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난 2004년 모바일드라마 ‘다섯개의 별’로 데뷔한 정겨운. 이후 ‘태양의 여자’ ‘닥터챔프’ ‘샐러리맨 초한지’ 등 다수의 드라마를 통해 한 단계씩 성장해왔다. 지난달 19일에 개봉한 영화 ‘간첩’은 데뷔 8년 만에 출연한 첫 영화다.
첫 스크린 신고식을 치른 정겨운을 최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재벌남’ 캐릭터를 자주 맡아서인지 차갑고 까칠할 것 같은 이미지가 강했지만 실제 그는 솔직하고 소탈한 사람이었다.
야외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 테이블 밑에서 고양이 배설물을 발견하고는 기겁하며 자리를 옮겼고 “연이어 인터뷰를 하다 보니 혼이 쏙 빠졌다”며 대화 중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멘붕’을 외쳤다. 겉모습과 다른 엉뚱한 반전 매력이 돋보이는 배우였다.
“생긴 것과 다르게 실제는 인간적이고 소박합니다. ‘된장남’ 같아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남자들이 좋아한다는 차에도 관심이 없거든요. 작품에서 ‘재벌남’으로 많이 등장하는데 실제 저는 그것과 거리가 멀어요. 그런 모습을 상상한다면 매우 부담스럽습니다.”
‘간첩’(제작 영화사울림)은 간첩신고보다 물가상승이 더 무서운 생활형 간첩들의 이중 작전을 그린다. 기존에 간첩이 갖고 있던 어둡고 비장한 이미지를 벗어나 실제 주위에 있는 평범한 이웃, 동료, 가족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정겨운은 FTA에 맞서며 한우를 지키는 농촌 총각 우 대리로 분해 웃음을 자아낸다.
데뷔 8년 만에, 영화를 통해 팬들을 만나게 된 정겨운. 오래 기다린 만큼 첫 스크린에 데뷔한 소감도 남달랐다.
“그동안 정말 영화에 출연하고 싶었습니다. 여러 번 도전했지만 투자가 안 되거나 최종 단계에서 다른 배우에게 빼앗겼죠. 운이 안 따라줬던 것 같아요. 오래 기다렸고 드디어 ‘간첩’을 통해 영화배우가 됐습니다.”
자신의 영화가 생기고 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은 ‘무대인사’였다. 영화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영화를 홍보하고, 기자들과 만나는 인터뷰 등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꿈이고 소망이었다.
“제가 출연한 작품을 자신 있게 소개해주고 알려주는 것들을 꼭 해보고 싶었습니다. 막상 해보니까 힘든 점도 분명 존재하지만 상상했던 것처럼 재밌고 좋습니다. 무대인사에서 ‘제가 맡은 역은 우 대리고요. 날씨가 안 좋은데도 많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고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릅니다.(웃음)”
연기파 배우 김명민, 유해진과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것도 정겨운에게는 큰 수확이다. 두 사람에게 특별히 연기지도를 받은 적은 없지만,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배웠다고.
“두 분 다 연기를 할 때 몰입하는 정도가 장난이 아닙니다. 해진 형은 남자인 제가 봐도 ‘멋있다’고 느낄 만큼 마초 같은 면이 있고, 명민 형은 상당히 재밌고 유쾌합니다. 또 배우로서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서도 많은 것들을 알려주셨습니다.”
김명민은 상대 배우에게 연기지도를 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후배가 먼저 고민을 들고 찾아오면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가 정겨운에게 깨우쳐준 것은 무엇일까.
“저는 늘 인사를 한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잘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런 고민 상담을 했더니 제게 ‘고개를 더 숙여서 정중히 인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몰랐는데 제가 인사할 때 고개만 까딱하는 것 같아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 후부터 정수리가 보일 정도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사람들이 인사를 받아주기 시작했습니다. 제게는 배우 인생에 있어 잊을 수 없는 값진 조언이었습니다.”
영화배우로 발돋움 한 그의 목표는 ‘신인상’이다. 영화로는 첫 작품이긴 하지만 평생 단 한번 밖에 받을 수 없는 신인상을 꼭 받고 싶다는 것. 그러면서도 상보다는 관객과의 소통이 더 중요하며 방긋 웃었다.
“늘 열심히 해서 상을 받을 거야라는 다짐을 합니다. 물론 상을 위해서 연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관객과의 소통과 감정의 공유가 가장 중요하니까요. 또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상은 따라오지 않을까요(웃음).”
영화의 단맛에 푹 빠졌다는 그는 다음 작품도 드라마가 아닌 영화를 택했다. 아직 많은 것을 밝힐 수는 없지만 평소 꼭 하고 싶었던 로맨틱 코미디라고.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캐릭터도 무궁무진했다.
“살인자 캐릭터를 꼭 해보고 싶습니다. 히어로 물도 좋고요. ‘전우치’의 강동원 씨 캐릭터를 제 스타일대로 연기해보고 싶기도 하고요.”
지금의 위치까지 한 단계씩 올라온 그는 갑자기 올라간 적이 없기에 추락도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답답하다며 ‘도대체 너는 왜 못 뜨는 거니’라고 스스로에게 묻고 싶단다.
“수위를 조절하면서 연기자로 산다는 것이 무척이나 힘듭니다. 조금씩 쌓아놓은 제 위치에서 떨어지지 않고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데, 가끔은 그런 과정을 통해 ‘인생 참 재미없게 산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더 노력해야 하는 수밖에 없겠죠(웃음).”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 / 사진=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