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명 대표, “‘마당을’ 이렇게 오래 걸릴지 몰랐다”

심재명 대표, “‘마당을’ 이렇게 오래 걸릴지 몰랐다”

기사승인 2011-08-10 17:11:01

[쿠키 문화] 지난달 27일 개봉한 ‘마당을 나온 암탉’(이하 ‘마당을’)이 연일 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새로 써가고 있다. 지난 주말 역대 최고기록을 가뿐하게 갈아치운 데 이어 개봉 15일 만인 10일에는 100만 관객 고지까지 올라섰다. 평일에도 꾸준하게 4만~5만명이 찾고 있어 손익분기점인 150만 관객도 무난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 애니메이션은 ‘접속’(1997), ‘공동경비구역 JSA’(2000),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0) 등 숯한 명작을 제작한 명필름과 애니메이션 전문제작사 오돌또기가 함께 만든 작품이다.

10일 오전 서울 필운동 명필름에서 심재명 대표를 만나 ‘마당을’의 흥행 돌풍 배경과 한국 애니메이션의 가능성 등에 대해 들어봤다.

-축하한다. 지난달 27일 개봉했으니 15일 만에 한국 애니메이션에서는 ‘꿈의 기록’으로 여겨져 온 100만 관객을 달성했다. 기분이 어떤가.

“100만을 넘어서는 것인데 실사(實寫)영화에서 1000만을 동원한 것과 비슷할 정도의 과분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기분은 좋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한국 애니메이션이 그동안 얼마나 소외돼 왔는지를 반증하는 것이다.”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100만권이 넘게 팔려 원작 동화를 등에 업고 시작한 게 컸다. 기존 애니메이션들이 시장에서 조용하게 사라진 건 인지도가 낮은 상황에서 출발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또 하나는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이면서도 아이와 어른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영화였던 게 주효한 것 같다. 그동안 국내 애니메이션은 기술적 완성도는 뛰어나지만 이야기의 힘이 부족하다거나, 스토리가 어렵고 지루하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우리는 그런 한계들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애니메이션은 첫 도전인데 ‘마당을’을 제작하게 된 이유는(‘마당을’은 1996년 출범한 명필름의 첫 애니메이션이면서 30번째 개봉영화다).

“2004년 ‘안녕, 형아’와 ‘아이스케키’란 가족영화를 만들었다. 둘 다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지만
한국에서 가족영화는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애니메이션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봤다. 영화 제작자이기도 하지만 한 아이의 엄마로서 가족영화에 관심이 많았다. 애니메이션을 딸과 함께 보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 그러다 딸에게 좋은 우리 애니메이션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북미에서는 애니메이션 시장 규모가 전체 영화시장의 40%, 일본은 20%나 된다고 하는데 우리는 겨우 0.3%다. 유망한 콘텐츠인데도 한국에서는 그렇게 미미하다는 게 아쉽기도 했다.”

-‘마당을’은 이분법적인 권선징악 구도를 따르지 않는다. 결말도 해피엔딩이 아니다. 애니메이션치고는 독특한데 그 점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나.

“원작 동화를 읽고는 안심도 되고 불안하기도 했다. 원작의 깊이 있는 주제의식이 아이들에게는 너무 무겁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원작이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까지도 공감하고 좋아하는 것에서 가능성을 봤다. 시나리오 개발 과정에서 영화적 재미를 살리기 위해 캐릭터를 만들고 재창조했다. 원작을 해치지 않으면서 원작을 영화적으로 재해석해 보고자 했다.”

-배경 그림이 풍경화,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하지만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에 비해 캐릭터가 눈에 쏙 들어오지 않고 생동감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는데.

