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2005∼2007년 여기저기에서 돈을 끌어다 부동산 사업에 투자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유지했지만 빚 독촉을 견디지 못하고 2008년 10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는 사채업자 K씨(40)로부터 연이율 30%로 7000만원을 빌린 상태였다.
몇 년째 빚쟁이들에게 시달려온 A씨의 아내와 자식, 어머니는 2009년 1월 법원에 상속포기 신고를 했다. A씨의 형 B씨(51)도 다른 채권자의 빚 독촉을 받고 2009년 9월 상속을 포기했다. 상속 포기를 하지 않으면 빚을 고스란히 가족들이 져야 하는데, 가족 모두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았다.
그러자 K씨는 “빚을 갚지 않으려고 일부러 재산을 탕진했다”며 A씨의 아내와 자식들을 상대로 상속포기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A씨의 아내와 자녀들은 대법원까지 간 끝에 2011년 6월 면책 판결을 받았다. 다음은 형제자매 차례였다. K씨는 같은 해 8월 B씨 등 A씨의 5남매를 상대로 또다시 돈을 갚으라고 소송을 냈다. A씨의 무덤 사진을 찍어서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하기도 했다.
K씨는 2009년 4월 B씨에게 발송한 ‘3순위 상속인이 됐다’는 내용증명 우편물을 근거로 들었다. B씨가 상속포기 기한 3개월을 넘겨 포기 신고를 했기 때문에 A씨의 채무가 상속됐다는 주장이었다. 1·2심 모두 채권자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달 26일 “B씨가 상속인이 된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면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B씨가 K씨에게 빚을 갚아야 할지 여부는 수원지방법원에서 최종 결정된다. B씨를 무료 변론한 송철훈 변호사는 5일 “채권 소송을 많이 봤지만 수년에 걸쳐 형제자매들까지 뒤쫓아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거의 처음 봤다”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B씨의 어려운 사정을 알고 수임료를 받지 않은 채 3심까지 소송을 도와줬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