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쿠키뉴스 위키리크스 #2] “그녀는 박(정희) 대통령 통치 시절(1961-1979) 두 자릿수 경제 성장에 향수를 간직한 사람들에겐 표를 얻고, 아버지 시절 권위주의 통치의 부당함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표를 잃을 것이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2007년 2월 미국 국무부에 보고한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인물평이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17대 대통령 선거가 있기 10개월 전 본국에 직접 작성해 보고한 외교 전문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가 28일 인터넷 외교 기밀 공개 사이트 위키리크스에서 찾아낸 전문은 박 대통령의 생애를 연도별로 나눠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미대사관은 박 대통령뿐만 아니라 손학규 원희룡 등 당시 잠룡으로 거론되던 인물의 대권 가능성도 2006년 3급 기밀문서를 통해 미 중앙정보국(CIA) 등에 보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주미대사관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경선 주자의 출생부터 언급했다. ‘SBU(민감하지만 기밀로 분류되지 않은 정보)’로 지정된 각 단락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1952년 2월 태어나 9살 때부터 청와대에서 자랐다”고 서술한다. 이어 “그의 모친(육영수 여사)은 다른 아이들처럼 공립학교에 보내고 전차로 통학시키는 등 평범한 삶을 살도록 노력했다”고 적었다. 박 대통령이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로는 “저명한 미국인이 청와대에 들러 ‘공학이 한국의 미래를 여는 핵심이 될 것’이란 말을 들은 후”라고 했으며,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후 그녀는 (한국에서) 해당 분야 학위를 가진 한 줌밖에 안 되는 여성 중 한 명이 됐다”고 표현했다.
버시바우 대사는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한 당시 “휴전선은 괜찮은가요?”라고 물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첫 반응도 소개했다. 또 “일부는 박정희가 그의 큰 딸(박근혜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 준비를 했었다고 믿고 있다”면서도 “그렇지만 이런 주장을 입증할 증거는 없다”고 언급했다. 전문은 “전두환 통치가 확립되면서 박근혜의 개인 생활은 한국 정보기관(KCIA)의 미행으로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측근들은 험난한 교도소에 끌려가거나 심지어 고문을 받기도 했다”고 서술했다.
대사관은 1979년부터 1996년까지 박근혜 대통령이 잠행하던 시절을 “청와대를 위한 준비? 17년간의 고독”이라고 표현했다. 전문은 “가족의 수장으로서 그는 심각한 문제들을 수차례 겪었다”며 “남동생은 심각한 마약 중독으로 여러 번 체포됐으며, 여동생은 이때 험난한 이혼을 경험했다”고 적었다. 대사관은 이때 박 대통령이 “대구의 영남대 이사장 직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대부분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고 했다.
대사관은 박 대통령의 역사관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전문은 1975년 8명의 학생들이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대법원 판결 확정 불과 19시간 만에 사형당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소개하며 박 대통령의 이에 대한 반응을 담았다. 전문은 “그녀는 현시점에 이 문제가 다뤄지는 것은 정치적 이유 때문이며, 스스로 청와대에 있던 시절 자행된 부당한 행위에 대한 사과는 이미 했다고 답했다”고 적었다.
버시바우 대사는 끝으로 박 대통령에 대한 코멘트에서 “박근혜는 만나는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있으며, 그녀의 국가에 대한 온전한 헌신은 질문의 여지가 없다”고 평가했다. 당시 이명박 후보에게 여론조사에서 밀리던 상황을 언급하며 버시바우는 “이번에는 질 수도 있지만, 박은 다가올 수년간 한국 정치에서 핵심 인물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마무리했다.
한편 주한 미대사관은 박 대통령뿐만 아니라 17대 대선에 나올 만한 여야 인사를 모두 스크리닝 했다. 대선이 있기 1년 5개월 전인 2006년 7월 대사관이 미 중앙정보국(CIA) 등에 보낸 3급 기밀 문서에서다. 원래 2016년까지 비밀로 묶인 전문인데, 이 역시 위키리크스의 노력으로 공개됐다.
전문은 3급 기밀로 지정된 요약 단락에서 “수구세력(old guard)이 전면에 나서, 박근혜와 같은 보수 리더로 내년 노 대통령을 교체할까? 아니면 김대중이 한 번 더 뒤에서 왕을 만드는 기적을 보여줄까?”라고 적었다. 한국 정치의 큰 판을 ‘수구세력 vs 김대중’이란 구도로 파악한 것이다.
이 기밀 문건 역시 바시바우 전 주한 미국대사가 저술했다. 그는 박근혜 이명박 등 한나라당내 주자 이외에 당시 경기지사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친 손학규 전 지사와 원희룡 의원에도 주목했다. 손 전 지사에 대해선 “경기지사 재임 4년간 136억 달러의 외국인 직접 투자를 끌어왔고, 56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면서 “2004년 안산에 영어 마을을 세워 한국인이 미국식 언어와 문화를 경험하도록 했다”고 평가했다.
원희룡 전 의원에 대해선 ‘온건한 보수주의자’라면서도 “수년간 때때로 박근혜와 정치적 반목을 벌여왔다”고 적었다. 버시바우는 특히 원 전 의원의 박근혜 당내 리더십 비판 부분에 주목했다. 그는 “원은 한 인터뷰에서 국가 정체성과 관련해 누군가 그녀(박근혜)의 편협한 이데올로기에 맞지 않는다면, 그녀는 그 누군가를 공산주의자(communist)로 간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버시바우는 이밖에 정동영 김근태 고건 정운찬 강금실 등 야권 인사도 잠재적 대권 도전 인물로 간략하게 언급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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