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문화] 지난 14일 공연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 뮤지컬 ‘어디만큼 왔니’는 가수 양희은의 일대기를 그렸다. 대부분 이런 류의 뮤지컬은 자신들이 직접 무대에 오르기 어려운 법인데, 양희은은 동생 양희경과 함께 무대에 올라 연기로 관객들을 웃기고 울리며, 노래로 편안한 느낌을 선사했다. 그런데 양희은과 양희경이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시절의 연기부터 현재까지의 모습을 그려낸 이 뮤지컬에는 특별한 존재가 한명 튀어나온다. 바로 양희은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배우 이하나. 올해 87년생인 이 여배우는 자신이 태어나기도 훨씬 이전, 아니 자신을 낳아준 부모들이 어릴적 불렀던 노래의 주인공의 청년기를 재현했던 셈이다. 양희은의 일생도, 무대 위 상황도, 노래도 어색할 법한 나이다.
그러나 공연이 거의 마무리되던 즈음 서울 대학로 카페에서 만난 이하나는 무대에 합류한 이유가 ‘아침이슬’ 때문이었다고 말하며, ‘아침이슬’과의 인연을 털어놨다.
“부모님이 식사하면서 말씀하시는 것이, 두 분이 초등학교 당시 재미삼아 불렀던 노래 들이 ‘아침이슬’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저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이 당연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사실 ‘아침이슬’과의 인연을 조금 있었어요. 전에 극단 학전에서 김민기 선생님의 지도하에 연기를 했었는데, 그때 선생님 노래를 한 두곡 듣게 됐어요. 배우들이 공연 끝나고 대학로에서 술도 많이 마시고, 그러다보면 누군가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그러잖아요. 거기서 김민기 선생님의 노래를 많이 들었어요. 그 당시에는 양희은 선생님과 공연할지도 몰랐지만, 그때 경험 때문에 곡들이 더 익숙해진 것 같아요. 지금 방송에서 나오는 노래와 많이 느낌이 다르잖아요. 저는 배우를 하고 있는 사람이고, 앞으로도 해야 할 사람이라 그런 서정적인 의미가 있는 곡들이 더 마음에 와 닿더라고요. 또 이 공연이 욕심이 나는 이유도 ‘아침이슬’을 부른다는 것 때문이었어요. 사실 ‘아침이슬’도 첫 도입부 밖에 몰랐어요. 그런데 연출님이 이 노래를 부를 것이라고 했고, 이 노래가 선생님의 공연 중에 제일 중요하다고 하시더라고요. 대학로에서 제일 오래된 아르코 무대에 설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고, 거기서 ‘아침이슬’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이 공연에 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아요.”
사실 이하나에게 이번 무대는 부담감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양희은이라는 한국 가요계의 대모의 젊은 시절을 연기하는 것도 그렇지만, 이하나가 ‘아침이슬’을 1절 부르고 나면 바로 뒤에서 양희은이 2절을 부르며 등장하기 때문이다. 즉 관객들에게는 바로 비교가 될 수 있다.
“사실 선생님의 젊었을 때 목소리는 고우셨는데, 나이가 들면서 저음이 나오시는 거예요. 극중 선생님의 대사 중에 지워진 내용 중에 ‘사람들은 옛날에 내가 부르던 목소리를 원하고 있다. 나도 이제 늙었고 시간이 40년이나 흘렀는데, 왜 40년 전 소리와 그때의 내 모습을 찾는건지. 지금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되는 것인지’라는 감정의 대사가 있었어요. 선생님이 제 나이 때 부른 ‘아침이슬’은 순수하고 청아한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지금이야 40년 내공의 ‘하이 퀄리티’의 ‘아침이슬’이 나올 수 밖에 없잖아요. 테크닉으로 보면 현실적으로 따라갈 수 없지만, 전 지금의 선생님이 아닌, 20대 때 힘들었고 빚에 민감했던 선생님의 삶을 표현해야 하잖아요. 그러니 사실 비교할 부분은 없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젊은 날, 그리고 자기 언니의 젊은 시절을 지켜보는 양희은과 양희경의 시어머니(?) 노릇도 제법 있을 듯 싶었다. 꼼꼼하기로 소문난 이 둘의 성격이 이하나의 연기에 조언을 안해줄리 없기 때문이다.
“두 분 다 많이 충고를 해주세요. 예를 들어 선생님의 젊은 시절에는 윗사람을 쳐다보기도 어려운 시절이었다고 해요. 오비스케어에서 사장님이 저한테 ‘아버지가 죽었어’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왜 처진 노래를 하냐고 하잖아요. 사실 부모님을 거론하는 것은 예민한 일인고, 당사자는 감정이 상해서 쳐다볼 수 있는데, 그 당시에는 그게 안된다는 거죠. 지금 제가 연기한다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라며 쳐다볼텐데 그 당시 양희은 선생님은 그것을 참을 수 밖에 없었던 거죠. 지금의 선생님 성격을 아시는 분은 ‘어 양희은 선생님이 그랬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젊었을 때는 불안하고, 그런 감정을 가질 것 같아요. 저도 지금 그렇게 살고 있고요.”