“요즘 대세인 3D 입체영화가 아니라서 그렇게 보일 수 있다. 오성윤 감독이 원래부터 ‘2D로 가자’ ‘할리우드나 일본에서 하지 않는 그림체로 가고 싶다’ ‘한국화의 느낌이 있고, 수준 높은 동화체의 일러스트레이트를 보여주고 싶다’고 하더다. 영화의 배경이 우리나라 대자연의 사계절이니 한국화 수채화의 느낌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해 오돌또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캐릭터가 할리우드 3D처럼 ‘쨍’하거나 분명하지는 않지만 배경과 인물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도록 수위를 조절하려고 오랫동안 고민한 결과물이다.”

-기획부터 개봉까지 6년이 걸렸다. 그동안 어려움이 많았을텐데.

“2005년 기획했다. 이렇게 오래 걸릴지 몰랐다. 당초 2009년 개봉할 계획이었는데 2년 연장한 셈이다. 우리도 애니메이션은 처음이고, 오돌또기도 실력있는 애니메이션 제작사지만 장편은 처음이라 내용적으로 시행착오가 있었다. 원작이 훌륭해도 애니메이션은 또 다르다. 영화적 시나리오 작업에만 3년 정도 걸렸다. 자금을 모으는 것도 쉽지 않았고, 배급사를 컨텍(접촉)하는 문제도 실사영화 이상으로 어렵더라. 한국 애니메이션이 돈을 번 사례가 거의 없다시피하니 투자사나 배급사를 설득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손익분기점이 150만명이라고 하는데, 자신 있나.

“1차 목표는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이다. 상영관은 257개관으로 시작했는데 지금도 비슷하다. 초반에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리오’ ‘카2’ 등)보다 흥행이 저조하지 않겠느냐 했는데 그걸 넘어섰고, 대작(‘고지전’ ‘퀵’ ‘7광구’ ‘해리포터-죽음의 성물2’ 등)들 틈바구니 속에서도 꾸준히 가고 있는 게 다행이다. 객석 점유율이 꾸준히 가고 있는 게 너무 뿌듯하다(웃음). 지난주엔 평일에 7만~8만이던 것이 이번 주에는 4만~5만명 정도로 떨어졌는데 200만도 조심스럽게 희망해 본다.”

-11년에 걸쳐 공들여 만든 ‘소중한 날의 꿈’(안재훈 한혜진 감독)이 호평에도 불구하고 흥행에서는 참패했다. ‘마당을’과는 어떤 점에서 달랐나.

“‘마당을’은 마케팅 비용으로 20억원 가까이 썼다. ‘소중한 날의 꿈’은 돈이 부족해 마케팅 비용을 거의 쓰지 못했을 거다. 우리는 배급사도 롯데엔터테인먼트라는 업계 2위의 메이저 배급사를 잡았고, 그 덕에 여름 성수기 중에서도 한 복판인 방학시즌에 개봉했다. ‘소중한 날의 꿈’은 6월 중순에 개봉한 데다 배급물량이나 마케팅 비용도 적었다. 주제도 좋고 그림도 좋고 연출력도 빼어난데, 타킷 관객층이 모호했던 것도 있다. 70년대를 배경으로 사춘기 성장통을 겪는 소년소녀들의 이야기인데 (주 관객층인)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주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명필름은 ‘마당을’로 국내 애니메이션의 성공모델을 찾은 건가.

“이 영화 한 편으로 한국 애니의 진영이 달라진다고는 보지는 않지만 이번처럼 유능한 제작자와 실력있는 애니메이션 종사자, 주류 배급사가 힘을 합쳐 시너지 효과를 낸다면 성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 같다. 이런 사례가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중국에도 수출된 걸로 아는데.

“9월 말에 2000여개 상영관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그정도면 중국에서는 중급 규모라고 하더라. 한국에서는 언론의 관심도 많고,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들도 잘 알려져 있지만 중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후속 애니메이션을 구상하고 있는 게 있다고 하던데.

