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에 관한 패러디물이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뒤덮고 있다. 평범한 국민들이 온라인상에서 사회 고위층을 풍자하는 ‘패러디 열풍’은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등장하는 공식이 됐다. 이번에도 기발한 아이디어와 촌철살인이 엿보인다.
12일 인터넷과 SNS에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패러디한 ‘Grab과 함께 사라지다’가 등장했다. 윤 전 대변인이 주미 대사관 인턴의 ‘엉덩이를 허락 없이 움켜쥐었다(grabbed)’는 현지 경찰의 보고서를 토대로 풍자한 것이다. 포스터에는 윤 전 대변인 사진과 함께 ‘부끄럽습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영화 ‘아이언맨3’를 패러디한 ‘아이고손’도 네티즌 사이에서 인기다. 윤 전 대변인의 얼굴을 한 아이언맨이 손으로 한 여성의 엉덩이를 만지려는 듯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네티즌들은 이를 퍼 나르며 “흥행돌풍 아이언맨을 3일 만에 잠재운 수작”이라고 소개했다.
윤 전 대변인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떠들썩했던 포스코 ‘라면상무’ 사건, 남양유업 사건과 연결한 패러디물도 나왔다. 남양유업 임직원들이 고개 숙여 사과하는 장면에 ‘윤창중 대변인 감사합니다’라는 문구를 합성한 사진, 남양유업 관련 뉴스 화면에 ‘창중이 너 평생 우유 공짜’란 자막을 입힌 사진이 잇따라 등장했다.
대형 이슈가 생길 때마다 네티즌들의 이런 ‘창작물’은 온라인에 넘쳐 난다. 지난해 11월 대선 당시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과정에선 안 후보의 고집스러움을 풍자한 패러디가 인기였다. 한 네티즌은 온라인 커뮤니티 ‘MLB파크’에 문·안 후보의 단일화 난항을 그린 ‘첫날밤 풍자’ 그림을 올렸다. 첫날밤을 치른 남자(문재인)가 알 듯 모를 듯한 웃음과 함께 “걱정 마. 오빠가 책임질게”라고 말하면 여자(안철수)는 “하자고 해서 했는데…. 잘한 걸까”라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었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의 ‘게임시간 선택제(선택적 셧다운제)’ 홍보 웹툰을 풍자한 ‘민국 엄마’도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를 달궜다. 이 제도에 반대하는 네티즌들이 민국 엄마를 성인물 캐릭터로 바꿔 그려 인터넷에 쏟아냈다.
전문가들은 ‘풍자의 시대’가 열린 데에는 SNS의 영향이 결정적이라고 분석했다.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권상희 교수는 “개인 매체의 발달은 필연적으로 개인 풍자의 발달로 이어진다”고 했다. 고려대 사회학과 현택수 교수는 “스마트폰, 스마트패드가 대중화되면서 쉽게 그리고 쉽게 편집하고 쉽게 올릴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고 말했다.
패러디물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엇나가는 기득권을 재미있게 비판하는 기능을 한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풍자의 범람이 사회의 품위를 떨어뜨린다는 주장도 나왔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풍자는 잘못된 현실에 대한 유쾌한 저항”이라며 “재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대가 정치 문화를 경직되지 않은 방법으로 풀어내는 21세기적 현상”이라고 평했다. 권 교수는 “우리 사회는 웬만한 자극엔 이빨이 시리지 않을 정도로 무감각해져 가고 있다”며 “대중의 호응을 얻기 위해 자극적 표현에만 치중한 풍자는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