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결혼식날 서른다섯 생 마감한 최公의 슬픈 사연

[친절한 쿡기자]결혼식날 서른다섯 생 마감한 최公의 슬픈 사연

기사승인 2013-04-26 14:3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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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쿡기자] 오늘은 슬프고도 안타까운 소식을 전합니다. 결혼식날 생을 마감한 최公의 슬픈 사연입니다.

그의 결혼식날은 지난 21일, 하지만 법원의 선후배, 동료 공무원들은 난데없이 부고장을 받아들었습니다. 의정부지법 산하 등기업무를 담당하던 서른다섯 노총각 최公. 그는 결혼식을 치르고 휴가도 가야할 처지에서 미리 쌓인 업무를 처리하다 이틀 전 과로로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면사포를 쓰고 달콤한 신혼의 꿈을 날마다 꾸고 있었을 예비신부와 영원히 생이별하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이런 날벼락이 또 어디 있었겠습니까.

최公의 슬픈 소식은 수원지법 성남지원 민사4부 김동진(44·사법연수원 25기) 부장판사가 25일 오전 법원 내부통신망에 '마음이 아픕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면서 기자들에게 알려지게 됐습니다. 김 부장판사는 지난해 11월 자신이 항소심 재판을 맡았던 횡성한우 원산지에 관한 사건에서 대법원이 파기환송 판결을 하자 “혹시 판사들이 형식논리나 교조주의에 빠진 것은 아닐까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정면 반박해 이슈가 됐던 바로 그 분입니다.

김 부장판사가 작심하고 나선 것은 이틀 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이상원 법원본부 본부장이 사법부 직원들의 잇따른 자살과 사망사고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 글을 올린 것을 보고 "비정상적인 상황"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이 본부장은 내부 통신망에 올린 글을 통해 “지난 21일 결혼을 불과 이틀 여 앞두고 야근을 준비하던 36기 실무관이 법원에서 쓰러져 사경을 헤매다가 결국 자신의 결혼식 예정 시간에 영면하는 비극이 벌어졌다”며 “지난 3월 법원행정처를 상대로 이에 대한 대책마련을 위한 협의를 요구했지만 행정처는 이를 간단히 거부해 버렸다”고 비판했습니다.

26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에 따르면 올해 사망한 사법부 구성원이 벌써 8명째입니다. 이중 3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지난 2010년부터 현재까지 합하면 모두 43명이 사망했고 이들 중 15명이 자살했습니다. 부장판사 3명을 비롯해 법원 사무관과 서기가 각 8명, 주사 6명 등 직급이 다양하게 나타났습니다. 전국 법원에서 근무하는 판사와 법원공무원이 1만5500여명 중에 15명이면 10만명 기준으로 환산할 때 약 96.8명에 달합니다. OECD 국가 중 1위인 우리나라의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이 2011년 31.7명인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비정상적인 상황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법원노조측은 가장 큰 원인으로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를 꼽고 있습니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공판중심주의와 집중심리, 밤늦게까지 다반사로 진행되는 참여재판 등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 '국민을 섬기는 사법부'로 변신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들이 내부 구성원들에게는 살인적 업무과중이란 '흉기'로 되돌아왔다고 보는 것입니다. 김 부장판사도 "물론 한국사회의 전체적인 상황과 특징일 수도 있으므로 모든 것이 법원행정처의 책임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전임 대법원장님께서 의욕적으로 추진하신 몇가지 사법행정상의 조치와 연동돼서 벌어진 상황이라면 우리는 사법부의 현재 상황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김 부장판사의 글에 대해 법원 직원들의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OO씨는 "현재 우리 법원의 상황은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른 것같다"며 "글이든 아니면 다른 방식이든 (법원)행정처가 뭔가 해결책을 내놓을때까지 우리 모두 무언가 해야할 때가 된 것같다"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박OO씨도 "이런 마음을 지닌 분(김 부장판사 지칭한듯)이 행정처장이었다면 상황이 이토록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작금 직원들의 업무환경은 부장님이나 판사님들이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고 토로했습니다.

김 부장판사가 내부통신망에 글을 올린 날은 마침 50번째 법의날이었습니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과 양승태 대법원장은 대법원청사에서 법의날 행사를 치르고 있었습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법(法)은 꼭 필요하고 따뜻한 목욕탕이자 (한자 표기로는) 물수(水)에 갈거(去)를 합한 것, 즉 물처럼 국민의 삶과 사회에 구석구석 흐르면서 잘못된 관행을 씻어내고 건강한 변화를 선도해야 한다"고 천명했습니다. 양 대법원장은 "헌법이 지향하는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고 행복을 이룸으로써 자신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는 것"을 역설했습니다.

박 대통령의 어록, 따뜻한 목욕탕처럼, 그리고 구석구석 흘러나는 물처럼 작동해야할 <법의 다스림(法治)>이 정작 법원(法院)이란 공동체와 최公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던가 봅니다. 최公은 이승에서 누리지 못했지만 따뜻한 목욕탕이 있는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1만5500여 법원공무원들은 따뜻한 목욕탕을 찾아 신음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에 양승태 대법원장이 하루빨리 대답해야하는 이유가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삼가 최公의 명복을 빕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재호 기자 jhjung@kmib.co.kr

오늘의 [친절한 쿡기자]는 법원에 출입하는 정현수 후배기자님(jukebox@kmib.co.kr)이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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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수 기자
jhjung@kmib.co.kr
정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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