“염두에 두고 있는 건 있는데, 이 영화가 성공해야 다시 시도할 수 있을 것 같다. 100만 돌파한 게 의미가 있지만 돈을 벌지 못하면 투자자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을 거다. 후속 애니는 ‘마당을’의 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픽사를 비롯해 3D입체 애니가 할리우드의 대세다. 국내 3D 애니의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할리우드에서는 3D입체영화가 요즘 대세다. 처음에 3D와 2D를 놓고 고민했는데 ‘마당을’은 대자연을 그려내야하기 때문에 3D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3D는 제작비도 많이 들어가고, 국내에서는 검증도 안됐다. 다음에는 어떤 방식으로 할지 고민해 봐야겠지만 2D라고 올드(구식)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외국 시장까지 염두에 두고 제작하는 글로벌화가 한국 애니의 해법이라는 시각이 있는데.

“그건 위험한 생각이다. 국내에서 인정받아야 외국에서도 가능성이 있다. ‘올드 보이’나 ‘괴물’이 한국에서는 별로인데 외국에서는 먹힌 게 아니다. 국내는 시장이 좁으니 해외를 겨냥해야 한다는 생각은 위험한 발상이다. 외국에서는 한국 애니에 대해 아직 낯설어하고 있다.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영화 제작 여부를 결정할 때 무얼 고려하나.

“그 영화가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인가가 첫 번째다. 만들면서 즐거워야 한다. 두 번째로는 관객들이 보고 싶어할 것인가를 놓고 객관적 검증을 거친다. 세 번째는 손해를 어떻게 하면 안 볼 것인가를 고려한다.”

-성공한 영화들이 너무 많은데 실패한 작품도 있나.

“상대적으로 성공한 게 많다는 것이지 실패한 작품도 많다. 김응수 감독의 ‘욕망’(2004)은 한국 최초의 디지털영화인데 흥행성적이 2000명 정도였다. 성공 여부보다는 얼마나 꾸준하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명필름의 덕목은 꾸준하게 영화를 해왔다는 것이고, 그것에 자긍심을 갖고 있다.”

-준비 중인 작품이 있나.

“이용주 감독 연출의 ‘건축학개론’이란 멜로물을 준비하고 있다. 집 짓는 의미나 건축의 개념이 한국영화에서는 처음으로 들어가는 영화가 될 거다. 하반기에 촬영에 들어가 내년 상반기에 개봉할 예정이다.”

-영화 대기업들이 주도하는 상황에서 전문제작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영화는 많은 자본이 필요한 비즈니스이기도 하지만 결국 콘텐트의 창의성에서 승부가 난다. 그건 돈과 기술로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유능한 제작자가 창조성으로 무장해 양질의 영화를 만들어 내는 게 경쟁력인 거 같다. 돈이 많다고 좋은 영화를 만들어 내는 건 아니다.”

-한국 영화산업이 독과점이 심하고 왜곡돼 있다는 비판이 있는데.

“멀티플렉스 극장하고 배급사를 같은 회사가 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자사 영화를 개봉할 때 스크린 독과점 현상, 쏠림 현상이 심하다. 이 문제는 민간 자율에 맡길 건 아닌 것 같다. 미국에서도 상영관과 배급사를 한 회사가 동시에 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멀티플렉스 상영관에서 특정 영화가 전체의 50%를 넘지 못한다. 우리는 어떤가. 트랜스포머는 상영관의 70~80%까지 차지하지 않았나. 우리 영화계는 투자·배급사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돼 있다. 예술영화 전용관 수도
매우 적다. 우리나라 전체 스크린수가 2000개 정도인데 예술영화 전문 극장은 40~50개 정도다. 적어도 100개는 돼야 점유율 5%가 나오는 거다. 쏠림현상은 좋지않다.예술영화 전용관에 대한 정부 지원을 늘려야 한다.”

-100만명 넘었는데 자축파티라도 안 하나.

“축하파티는 손익분기점을 넘기면 할 거다. 다음달에 창립기념일을 겸해 조촐한 모임을 가질 예정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라동철 선임기자, 사진=김민회 기자 rdchul@kmib.co.kr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
라동철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