사실 ‘어디만큼 왔니’는 조금 독특한 형식을 취한다. 어떻게 보면 연극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뮤지컬 같기도 하다가, 콘서트의 형식으로 마무리된다. 특히 기존에는 뮤지컬 넘버로만 노래를 부렀던 이하나에게 대중가요를 뮤지컬 무대 위에서 불렀을 것은 생소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하나는 시 같은 양희은의 노래를 통해 도리어 상상력을 폈다.
“그때 당시 노래가 시적이고 서정적이잖아요. 그런 가사이다 보니까 구어체로 말하는 것이 아닌 가사에 의미를 담아서 전달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또 스스로 이미지 메이킹을 많이 하는 직업을 가진 제가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노래를 부르는지에 따라 다르게 전달되는 노래들이 계속 이어져요. 선생님의 가사는 굉장히 시적이고, 단어 하나에 여러 뜻이 담겨질 수 있어서, 제가 펼칠 수 있는 내용이 무궁무진했던 것 같아요.”
대중가요를 부르는 생소한 무대. 그러나 이하나는 분명 호평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소함과는 다른, 접하기 어려운 영역이 있을 법했다.
“사실 제가 힘들었던 부분 중에 하나가 제가 가수가 아니라는 것이죠. 노래를 하는 사람이 아니고, 연기를 하는 사람이고, 무대 위에서 ‘노래 연기’를 하는 거죠. 선생님의 노래를 대사처럼 들리게 하려하는 것이 익숙하지가 않았죠. 또 노래보다 연기에 집중하다보니 연기적인 호흡이 튀어나오는 거예요. 연기와 노래 그 중간정도 지점에서 세련되게 다듬어야 했는데, 그게 왜 안될까 싶어서 서러워서 울기도 했어요. 저는 ‘노래 연기’를 하는 배우이고, 어쨌든 제가 어떤 말을 하는지 관객들에게 전달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선생님의 지적을 존중하면서 저의 연기를 하려 했죠.”
현재 단국대 뮤지컬 전공을 하고 있는 이하나는 22살 때부터 무대에 섰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오디션을 본 후에 같은 제작사가 만든 ‘마이페어레이디’ 무대에 올랐다. 또 뮤지컬 ‘드림걸즈’에 참여했다. 그러나 역시 연기의 바탕을 이뤘던 것은 학전을 통해서다.
“‘드림걸즈’를 끝내고 뮤지컬 ‘모스키토’가 원작인 ‘굿모닝 학교’의 주인공을 맡았죠. 그때 당시 굉장히 부족한 저에게 김민기 선생님이 ‘연기는 이렇게 할 수도 있고, 저렇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단 진심으로 하는 거냐 아닌 거냐가 중요하다’고 알려주셨죠. 학전은 금전적인 것을 떠나서 배우를 겸손하게 만들어주는 공간인 것 같아요. 그 다음에 한 작품이 ‘미스 사이공’인데 연기를 배우고 나서 노래로 표현을 하니 좋아진 것 같아요. 그리고 나서 다시 이번 작품으로 오게 된거죠.”
굵직한 작품에서 경험을 쌓고 있는 이하나지만,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기까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어릴 적에 피아노와 바이올린 등을 공부했지만, 중학교 때부터는 평범하게 학업에 열중했다. 그런 상황에서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부모님 몰래 예고에 지원해 덜컥 붙은 것이다. 예고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부모님이 바라지도 않는 길을 가게 된 것이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극과 극의 상황을 경험했다. 아버지의 반대를 포함한 너무 힘든 주변 상황과 무대 위에서 느끼는 좋은 상황이 계속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이의 공은 바로 ‘어디만큼 왔니’ 때문이다.
“사실 아버지가 ‘마이페어레이디’나 ‘미스 사이공’할 때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셨죠. 그런 면에서 양희은 선생님께 감사드려요. 이 뮤지컬은 방송에 자주 소개되었거든요. 아버지가 아침방송하고 9시 뉴스 등에 나오는 제 모습을 보고 어머니에게 ‘하나 나오더라’라고 말씀하셨대요. 그리고 공연을 보러 오셨는데, 집에 돌아가는 길에 아버지 표정을 보니 ‘이제 뭔가 조금은 열렸구나’하고 느꼈죠. 아버지가 이 직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애초에 알고 있었고, 그래서 학구적인 길을 가기를 원하셨지만, 어쩌겠어요. 일단 무대가 제 심장을 뛰게 하는데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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