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올해 초 한 지방 사립대 로스쿨을 졸업한 A씨(30)는 제2회 변호사시험 합격자가 발표되던 지난달 26일 인턴으로 근무하던 로펌에서 조용히 짐을 싸 나왔다. 당연히 붙을 줄만 믿고 있었던 변호사시험(합격률 75.17%)에서 그만 낙방했기 때문. A씨는 “3년 동안 변시 하나만을 바라보고 공부했는데 설마 떨어질 줄은 몰랐다”며 “변시에서 한 번 떨어지면 로펌 등에선 채용을 제외하는 분위기라고 하는데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눈물을 훔쳤다.
지난 2월 한 중대형 로펌에 취직해 3개월째 근무하고 있는 B씨(31)가 주로 하는 일은 소송업무가 아닌 번역이다. SKY대와 서울 중상위권 로스쿨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학부 때 전공이 영문학이란 이유에서였다. B씨는 “변호사로서 일을 배우려고 왔는데 맡겨지는 일들을 보면 영문 계약서 번역이 대부분”이라며 “나보다 늦게 입사한 사시 출신들이 곧바로 실무에 투입되는 경우를 보면, ‘로변’(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사시 출신들의 ‘보완재’로 쓰이는 것만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로스쿨(Law School·법학전문대학원)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 2009년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가진 법조인 양성을 목표로 전국 25개 대학에 로스쿨이 도입된 지 5년째가 됐지만, 수박겉핥기식 교육과 그로 인한 로변들의 실무능력 부족, 법조계 기피현상 등으로 로스쿨의 위기감은 오히려 고조되고 있다. ‘돈스쿨’, ‘변호조무사’, ‘돈으로 산 변호사자격증’, ‘현대판 음서제’ 등 로스쿨이나 로변들을 비꼬는 단어들만 봐도 이제 막 2기 졸업생을 배출한 로스쿨의 현주소를 짐작할 수 있다.
“민·형사 판결서, 공소장, 불기소장 작성 등 어떤 걸 시켜 봐도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업무능력은 사시 출신들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집니다.”
서울 서초동에서 법무법인을 운영하고 있는 한 전관출신 C변호사는 “로스쿨을 갓 졸업한 수습 변호사의 경우 월 100만원 정도가 업계에서 통용되는 가격”이라며 “최근 ‘법조 모욕’ 논란이 일기도 했던 7급 변호사 역시 로스쿨 제도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 결과”라고 꼬집었다.
법조계에서는 월급 100만원짜리 변호사, 7급 공무원 변호사 시대를 연 이면에는 매년 2000명씩을 뽑는 로스쿨, 그리고 75%를 넘는 변시 합격률 등이 자리하고 있다는 데 입을 모은다. 한 해 1500명의 변호사들이 쏟아져나오다보니 로스쿨 출신들이 사시 출신 수준의 대우를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최근 개인 법률사무소를 차린 D변호사는 “일선 법무법인 등에서는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에게 일을 맡기기가 두렵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며 “변시 합격률 조정이나 엄격한 커리큘럼 관리 등 로스쿨들의 뼈를 깎는 노력이 동반되지 않는 이상 이러한 기피현상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에 대한 법조계의 기피현상은 이른바 ‘강제동원령’(강원대·제주대·동아대·원광대·영남대)이나 ‘충전아인’(충북대·전북대·아주대·인하대) 등 지방 소규모 로스쿨들로 내려갈수록 더욱 심해진다. 제주대 로스쿨에 재학 중인 E씨(26·여)는 “강제동원령 출신들이 로클럭(재판연구원)이나 검찰 진출은커녕 변시 합격률과 취업률에서도 현저히 떨어지는 결과를 보면 암담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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