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경찰청에 따르면 홍콩 경찰은 김 전 처장의 방에서 유서가 발견됐고 외부 침입과 타살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단 자살로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유서 내용은 유족의 반대로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김 전 처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한 뚜렷한 이유가 없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단서는 김 전 처장이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의 성추문 의혹’을 다룬 글을 퍼 나른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4·11 총선 직전인 지난 3월 야후 블로그 ‘크라임 투 길티(Crime2guilty)’에 올라온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이 제주도에서 골프를 치고 성접대를 받았다’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연동했다. 충북 경찰청은 정 의원의 의뢰를 받아 수사를 진행했다. 경찰 조사를 받던 김 전 처장은 3월 말 “글을 본 적도 없다. 페이스북이 해킹당한 것 같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그는 조사를 마치고 3일 뒤 급히 홍콩으로 출국했다. 경찰은 4월 초 김 전 처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다. 김 전 처장이 수사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러나 김 전 처장은 문제의 글을 직접 올린 사람이 아니어서 이를 자살의 원인으로 보기엔 석연치 않다. 경찰은 글의 최초 유포자를 찾기 위해 수사를 벌였지만 이 블로그가 홍콩 IP를 사용해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범인의 신원은 엉뚱한 곳에서 확인됐다. 이 블로그는 문제의 글이 게시된 3월 이전까지 미래저축은행 김찬경(56·구속 기소) 회장의 비리를 집중적으로 폭로하고 있었다. 저축은행 비리 사건을 수사 중이던 검찰이 이 블로그 주인이 신우코리아 이왕재(43) 대표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이씨는 김 회장이 저축은행으로부터 178억원의 불법 대출을 받도록 명의를 대주고 이를 빌미로 블로그에 폭로 글을 8차례 올렸다. 이씨는 글을 지워주는 대가로 김 회장으로부터 3억8000만원을 뜯어낸 혐의(공갈)로 지난 18일 구속됐다. 경찰은 이씨를 소환해 정 의원 관련 글을 블로그에 올린 경위 등을 추궁할 계획이다.
다만 김 전 처장이 왜 평균 조회 수가 10건도 안되는 이씨 블로그에 접근해 정 의원 성추문 글을 연동했는지는 김씨의 사망으로 영원히 풀리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경찰 조사 후 홍콩으로 출국한 김 전 처장이 당시 홍콩에 머물던 블로그 개설자 이씨를 만났는지 여부도 의문으로 남아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