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영화] 때로는 우리의 삶이 더 드라마틱할 때가 있다. 이는 성악가 김호중에게 더욱 와 닿는 이야기이다.
어린시절 조직폭력배 생활을 하던 그는 김천예술고등학교 서수용 교사를 만나며 어두운 생활을 청산하고 성악가의 꿈을 이뤘다.
김호중과 그의 스승 서수용의 이야기는 영화 ‘파파로티’로 고스란히 옮겨져 대중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김호중을 모델로 만든 이장호는 이제훈이, 서수용 교사를 모델로 한 나상진 역은 한석규가 열연을 펼쳤다.
최근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호중은 자신이 성악가의 꿈을 이뤘고, 그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놀랍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파파로티’는 4년여 준비과정 끝에 관객과 만나게 된 작품이다. 그 기간 동안 김호준은 “과연 영화로 탄생할 수 있을까”라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있었다. 시사회를 통해 처음 영화를 보고 난 후, 그제야 실감 났고 기쁨과 슬픔의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선생님에 대한 감사와 그를 도와 줬던 형의 죽음 등을 영화를 통해 다시 느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실감하지 못했어요. 시사회 당일이 돼서야 ‘와, 정말로 영화가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떨리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는데 저만 느낄 수 있는 공감대와 이야기들이 눈에 보이는 거예요. 가슴이 정말 먹먹했어요.”
가장 공감했던 장면을 묻자 조진웅이 연기한 친한 형의 장례식 장면을 꼽았다. 이제훈은 친한 형의 죽음 후 한석규에게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요’라고 물으며 오열한다. 이 장면보다 더 임팩트 있는 장면은 많았지만 당시 그 사건은 인생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된 계기였기에 단연 최고였다는 설명이다.
“제가 정말 믿고 의지했던 형이에요. 영화에서처럼 싸우다가 죽음을 맞이한 건 아니었지만 제 마음에 가장 깊이 박혔어요. 형 생각이 많이 나기도 했고요. 당시에도 많이 울었고 영화를 보면서 또 다시 눈물을 훔쳤지만 영화 속 이제훈 씨가 저를 대신해 더 많이 울어 줘서 정말 감사했어요.”
자신의 모습을 이제훈이 연기, 스크린에 부활시킨 것에 대한 만족도도 대단했다. ‘고지전’ 이후 이제훈의 팬이었고 이장호 역에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단다.
“이제훈 씨를 보면서 정말 무서운 신인배우가 나타났다고 생각했는데 그 분이 제 역할을 연기해서 정말 신기했어요. 관객들은 저를 검색해 보기 전까지는 저를 이제훈 씨의 모습으로 상상할 텐데 그것만으로도 정말 좋아요(웃음). 물론 나중에 제 모습을 보시고는 실망하실 수 있겠지만요.”
이제훈은 건달의 현실과 성악가의 꿈 사이에서 방황할 때의 흔들리는 눈빛을 설득력 있게 소화하는가 하면, 음악에 빠진 순수한 아이 같은 모습에서 아마추어 학생과 천재적 테너를 오가는 모습까지 스펙트럼 넓은 캐릭터를 세심한 내면 연기로 표현했다.
영화는 완성도를 위해 노래 부분에서는 성악가 강요셉의 도움을 받았다. 김호중이 직접 불렀다면 어땠을지 묻지 “(이제훈과) 음색이 맞지 않아 할 수 없었다”며 웃었다.
“제 이야기이니까 제가 대신 노래를 부르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도 했었죠. 하지만 저는 목소리가 두꺼운 편이라 이제훈 씨와는 잘 맞지 않아 테너 강요셉 씨를 추천했어요. 더욱이 거의 독일에서 지내는 강요셉 씨가 아주 잠깐 한국에 온 사이 운 좋게 대역 제안을 하게 됐고, 흔쾌히 참여를 결정해 주셨어요. 정말 운명 같은 일이었죠. 며칠만 늦게 결정 났어도 영화에서 강요셉 씨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 뻔했어요.”
이처럼 대역 섭외까지 직접 나서 적극적으로 도왔지만 처음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화한다는 제안을 받았을 때는 한참을 고민했다. 떳떳하지 못했던 과거를 영화를 통해 전 국민에게 알리는 셈이고 클래식이라는 음악을 하고 있는 지금의 자신에게 해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통해 자신과 같은 삶을 살았던 있는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제안을 수락했다.
“클래식하는 분들은 클래식을 고급적이고 귀족적인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아요. 방송을 통해 노출되는 것에 대해서도 ‘쟤는 성악가 아니야. 방송하는 애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SBS ‘스타킹’ 출연 이후 독일에 가서 공부한 것도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영화로 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면 저의 과거나 그런 것들의 꼬리표를 평생 달아야 할 것 같았어요. 하지만 이를 풀어야 하는 것도 제 일이고 숙제라고 생각해요. 제가 받을 상처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메시지를 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에는 영화 ‘레이’의 영향이 컸다. 학창시절 음악영화 ‘레이’를 보면서 성악가의 꿈을 강하게 키웠고 힘든 역경 속에서도 참고 버텨내는 힘이 됐다. 누군가에게 ‘파파로티’가 그런 영화로 남기를 원하는 마음이란다.
“희생이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제 이야기로 누구가에게 꿈을 주고 싶었어요. 방황하는 친구들은 나름의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들을 극복해야 하는데 진정 자신이 좋아하는 걸 찾고 거기에 몰입하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고 생각해요. 저도 해냈는데 당신들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해 주고 싶어요. 한 번뿐인 인생이니 이 꽉 깨물고 한번 해보자고요.”
그의 성공 뒤에는 그를 믿고 기다려 준 서수용 선생님의 노력이 크다. 스스로도 선생님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이 존재할 수 없었다며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지는 않은지 묻자 “그쪽과는 거리가 멀다”며 고개를 저었다.
“한 살씩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선생님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신지 깨닫고 있어요. 하지만 저에게 그런 사람이 되라고 하면 전 못할 것 같아요. 누군가를 가르쳐 주는 데 재능이 없어요. 그럴만한 충분한 지식도 없고 성격도 안 맞는 것 같아요(웃음).”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 / 사진=박효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