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레이더 THIS] 문턱 높은 태아보험, 임산부 ‘이중 고통’

[건강레이더 THIS] 문턱 높은 태아보험, 임산부 ‘이중 고통’

기사승인 2012-03-20 13: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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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만 따지는 보험사-뒷북치는 감독기관 ‘소비자 나 몰라라’

[쿠키 건강] 태아보험은 출생 시 발생할지 모르는 위험에 대비해 아이가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가입하는 보험이다. 아이가 태어나 선천적 이상증세를 보이거나 저체중으로 인큐베이터를 이용할 경우 도움을 받기 위해 선택하는 대표적 안전장치다. 그러나 정작 보험이 절실한 일부 태아나 신생아들은 보험으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 보험에 가입했더라도 복잡한 보험금 지급 약관 등으로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봤다는 소비자들의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쌍둥이는 태아보험으로부터 소외당하는 대표적 경우다. 현재 국내 주요 보험사 가운데 쌍둥이에게 태아보험의 문을 열어 놓은 곳은 고작 3곳에 불과하며 이조차도 쌍둥이 진단 이전, 인공수정 임신 제외 등 조건이 까다롭다. 보험사별 상품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임신 전 가입했을 경우에 한해 보장받을 수 있고 쌍둥이라는 진단 결과를 받은 뒤라면 가입문턱은 더 높아진다.

8개월 전 쌍둥이를 임신한 이민정(가명·32세·전북 남원) 씨는 “5년 만에 어렵사리 시험관시술로 쌍둥이를 임신한 뒤 저체중아 출산 가능성을 비롯해 혹시나 하는 우려에 태아보험에 가입하려고 했지만 거부당했다”고 하소연했다.

몇몇 특별한 사례자가 당하는 고통이라고 생각해서는 오산이다. 쌍둥이 출산율이 급격히 늘고 있는 현 추세를 감안하면 남의 일이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0년 태어난 다태아 수는 1만 2841명으로, 2005년 9459명에 비해 5년 사이 35%가 늘었다. 태아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신생아들 역시 더욱 많아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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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의 가입 조건을 만족시키는 소비자라 하더라도 관련 정보가 부족해 상품 선택에 애를 먹는 경우가 다반사다. 충분한 설명 대신 단편적 가입 권유에 그치기 일쑤인 보험설계사의 상담을 받은 뒤 제대로 따져 보지 않고 덜컥 가입했다가 중도 해지하는 사례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아이 연령을 기준으로 30세 만기형과 100세 만기형, 서로 다른 상품이 출시돼 있는데다 보험설계사마다 우위비교 설명이 달라 상당수의 소비자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 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최연지(가명·31세·인천) 씨는 “보험사마다 추천하는 상품이 달랐다. 어떤 곳은 어린이보험의 경우 보장내용이 어린이에 치중되어 있기 때문에 나중에 성인이 되면 어차피 바꿔야 한다며 30세 만기형을 권한 반면, 또 다른 곳에서는 30세형은 점점 실손 보장이 축소되기 때문에 100세 만기형을 들어야 한다고 권했다”며 “누구 말이 옳은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가입 조건의 제약과 제공되는 정보의 모호함과 부족함 속에 어렵사리 보험에 가입했다 하더라도 아이의 질병에 따른 경제적 부담에 대해 안심할 수 없다. 적지 않은 소비자들이 계약 시 약관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한 채 가입, 들어 놓은 보험만 믿고 있다가 큰 낭패를 겪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치아가 상한 아이의 보험금 지급을 기대했던 박희영(가명·34세·경기) 씨는 “보험사는 계약 당시 제외되는 부분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며 “계약 시 소비자가 모든 사항을 스스로 이해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보험금을 받지 못하는 선에서 결론이 났다면 그나마 황당함이 덜하다. 소비자가 보험금을 청구했다가 보험사로부터 소송을 당해 법정에 서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운영하는 소비자상담센터 게시판에는 ‘보험금을 청구했다가 소송을 당했다’는 사연이 올려져 있다. 보험소비자연맹의 조연행 부회장은 “소비자를 상대로 소송을 하거나 보험사기로 몰고 가는 것은 일부 보험회사에서 보험금 지급을 피하기 위해 벌이고 있는 관행”이라고 밝혔다.

최근 금융감독원은 접수되는 민원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심각한 보험 관련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보험사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도를 높이자는 것이 주요 내용인데 쌍둥이를 배려한 정책이 눈에 뛴다. 그동안 태아보험에 가입하고 쌍둥이를 출산하면 선둥이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앞으로는 둘째 아이를 포함해 쌍둥이 모두에게 피보험자 자격을 주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다.

반가운 대책이지만 유심히 살펴봐야 할 점이 있다. 금감원이 “쌍둥이라고 진단을 받은 뒤 가입 자체가 제한되는 것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보험회사의 몫”이라고 밝히며 민감한 부분에서는 뒷짐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보험 판매에 개입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녹색소비자연대협의회 조윤미 본부장은 “보험상품 기획 자체부터 소비자와 정부의 의견을 취합하고 있는 선진국에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상품 개발을 기업이 전적으로 맡고 있고, 정부는 개발 이후 판매 단계에서 발생되는 문제에 대해서만 개입하고 있다”며 정부의 보험 감독 방법에 문제를 제기했다.

보험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은 특정 상품에 국한되지 않고 보험 산업 전반에 걸쳐 있다. 그 중에서도 어린이보험은 그 피해가 1차적으로 우리 사회와 어른이 앞장서 보호해야 할 ‘우리의 미래’인 어린이에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이익만을 따지는 보험회사와 뒷북치기에 바쁜 정부. 어디에도 우리 아이의 보험에 대해 터놓고 얘기할 곳이 없다. 소비자의 세심한 선택을 이끌고 도울 수 있는 변화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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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은선 기자 ujuin25@kukimedia.co.kr

조규봉 기자
ujuin25@kukimedia.co.kr
조규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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