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게임’ 애니팡, 만든 사람은 과연 몇 점일까?

‘국민게임’ 애니팡, 만든 사람은 과연 몇 점일까?

기사승인 2012-10-05 20:15:00

[쿠키 IT] 모바일 게임 ‘애니팡’은 가수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 케이블방송 tvN의 드라마 ‘응답하라 1997’과 함께 올해 하반기 문화 키워드로 기록될 만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최근 젊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서든 애니팡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관련 주식은 급등했고 유사 게임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흥행 돌풍은 단시간에 할 수 있는 단순함, 카카오톡의 방대한 인적 데이터베이스를 게임에 접목한 기술, 친구를 제치고 상위권에 오르고 싶도록 만드는 경쟁심 등이 맞물려 나타난 현상으로 분석된다.

회사원 K씨는 요즘 난데없는 승부욕에 불타 있다. 퍼즐 게임 ‘애니팡’에 빠져 ‘하트’(게임할 수 있는 기회)가 다할 때까지 스마트폰을 좀체 손에서 놓을 줄 모른다. 업무를 보거나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자꾸만 초록 생쥐, 분홍 돼지, 잿빛 고양이 등이 눈앞에 가지런히 나타나 이것부터 맞추지 않고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정도다. 오늘 아침에는 집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애니팡을 하다가 정거장을 지나쳐버렸다. 하행선으로 갈아타고 돌아오며 서른 넘은 나이에 이 무슨 게임중독이란 말이냐 따끔하게 자책하면서도 끊겠다는 결심까지는 하지 못했다.

애니팡은 일곱 가지 동물이 뒤섞인 채 가로·세로 각각 일곱 줄에 배치되는 게임이다. 1분 안에 같은 동물을 일렬로 세 마리 이상 맞추면 되니 얼마나 간단명료한가. 한 줄로 맞춰진 동물이 터지면서 점수가 오르고, 폭발로 생긴 공백은 위에 있던 동물들이 내려앉으면서 채워진다.

애니팡을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없다. 지난 7월 말 세상에 나와 40일 만에 ‘국민게임’ 칭호를 받았다. 최근에는 이용자 1200만명을 돌파했다. 그동안 1000만명 넘게 하는 게임은 10년 전의 카트라이더가 유일했다. K씨도 이렇게까지 심취한 게임이 ‘앵그리버드’ 이후로 없었다.

애니팡이 단순함만으로 모바일 게임업계를 평정한 것은 아니다. 강력함은 가입자 6000만명을 자랑하는 무료 채팅 애플리케이션(앱) ‘카카오톡’의 인맥에서 나온다. 애니팡의 풀네임 ‘애니팡 for Kakao’(카카오톡을 위한 애니팡)는 그냥 지은 이름이 아니다. 애니팡은 카카오톡 친구 중 애니팡 이용자를 점수 순으로 1등부터 꼴찌까지 나열한다. 이것이 경쟁심을 자극해 게임에 더 집착하게 만든다. K씨는 회사 동료 L씨를 제치겠다는 일념으로 애니팡에 빠져들었다. 그의 카카오톡 친구 1826명 중 3분의 1에 이르는 616명이 애니팡을 한다.

스마트폰에 카카오톡을 설치했다면 친구들에게서 애니팡 초대장과 하트가 쇄도한다. 카카오톡 친구에게 초대장이나 하트를 보낼 때마다 자신에게도 하트가 생겨 게임을 한 판씩 더 할 수 있다. 이런 하트가 개당 5원이라는 분석도 있다.

입문 전까지 카카오톡으로 날아오는 초대장과 하트는 K씨에게 한낱 스팸에 불과했다. 시도 때도 없이 ‘딩동∼딩동∼’ 울리는 초대 알림 메시지는 업무방해죄로 처벌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장모님이 자꾸 하트를 보낸다는 웃지 못할 사연이 있는 사람도 있다. 헤어진 여자친구한테서 받았다는 사람도 꽤 많다. K씨는 인간관계가 껍데기만 남아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세태를 개탄하며 초대장과 하트를 지우고 또 지웠었다.

