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문화] 와이어를 타고 공중으로 날아올라 자신의 히트곡 ‘낙원’을 부른 뒤 가수 싸이(본명 박재상·36)는 이렇게 말했다. 신곡 ‘젠틀맨’이 망해도 상관없다고, 온 나라가 이렇게 관심을 가져준 게 자랑스럽다고.
1997년 발표된 남성듀오 카니발의 노래 ‘거위의 꿈’이 이어졌다. 관객도 한목소리로 합창했다.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수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날을 함께 해요….’
그는 지면에서 수십 미터 위로 날아올라 관객 4만5000명을 내려다봤다. 그의 표정이 일순간 일그러졌다.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눈시울이 서서히 붉어지더니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싸이는 피아노 반주 없이 노래를 이어갔다. ‘나 웃을 그날을, 우리 웃을 그날을 함께 해요.’ 그는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고, 공연장엔 함성이 메아리쳤다.
싸이는 13일 밤 서울 성산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연 컴백 콘서트 ‘해프닝(HAPPENING)’을 통해 그간 자신에게 누구보다 든든한 힘이 돼준 국내 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는 모든 에너지를 무대에 쏟아 부었고, 관객들은 시종일관 함성과 갈채로 그의 귀환을 환영했다.
# 광란의 콘서트
콘서트는 오후 6시43분쯤 무대 양옆에 설치된 전광판을 통해 신곡 ‘젠틀맨’에 관객들이 ‘떼창(합창)’해야 할 부분을 숙지시키는 문구가 나오면서 시작됐다. 싸이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관객들은 ‘젠틀맨’ 음악에 맞춰 흰색 야광봉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젠틀맨’이 끝나자 전광판엔 지난해 7월 ‘강남스타일’이 발표된 뒤 지금까지 싸이의 글로벌한 행보를 보여주는 장면이 차례로 등장했다. 미국 NBC ‘투데이쇼’ 출연, 반기문 UN 사무총장 접견, 프랑스 파리에서 펼쳐진 ‘강남스타일’ 플래시몹….
이어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2010년 발표된 ‘롸잇 나우(Right Now)’ 전주가 흘러나왔고, 싸이가 무대에 등장했다. 관객들이 내뱉는 천둥 같은 함성이 공연장을 뒤흔들었다. ‘연예인’ ‘예술이야’ 등 히트곡이 이어졌다. 싸이는 ‘예술이야’가 흘러나올 때 말했다. “많은 분들이 신곡의 첫 무대를 왜 한국에서 하냐고 물어봐서 대답했습니다. (저는) 한국가수잖아요.”
30억원 넘는 제작비를 투입한 블록버스터 공연답게 화려한 조명과 폭죽, 특수효과가 무대에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관객들 대다수는 공연 내내 자리에서 일어나 콘서트를 즐겼다.
싸이는 그간 외국 활동에 치중하며 느낀 고충과 부담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해외 생활하면서 뭐가 제힘드냐고 사람들이 물어볼 때가 많았다. 떡볶이가 그렇게 먹고 싶더라(웃음)” “한국 분들이 내 진가를 알아보는데 10년 걸렸다. 해외에서도 10년쯤 지나면 내 진가를 알아봐주실거다”….
관심을 모은 ‘젠틀맨’ 뮤직비디오가 전광판을 통해 세계 최초로 공개됐을 땐 객석 곳곳에서 폭소가 터졌다. 공연이 후반부로 치달을수록 싸이는 “지치면 지는 겁니다. 미치면 이기는 겁니다”라고 외치며 관객들을 독려했다. 본 공연 마지막 곡인 ‘강남스타일’이 나올 땐 4만5000명이 단체 ‘말춤’을 추는 장관이 펼쳐졌다.
# 화려했던 게스트, 화끈했던 뒤풀이
YG엔터테인먼트에서 싸이와 한솥밥을 먹는 후배 가수들의 무대도 돋보였다. 공연 중간 중간엔 걸그룹 투애니원, 그룹 빅뱅의 리더 지드래곤(본명 권지용·25) 등이 게스트로 등장해 와이(Y)자형 돌출 무대를 종횡무진 휘저으며 명불허전의 실력을 뽐냈다.
유튜브나 케이블 채널 Mnet 등을 통해 생중계된 본 공연은 밤 9시쯤 끝이 났지만 ‘진짜’ 공연은 이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전광판에 ‘지금부터 ‘해프닝’ 생중계 성공 기념 뒤풀이를 시작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졌고, 싸이는 흥겨운 가요 메들리를 열창했다. ‘날 떠나지마’ ‘환상속의 그대’ ‘잘못된 만남’ ‘붉은 노을’ ‘여행을 떠나요’…. 공연장은 그야말로 거대한 클럽이었다. ‘강남스타일’이 다시 나올 때 싸이는 관객들을 상대로 1절을 온전히 ‘떼창’으로 채워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그는 공연 말미에 말했다. “오늘 공연 끝나고 나면 얼마 뒤 다시 외국으로 나갑니다. 여러분 모습 마음 속 깊숙이 간직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대한민국 가수 싸이였습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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