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 김씨 책상엔 덩그러니 교수의 휴대폰이 올려져 있었다. 김씨는 지도교수가 사용하는 모든 전자제품을 관리하고 있다. 휴대폰 수리는 물론이고 교수 개인 컴퓨터 포맷이나 교수 자녀가 사용할 전자제품의 시장조사도 김씨의 몫이다. 이 때문에 김씨는 연구실 동료들에게 ‘IT매니저’로 불린다.
같은 대학 이공계열 대학원에 다니는 심성훈(26·가명)씨는 지난달 중순 지도 교수로부터 휴가철 가족여행 일정을 짜라는 지시를 받았다. 심씨는 본인도 가 본적 없는 유럽 국가의 여행 일정을 계획하고 항공권, 호텔 예약 등을 하느라 막상 공부는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서울 소재 Y대 대학원에 다니는 김민제(27·가명)씨도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지도교수가 고기파티를 한다며 연구실 학생들을 집으로 초청했는데 막상 가보니 정원의 잔디를 깎으라고 시킨 것이다. 김씨는 “지도교수가 지방으로 출장을 가게 되면 대부분 자신에게 운전대를 맡긴다”며 “마치 공부하러 온 학생이 아니라 교수의 개인 기사로 불려온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대학원생을 ‘개인비서’처럼 부리는 지도교수들의 오랜 병폐가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 대학원생들은 지도교수의 개인 심부름은 물론 연구성과까지 갖다 바치는 실정이다. 그러나 대학원생들은 교수 눈 밖에 날까봐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심지어 상당수 교수들은 오래 전부터 관습처럼 이어져 내려오던 문제라 새삼스러울 게 없다는 입장이다.
김삼호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도교수는 대학원생의 미래를 결정지을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무조건 말을 들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현실적으로 교수의 자정노력을 기대하는 것 외엔 이같은 병폐를 해결할 마땅한 대안이 없다”고 설명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