최근 K씨는 10만점을 넘기고 나서 진도가 안 나간다. 친구들 중 1등은 대개 40만점 수준이다. 통설에 의하면 인간이 달성할 수 있는 점수는 최대 80만점대라고 한다. 애니팡을 만든 사람도 20만점 정도라니 그마나 위안은 된다.

급기야 인터넷에서 고득점 비법을 검색해본다. 왕도는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구글에서는 관련 정보가 50만건이나 검색된다. 9단 콤보(연속 맞춤) 뒤에 폭탄을 터뜨리라는 조언. 말이 쉽지 눈이 그렇게 빠르지 않아 따라가지 못한다. 140만점을 넘긴 사람의 동영상이래서 혹하고 재생했는데 웬걸 세 명이 머리를 맞대고 하고 있다. 꼼수는 부리지 않겠다고 혼잣말하지만 K씨는 체면 때문에 누구와 함께하자고 말을 건넬 용기도 없어 오늘도 혼자 진땀을 흘리고 있다.

주식시장에서 애니팡 테마주는 박근혜·안철수 등 정치테마주 부럽지 않다. 코스닥 상장기업 와이디온라인은 애니팡을 만든 업체 선데이토즈와 손을 잡자마자 주가가 훨훨 날았다. 애니팡 효과로 주가가 너무 올라 한때 거래 정지를 당하기도 했다. 한 증권사는 애니팡의 하루 가치를 최대 20억원으로 환산했다.

인기만큼 구설도 잦다. 지난달엔 여성가족부가 애니팡에도 일정 시각 이후 게임을 차단하는 ‘셧다운제’를 적용한다고 해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네티즌은 “우리의 애니팡을 막지 말라”며 벌 떼처럼 달려들었다. 화들짝 놀란 여성부는 애니팡이 셧다운제 대상이 아니라고 공개 발표까지 했다.

애니팡은 동물 학대 논란에도 휩싸였다. 동물사랑실천협회 등 동물보호론자들은 동물 모양을 터뜨려 득점하는 방식을 문제 삼았다. 옹호론과 비판론이 잠시 맞서는 듯했지만 공감을 얻지 못해 촌극으로 끝났다.

잠잠해지나 싶었는데 이번엔 영업방해 논란도 뜨겁다. 애니팡이 업데이트되면서 특정 앱을 삭제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잘나가더니 이젠 배짱 영업이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애니팡 측은 애니팡 점수 조작에 특정 앱이 쓰여서 막았다고 해명했지만 이 앱의 개발업체들은 쉽게 물러설 기색이 아니다.

애니팡이 뜨자 여기저기서 유사 게임이 얼굴을 내민다. 특히 ‘캔디팡’은 애니팡의 대항마로 꼽힌다. 출시 일주일 만에 다운로드 600만건을 넘어서면서 애니팡의 기록(한 달 만에 500만건)을 가볍게 깼다. 캔디팡 역시 애니팡처럼 블록 세 개를 맞추면 득점하는 퍼즐이다. 카카오톡에 연동된다는 점도 같다. 심지어 ‘○○팡’이라는 이름까지 비슷하다.

아무튼 애니팡은 고전 게임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접목해 ‘폭풍 성장’했다. 같은 모양을 맞춰 점수를 따는 퍼즐은 새로운 게임이 아니다. 아는 사람 간에 순위를 매겨 경쟁을 촉발하는 방식이 흥행 공신인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애니팡의 ‘젖줄’이 한국 입시제도라는 진단까지 나왔다. 제한시간 안에 문제를 풀고, 서열이 매겨지는 입시 제도를 닮았다는 지적이다.

K씨는 조금 전 회사 선배로부터 하트를 받았다. 언젠가부터 대화를 위한 카카오톡 메시지 수보다 하트 때문에 날아오는 메시지가 더 많아졌다. 그는 아직 하트를 보낸 적은 없다. 하트를 받았을 때 귀찮아할 상대의 반응 때문이고, 애니팡을 한다는 사실을 알리기가 부끄러운 탓이다. 하트가 다했을 땐 초대장과 하트 발송의 충동에 직면하지만 머뭇거리다 포기한다. 차라리 돈으로 사지. 하트는 돈으로도 살 수 있잖아. 국민일보 쿠키뉴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김상기 기자
kcw@kmib.co.kr
김상기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