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타짜’에서 정마담 캐릭터로 카리스마를 뽐내며 팜므파탈의 진수를 보여준 배우 김혜수. 지난 25일 개봉한 영화 ‘도둑들’에서는 미모를 겸비한 금고털이 도둑 팹시로 분해 또다른 매력을 선보인다. 겉으로 보기에는 차갑고 도도하지만 ‘사랑’을 훔치는 매력적인 도둑이다.
강하고 인상 깊은 캐릭터를 주로 맡아서인지 아니면 아역 탤런트로 데뷔해 오랜 시간 여배우 자리에 있어서인지 대중에게는 도도하고 한 성격 할 것 같은 선입견이 있지만 이는 완벽한 편견이었다.
영화 ‘도둑들’(감독 최동훈, 제작 케이퍼 필름) 홍보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김혜수를 만났다.
“저 그렇게 센 여자 아니에요. 매니저들도 저를 처음 보고 2주간 살이 쪽쪽 빠지더라고요. 제가 무서울 줄 알고 긴장했대요. 저 정말 아닌데…”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허그혜수’로 통하는 그다. 동료배우들은 물론 막내 스태프에게도 먼저 인사말을 건네고 촬영이 끝난 후에는 스태프 모두 따뜻하게 꼭 끌어 안아준다.
“제가 워낙 이름을 잘 못 외워요. 좋은 사람들과 한 작품을 위해 달려가고 그 작업이 끝나고 나면 정말 아쉬워요. 물론 쫑파티나 다른 작품을 통해 만날 수는 있지만 이 작품을 하면서는 다시는 못 만나는 유한한 거잖아요.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짠하고 눈물이 글썽이죠. 꼭 안고 다 같은 마음을 느끼는 그 순간이 정말 소중해요.”
영화 ‘도둑들’ 역시 마지막 촬영 날 모든 스태프들과 아쉬움을 나눴다. 최동훈 감독이 ‘영화인 중에는 김혜수와 포옹을 나눈 자와 그렇지 않은 자 두 분류로 나뉜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도둑들’은 김혜수 외에도 김윤석, 이정재, 전지현, 김수현 등 톱스타들이 총출동하며 개봉 전부터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영화는 마카오 카지노에 숨겨진 희대의 다이아몬드 ‘태양의 눈물’을 훔치기 위해 한 팀이 된 한국과 중국의 프로 도둑 10인이 펼치는 범죄 액션 드라마다.
영화는 개봉 6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물론 영화가 많은 관객과 만나면 기쁜 것은 당연지사지만 김혜수는 흥행에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그런 쪽으로 상당히 단순해요. 작품과 ‘제 역할만 잘해야지’라는 생각이 크죠. 그래서인지 흥행에 대한 부담은 없어요. 흥행이 욕심만 갖고 되는 게 아니니까요. 기본적으로 저는 승부욕을 안타고 났어요. 그게 단점이 되기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승부욕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이 때문에 본인은 편하지만 주변에서 발을 동동 굴리며 큰 걱정을 한다며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제 매니저는 저의 이런 초연한 모습에 실망했다고 하더군요. 작품이 잘 안되면 저보다 더 속상해하면서 답답해해요. 정작 전 괜찮은데 말이죠(웃음). 물론 이왕이면 일등을 하는 게 좋죠. 꼴찌를 해도 괜찮다는 것은 아니지만 승부가 다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제가 일등을 못 해봐서 더 욕심이 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 것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즐기며 살고 싶어요.”
일등에 욕심이 없다고 해서 ‘적당한 태도’로 작품에 임하는 것은 아니다. 죽을힘을 다해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관객에게 맡겨두는 것일 뿐. ‘도둑들’을 촬영하면서도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다. 특히 수중신을 찍고 난 후에는 공황장애 증상을 보이기도 했다.
“손과 발을 묶고 물속에 빠지는 신이 있어요. 수중 신은 과거에도 몇 번이나 찍은 적이 있고, 전문 인력들이 대기하고 있기에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머리로는 잘 알고 있었죠. 하지만 제 감정과 심리상태가 너무 불안했는지 공황장애 증상을 보이기도 했어요. 진짜로 죽을 것처럼 숨을 못 쉬었거든요. 몸이 마비되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죠. 저 스스로도 정말 당황스러웠어요.”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면서 수중 촬영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끝까지 연기를 해냈고 성취의 뿌듯함을 느끼는 그 순간 배우가 천직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촬영에 임하는데 배우인 제가 무섭다고 도망갈 수는 없잖아요. 하나를 쫓아 모든 것을 바친다는 것에 대한 경이로움과 비애가 동시에 왔어요. 배우를 하면서 늘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낯선 감정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힘든 촬영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던 것은 동료배우들의 응원 덕분이었다. 특히 김윤석은 힘들어 하는 김혜수에게 애정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톱스타들이 대거 출연하는 만큼 촬영장 내 기 싸움이 만만치 않았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이들의 분위기는 ‘가족’ 그 자체였다. 홍콩, 마카오 촬영 때는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여 직접 음식을 해먹으며 친분을 쌓았다.
“윤석 오빠가 정말 마카오 박처럼 팀원들을 잘 이끌었어요. 처음에는 사람을 좋아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저희를 위해 많은 희생을 한 거죠. 늘 윤석 오빠 방에 모였는데 한번 모이면 음식에 쓰레기와 담배 냄새에 난리도 아닌데 매일 그 공간을 내줬어요. 또 요리에 일가견이 있어 수육도 자주 해주더라고요. 김해숙 선배님은 밑반찬을 싸와서 나눠주셨고요. 정말 엄마 아빠 같은 분들이었어요.”
음식을 함께 먹으며 나눈 정 때문일까. 영화 속 이들은 찰떡 호흡을 이룬다. 극중 마카오박으로 분한 김윤석은 “여기 모인 여러분들은 훌륭한 전문가들입니다”라는 대사를 하는데 이는 배우들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됐다. 베테랑 배우들이 모인 만큼 각자의 캐릭터 소화 능력이 뛰어났다.
특히 줄타기 전문도둑 예니콜 역을 맡은 전지현은 통통 튀는 캐릭터로 제2의 전성기를 맞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것에 대한 서운한 마음은 없을까.
“배우들은 각자의 몫을 정확히 해야 해요. 더 하고 싶어도 작품에 맞지 않는다면 불필요한 욕심을 자제해야 하죠. 다 짓밟고 나만 잘돼보자 라는 생각은 독이에요. 팹시는 조용히 잘 버텨야 돋보이는 캐릭터예요. 현란한 캐릭터들이 관객을 견인할 때 제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죠. 물론 튀는 건 튀는 거대로 어렵지만 묵묵히 버티는 캐릭터를 연기할 때 더 큰 고충이 있어요.
한눈에 들어오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상당한 연기 내공으로 안정된 톤의 팹시를 소화했다. 그가 중심을 잡아준 덕에 튀는 캐릭터들이 뜨지 않고 하나로 어우러져 조화를 이뤄냈다. 이에 대한 김혜수의 만족도도 상당했다.
“100점 만점이라면 그 이상을 주고 싶어요. 상업영화가 제공해야 할 서비스 그 이상을 한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해요. 충분히 기대할 만한하고 영화적 풍성함을 마음껏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 / 사진=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