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대전 지적장애 여중생 성폭행 사건이 다시 한 번 도마 위에 올라 논란이 뜨겁다. 16명의 고교생이 1명의 지적장애 여중생을 돌아가며 성폭행하고도 처벌이라고는 ‘보호처분’으로 막을 내린 후 장애인 성차별 예방 등에 대한 사회적 대책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전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원표 사무국장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현재 우리나라엔 가정폭력·성폭력 피해 여성장애인들의 쉼터가 전국에 3곳(부산, 광주, 청주) 밖에 없다”며 관심을 호소했다.
이 사무국장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전시에 가정폭력, 성폭력 피해 여성장애인의 쉼터와 보호센터 건립을 특별히 요청할 계획”이라며 “이번에도 봤듯이 가해자들은 멀쩡히 일상으로 돌아오는 반면 피해자는 갈 곳이 없다. 있다면 자신이 당했던 ‘폭력의 현장’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반 여성 피해자들의 쉼터에 장애여성 피해자들을 데려오면 그 곳에서 따돌림 등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며 “장애인들만을 위한 쉼터가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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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건 발생한 이후 가해자 측에서 ‘무죄’와 ‘사건축소’를 이끌어내기 위한 의도적인 행보를 보여 왔다며 비난했다.
이 사무국장은 “피해자는 친인척이 없는데 전학을 간 학교에서 삼촌이 데려왔다고 하더라”라며 “이상해서 수소문을 해보니 그 ‘삼촌’이란 사람은 가해자 중 1명의 아버지였다”고 말했다.
또 그는 “형사법원에서 재판이 진행되던 지난해 12월 가해자 중 1명의 아버지가 충남 소재 한 대학병원에 피해자를 데려가서 ‘지적 장애 수준을 넘어선다’는 내용의 정신감정 진단서를 받아왔고, 이것이 형사법원에서 증거로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건이 가정법원으로 넘어온 올해 2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다시 같은 내용의 진단서를 받아왔다”고 밝혔다.
그는 “가해자 아버지가 지적장애 피해자를 데리고 다니며 전학을 주도하고, 병원에서 정신감정을 받도록 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겠느냐”고 반문했다. 즉, 피해자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당한 것이 아니라는’ 명분을 얻기 위한 의도였다는 주장이다.
이 사무국장은 “피해자는 어렸을 때 집에 큰 불이 났고, 당시 어머니가 자신만 살리고 사망해 큰 충격을 받았다”며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는 아버지는 아이를 제대로 돌볼 수 없었고, 10세 때 아버지 지인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이 사무국장은 “이 사건 이후 아이가 도저히 정상적인 환경에서 자랄 수 없다고 판단돼 부산의 한 보호시설에서 생활했었다”며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런 일을 당한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가해자들 중에는 학업 성적이 매우 좋은 학생들도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공교롭게도 가해학생들 중 가장 많이 다니는 학교가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매우 유명한 학교”라며 성적에만 매몰돼 인성교육은 뒷전인 교육시스템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 사건은 지난해 5월 남학생 3명이 인터넷에서 채팅을 통해 알게 된 장애 여학생 A양(15)을 대전 둔산동 한 건물 남자 화장실로 유인해 성폭행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3명 중 한 남학생이 학교 친구들에게 B양의 전화번호를 알려줬고, B양은 다음달 중순까지 한 달여 동안 대전지역 4개 학교 고교생 16명에게 불려가 집단으로 성폭행을 당한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밝혀졌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대전지방경찰청 성폭력특별수사대는 ‘적극적으로 저항했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아서’ 가해자 학생들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발표했고, 이는 곧 시민단체,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여러 곳에서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며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어 지난 27일 대전지방법원 가정지원 소년1단독 나상훈 판사는 이들 16명에게 소년보호처분 1호, 2호, 4호를 내렸다.
소년법 32조에 근거한 소년보호처분은 호에 따라 보호자 또는 보호자를 대신할 수 있는 자에게 감호 처분, 상담 및 입원치료, 민간위탁교육 등을 명하는 것이다.
관련 시민단체들은 “사실상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여기에 한나라당 중앙장애인위원장인 이정선 의원은 판결 다음날인 28일 성명을 통해 “(영화 ‘도가니’등으로 불거진) 미성년자 및 장애인 대상 성폭행 사건 관련 양형기준을 대폭 강화했음에도 이런 기준이 판결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며 “부당판결로 상처입은 장애계의 민심과 자존감을 다시 세우려면 검찰은 즉각 항소하라”고 촉구하면서 파문이 정치권까지 번지고 있다.
이 사무국장은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장애인 성차별 예방 및 인성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을 교육청에 제안하겠다”면서도 “근데 이건 허구헌날 해오던거라…”라고 말끝을 흐리며 그동안 교육 당국의 장애학생 성차별 문제의 무관심에 대한 성토를 우회적으로 나타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트위터 @noon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