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Ki-Z 공연] 기억합니까? ‘용산 참사’ 현장에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기사승인 2011-05-22 13:00:01

[쿠키 문화] 2009년 1월 19일 아침 용산. 출근길을 서두르던 직장인들은 뜻하지 않은 불편함(?)을 겪었다. 늘 다니던 출근길에 수많은 전투경찰이 배치돼, 평소 다니던 길을 돌아서 가야했기 때문이다. 이때 경찰들이 출근길 시민들에게 “철거민들이 망루에 올라가 염산 등을 던지고 있어서, 시민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당연히 시민들의 ‘불만의 표적’은 용산동 4가 남일당 건물 위 철거민들이었다. 그리고 다음날인 20일 새벽. 남일당 위 망루가 불타면서 철거민 다섯 명과 경찰특공대 한 명이 사망했다. 그때 남일당 위 철거민들은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쳤고, 시민들의 ‘분노의 표적’은 경찰로 바뀌었다.

연극 ‘여기, 사람이 있다’가 무대를 연우무대 소극장으로 옮겨 재 공연된다. 벌써 2년이 훌쩍 지나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일이 되어버린 듯한 ‘용산 참사’를 직접적으로 다뤘다.

연극의 배경은 2029년 미래의 대한민국, 서울 뉴타운에 들어선 고급아파트 스카이팰리스 로열층 404동 2501호. ‘아메리칸 인디언 멸망사’를 연구한 인류학 박사 강성현(이화룡)이 20년 만에 귀국한다. 귀국한 지 1주일 되던 밤, 열두 살짜리 아들 소원(김하리)이 의식을 잃고 깨어나지 못하는 의문의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을 수사하던 형사반장 김지섭(백운철)은 거실에 걸린 인디언의 조각상 ‘크레이지 호스’(성난 말·Crazy Horse)에 주목한다.

강성현의 아내이자 소원의 엄마인 조각가 민지은(최수현)이 귀국해 강성현이 환각제를 통해 어린시절의 인디언 친구 론 울프(김원주)를 불러낸다고 말한다. 이때 소원의 뇌파가 움직이고, 사건이 발생했던 밤 소원이 목격한 이미지가 재생된다. 스카이팰리스가 지어지기 전, 이 동네에 살다가 쫓겨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철거민 이상룡(우돈기)의 유령과 크레이지 호스(김원주)의 유령이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배회하는 모습이다. 이들은 왜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을까.

연극의 배경은 ‘용산 참사’로부터 20년이 지난 시점의 용산이다. 철거된 그 자리에 세워진 고급아파트는 사람들의 죽음 위에 세워졌다고 연극은 말한다. 연극은 거기에 또 하나의 아픈 역사를 더한다. 바로 미국 기병대로부터 자기 땅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인디언, ‘크레이지 호스’라 불리던 ‘타슈카 위트코’이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자기 땅이지만, 더 이상 자기 땅이 될 수 없게 된 곳에서 죽음을 맞이한 ‘원주민’들이라는 점이다.

연극은 관객들이 사회적으로 어느 자리에 서 있냐에 따라 불편할 수도 있고, 슬프게 공감할 수도 있다. 감상은 달라도, ‘용산 참사’를 ‘대놓고’ 거론하지 않아도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는 누구나 안다.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또 하나의 원주민인 인디언이 불쑥불쑥 등장해 시대적으로 낯선 느낌마저 안긴다. 불편함과 슬픔이 따로따로 느껴지거나, 교차되어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2년 전 일어난 ‘용산 참사’와 130여 년 전에 일어난 인디언들의 참극을 일직선상에 올려놓은 연출 의도 때문이다.

80억 원짜리 스카이팰리스 로열층 계약을 도운 부동산 중계업자가 연극 말미에 다시 등장한다. 그는 북한의 개성 재개발 지역에서 철거민들이 불을 지르고 난리를 일으켰다는 전화를 받고는 “먹고살려고 하는 줄은 알지만 남의 재산에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니냐”며 분개한다. 관객들은 중계업자에게 분노의 눈빛을 보내지만, 이내 “한국 사람들은 안 좋은 일은 잘 잊어버리니까 걱정 말라”는 대사에 얼굴이 붉어진다. 그의 말이 향하는 ‘곳’이 어딘지를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다.

가벼운 코미디물이 판치고 있는 대학로 풍경과 비교하면 ‘여기, 사람이 있다’는 접근하기 쉽지 않은 무거운 연극이다. 그러나 연극을 보면서 내가 아닌 ‘타인’이, ‘타인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가까이 느껴진다면, 코미디 물을 본 후 밀려오는 허전함을 보충할 수 있지 않을까.

선종남, 백운철, 우돈기, 최수현, 이화룡, 김원주, 김원정, 김하리가 출연하고 ‘혜화동 1번지’ 4기 동인 출신의 김재엽 드림플레이 대표가 연출을 맡은 ‘여기, 사람이 있다’는 오는 6월 5일까지 대학로 연우무대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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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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