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문화] 양희은 데뷔 40주년 기념 뮤지컬 ‘어디만큼 왔니’의 연습이 한창인 13일 오후 6시 대학로 예술극장 지하 연습실. 저녁 식사를 마친 배우들이 하나둘씩 연습실에서 몸을 풀고 있는 가운데 양희은이 들어와 자리를 잡자 본격적인 저녁 연습에 돌입했다. 이종일 연출이 “자 ‘골목길’부터 한번 하고 처음부터 갑시다”라고 외치자 옆에 있던 양희은은 “새벽길”이라고 외쳤다. 다른 배우들은 이종일 연출이 말한 ‘새벽길’을 ‘골목길’로 알아듣고 자리를 잡았지만 양희은은 이내 꼼꼼히 지적을 한 것이다. 이종일 연출이 “대본에 조금이라도 사실이 아닌 내용이 들어갈 것 같으면 양희은 선생님이 ‘나 그런 적 없어’라며 뺐다”는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었다.
뮤지컬 ‘어디만큼 왔니’는 양희은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 왜 남자만 반장을 해야 하냐며, 남학생들의 ‘고추’를 모조리 없애겠다고 말한 여장부 때부터 먹고 살기 위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 어느새 한국 대중가요계의 대모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그렸다. 뮤지컬에 사용된 노래는 송창식의 곡 몇 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양희은의 노래인데, 놀랍게도 노래 하나하나가 양희은의 여정을 따라가는 가사말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종일 연출은 “양희은 선생님의 노래는 유년시절부터 시작해 삶의 이야기가 절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 가수 개인의 노래로 한 사람의 삶을 뮤지컬로 꾸밀 수 있는 것은 양희은 선생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첫 장면부터 다시 시작한 연습은 한편의 동화처럼 이뤄졌다. 동생 양희경은 “언니는 말이죠. 동네 오빠들과 놀기를 좋아했어요. 가끔 오빠들을 따라가서 같이 서서 볼일을 보고는 했죠. 물론 옷은 흠뻑 젖었지만요”라며 양희은의 어릴 적 모습을 내레이션으로 증언했다. 또 양희경은 때로는 자신들의 엄마 역할을 하기도 하며, 동시에 언니와 같이 어린 시절로 돌아가 추억하기도 한다.
양희은은 동생에게 애교를 피우거나 장난을 쳤다. 이미 많은 연습을 통해 봐왔을 다른 젊은 배우들은 매번 봐도 재미있는지 미소를 지었다. 노래를 하고 대사를 읊는 양희은과 양희경은 대본대로 따라가지 않는다. 추임새를 더 넣기도 하고, 말을 자르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배우들과 비교해 보면, 이 모습이 실수인지 전혀 알 수 없다.
양희은은 “대사가 틀려도 상관없죠. 우리들의 이야기이니까요. 자연스럽지 않아요?”라며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연습 내내 보여준 모습은 이를 증명했다. 대본이 양희은-양희경 자매의 이야기를 조금도 과장하지 않고 만들어진 것이기에, 이들이 어떤 행동을 보여도 그것 자체가 뮤지컬의 내용으로 꾸며졌다. 그 때문인지, 이들의 행동은 연습실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했다.
맨발로 연습을 하는 양희은의 목소리는 청아하게 연습실을 울려 퍼졌다. 밴드의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어느 때는 쓸쓸하게 어느 때는 발랄하게 비춰졌다. “본 무대를 위해 목소리를 아끼는 중이다. 다음 주에 공연이 시작되는데, 여기서 쏟아 부을 수 없지 않나”라고 양희은은 말하지만, 그 정도의 성량만으로도 연습실 구석구석은 맑아지고 있었다.
현재의 모습으로 철없고 투정부리는 어린 시절을 연기하던 양희은은 청년기로 접어들 때는 무대에서 사라진다. 그의 대학시절의 모습인 ‘젊은 양희은’은 배우 이하나가 연기하기 때문이다. 우연히 간 카페에서 김민기의 노래 ‘아침이슬’을 듣고 자기가 부르겠다고 나서는 모습이나 송창식의 소개로 본격적으로 무대에 오른 ‘젊은 양희은’을 의자에 앉아 바라보는 현재의 양희은의 눈빛은 모호했지만 따뜻했다. 그리고 ‘아침 이슬’을 현재의 양희은과 ‘젊은 양희은’ 이하나가 함께 부를 때는 순식간에 시대가 교차됐다. “나의 젊은 시절은 어디로 갔나”를 외치는 여느 사람들과는 달리, 자신의 젊은 시절을 하나하나 되짚어가고 또렷하게 관객들에게 말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대의 배경은 ‘길’을 주제로 하고 있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교차되면서 보여진다. 양희은의 인생 굴곡이 고스란히 배경으로까지 만들어진 셈이다.
양희은과 양희경의 이야기가 펼쳐질 때는 동화 같은 실루엣이 배경으로 비춰진다.
예순의 나이를 바라보는 자매의 연습은 오후 2시부터 시작해 밤 10시까지 진행된다. 물론 둘 다 제대로 참여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양희은은 12년 째 진행하고 있는 MBC 라디오 ‘여성시대’ 방송을 오전에 마친 후에 한숨 돌리고 연습실을 찾고, KBS1TV 일일드라마 ‘우리집 여자들’에 출연하는 양희경은 촬영 스케줄을 고민 안할 수 없다.
1막을 마치고 의자에 나란히 앉아 쉬던 양희은과 양희경은 “빨리 무대에 올렸으면 좋겠다. 그게 더 편하다. 지금은 하루 종일 연습하지만, 그때는 공연만 하면 되지 않느냐”며 첫 무대를 기다렸다. 뮤지컬 ‘어디만큼 왔니’는 19일부터 8월 14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2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