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휠체어에 의존한 예비 사돈에게 결혼식에서 예비 며느리와의 동반 입장을 못하도록 종용하고 이를 계기로 예비 며느리가 파혼을 결심하자 악담을 퍼부은 한 부모의 빗나간 사랑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여론의 구설수에 오른 결혼식 분쟁은 통상 남녀 문제로 비화되기 마련이지만 이번에는 남성 측이 십자포화를 맞았다.
20일 유명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는 공사현장 사고로 척추를 다쳐 남은 평생을 휠체어에 의존하게 된 하반신마비의 아버지로 인해 남자친구 측 가정과 마찰을 빚고 파혼까지 결심한 여성의 안타까운 사연이 뜨거운 논쟁을 낳고 있다. 여성이 대중에게 상식을 묻기 위해 지난 13일 처음 작성한 이 사연 글은 일주일 지난 현재까지 여론을 가열하고 있다.
여성이 주장한 상황은 이렇다. 여성은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 측과의 지난 6일 상견례에서 예비 시부모로부터 평생 잊을 수 없는 말을 듣고 말았다. 예비 시어머니가 휠체어를 타고 등장한 아버지에게 “딸 결혼식도 보지 못하고 속상하겠다. 휠체어를 타고 앉아 있을 수도 없는데 신부와 입장을 어떻게 하나”라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여성은 항의하려 했으나 “딸 결혼식장에서 아버지가 휠체어를 타고 입장하면 얼마나 보기 안 좋겠냐”고 인정한 아버지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는 남자친구의 눈치를 살피느라 참을 수밖에 없었다. 상견례를 마친 뒤 남자친구에게 입장을 물은 여성은 이틀 뒤 “휠체어를 탄 사돈과 며느리가 신부 행진을 하는 모습을 절대 볼 수 없다”는 남자친구 측 부모의 대답을 들었다.
여성은 같은 날 밤 “딸이 사람들에게 흉보이고 손가락질 당하는 게 싫다”며 신부 행진에서 동반 입장하지 않겠다는 아버지와 “평생 한 번 뿐인 딸 결혼식이니 창피해도 동반 입장하라”는 어머니의 싸움을 보고 파혼을 결심했다. “미안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아버지의 문자메시지도 여성의 마음을 굳건하게 만들었다.
13일 밤 만나 결혼식 문제를 논의한 남자친구는 “친정과 시댁의 결혼식을 따로 하자”는 예비 시어머니의 말을 그대로 전하는 등 좀처럼 중심을 잡지 못했다. 여성은 만류하는 남자친구를 뿌리치고 부모에게 파혼 결심을 전하자 결국 아버지는 울음을 터뜨렸다고 했다. 파혼 소식을 들은 예비 시어머니는 지난 16일 세 차례 전화를 무시한 여성에게 문자메시지로 “결혼이 아이들의 장난이냐. 차라리 잘 됐다. 다리 불편한 아버지나 평생 모시고 살아라”는 내용의 악담을 퍼부었다.
여성은 문자메시지 화면을 공개하고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생각에 무시했지만 화가 난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꿨으나 한 순간 모두 무너져 힘들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아버지의 다리를 창피해 하지 않을 수 있는 현명한 사람과 가정을 만나고 싶다”며 글을 마쳤다.
여론은 순식간에 들끓었다. 자신의 입장만 호소하는 인터넷 사연 글에 대해 최근 균형감각을 갖고 비판적으로 반응하는 네티즌들도 이번에는 일방적으로 여성의 손을 들어주며 남성 측에 십자포화를 가했다. 네티즌들은 “이상한 편견을 가진 가정에서 자란 남성과 결혼할 뻔하지 않았느냐. 아버지 덕에 피했으니 차라리 잘 됐다”거나 “(예비 시어머니는) 향후 치매 등에 시달리면 부끄럽다고 아들에게 자신을 버려달라고 할 것인가”라며 격노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