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 높은 스트레스가 건강을 해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인체에 열을 만들며 그 열이 전신기능에 장애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드물다. 특히 일상에서 받는 소소한 스트레스는 시나브로 이러한 열로 우리 몸을 잠식한다.
실제 인간에게는 체표온도 외에도 ‘심부온도(deep body temperature)’란 것이 존재한다. 심부온도는 뇌, 대동맥혈, 내장 등 인체 중요 장기의 고유온도로 환경변화에도 불구하고 항시 37도 내외를 유지함으로써 인체의 생리작용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다만 주기적으로 스트레스에 노출될 경우 이 심부온도마저 항온성을 잃고 보호 작용에 의해 스스로 온도를 높이게 된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아예 화열로 인해 혈맥이 마르고 체내에는 담음(대사장애의 원인이 되는 병적요소)이 쌓여 기혈이 막힌 ‘울결(鬱結)’이라고 하며 치료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그 결과는 생각보다 치명적이다. 먼저 부신의 반응을 항진시켜 스트레스호르몬 ‘코르티솔’을 과잉 분비시킴으로써 혈당과 혈압을 상승시키고 근조직의 손상을 야기한다.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같은 성인병은 물론 원인을 알 수 없는 만성적인 근골격계 통증 역시 이러한 배경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스트레스는 위벽을 헐게 해 궤양과 소화 장애를 일으킬 수 있고 심장의 열은 심계항진(가슴 두근거림)과 흉통을 야기한다. 무엇보다 머리의 경우엔 안면홍조, 탈모, 어지럼증, 안구충혈 같은 증상의 원인이 된다. 최근에는 특이하게 ‘이명(귀울음)’과 같은 청각질환을 호소하는 이들도 증가하는 추세다.
이명이란 주변에 아무런 음원이 없는데도 매미소리나 모기소리, 초음파음 같은 소리가 들리는 질환을 말하는데 스트레스와 연관이 깊다. 유종철 마포소리청한의원 원장은 “스트레스로 생긴 열은 위로 상승하려는 성질이 있어 안면부로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내이의 압력도 증가하면서 청각세포에 이상 진동을 일으켜 이명을 야기하기 쉽다”며 “특히 평상시 소음에 노출이 잦았거나 섭생이 불량해 청신경의 영양이 부족한 이들, 그리고 귀와 관련된 장기인 ‘신장’의 기능이 쇠약한 이에게서 발병률이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때 스트레스만 해소하면 몸은 정상적으로 돌아올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방어기제를 점차적으로 손상시켜 저항기능 자체를 상실하게 만든다. 이를 소진단계(burn-out)라 하는데 세포회복력과 신진대사가 이미 회복력을 상실한 상태에 해당한다. 개인에 따라 장부의 손상은 물론 체온조절시스템마저 고장 났을 수 있기 때문에 단순한 휴식과 안정만으로는 상태를 개선하기 힘들다. 귀, 머리, 가슴 등 신체 곳곳에는 계속해서 열이 정체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치료를 위해서는 황금, 백질려, 조구등 같은 청열한약재를 이용해 열독이 뭉친 신체부위와 장부를 해소하고 보사법에 의거한 침구치료를 통해 전신기능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체내에 더 이상 열이 누적되지 않으면서 원활하게 순환되도록 신체기능을 정상회복 시키는 것이 치료의 온전한 목표다.
유종철 원장은 “별다른 이유 없이 이명, 두통, 탈모, 어지럼증 등이 심해졌다면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 악화의 신호로 판단하고 가능한 가까운 의료기관을 찾아 조기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며 “장기간 방치할 경우 면역기능자체가 약화돼 치료 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예후마저 나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스트레스 누적을 막기 위한 생활관리도 중요하다.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은 심장과 폐에 산소흡입량을 늘리고 뇌의 활동을 촉진시켜 스트레스 해소물질의 분비를 촉진한다. 또 복식호흡은 횡경막의 운동성을 강화시켜 혈압과 심박동을 안정시키고 미주신경(부교감신경의 하나)을 활성화해 마음과 정서를 편안하게 만든다.
음식으로는 우유나 홍차가 추천된다. 우유에는 트립토판이라는 필수 아미노산이 들어있어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하고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한다. 또 런던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홍차는 코르티솔 호르몬 생성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얼마 전 한 케이블 방송에서도 각 분야 임상전문의 15명이 출연해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욱하는 성격’과 ‘참는 성격’ 중 어떤 성격이 건강에 더 나쁘냐는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결과는 의외였다. 스트레스를 속으로 참는 것이 더 해로울 것이라는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7:8로 분분한 의견을 보여 스트레스는 그 자체만으로도 위험하다는 중론을 보였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박주호 기자 epi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