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셋이서 “자살하자”…1명 말리자 2명이 동반 투신(종합)

여고생 셋이서 “자살하자”…1명 말리자 2명이 동반 투신(종합)

기사승인 2013-06-04 15:30:01
[쿠키 사회] 광주광역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여고생 2명이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 중이다.

4일 광주북부경찰서에 따르면 3일 밤 11시40분쯤 일곡동 L아파트 107동 화단에서 김모(16·고1)양과 최모(16·고1)양이 머리 등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것을 민모(15·고1)양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광주K공고 친구사이인 이들 3명은 이날 오후 9시50분쯤 음료수와 과자 등을 사들고 아파트 19층 옥상에 함께 올라갔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남학생 2명도 함께였다.

담배를 피우던 남학생들이 30분쯤 지난 뒤 집으로 돌아가고 여학생 3명만 남게 되자 이들의 대화는 삶에 대한 회의 등 비관적 주제로 바뀌었다. 부모의 이혼 등 가정적 결함을 고민하던 이들은 금새 ‘동반자살’하자는데 의기투합했다.

하지만 잠시 후 민양은 ‘죽음에 대한 공포’로 결심이 흔들렸고 친구 2명에게 “뛰어내리지 말고 그냥 내려가자”고 설득했으나 김양 등은 완강히 벼텼다.

1시간여 동안 친구들과 말다툼을 하던 민양은 경비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해야겠다며 고심 끝에 현장을 빠져나왔고 그 사이 고집을 꺾지 않은 김양 등은 옥상으로 통하는 출입문을 걸어 잠갔다.

다급해진 민양이 한참동안 아파트 경비아저씨를 찾아 헤매다가 다시 옥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1층 현관의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순간 친구 김양과 최양 등 2명은 이미 싸늘한 주검으로 아파트 화단에 피를 흘린 채 나란히 누워 있었다.

숨진 김양과 최양의 두 손목에는 동반자살을 위해 묶은 것으로 추정되는 청색테이프가 한데 엉켜 있었다. 민양은 “두 친구가 같이 뛰어내리겠다고 하는 것을 말리다가 옥상에서 내려왔는데 서로 손을 묶고 정말 투신할 줄은 몰랐다”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숨진 김양 등이 2개월 이전부터 자살을 암시하는 말을 자주 했다는 점을 중시, 동반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현장에 있었던 민양과 숨진 학생들의 가족, 학교 관계자 등을 상대로 구체적 자살동기를 조사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학교폭력 관련성은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숨진 김양 등은 광주K공고 1학년 동기로 학과는 다르지만 부모가 이혼했다는 공통점 등으로 학기 초부터 단짝으로 친하게 지내왔다고 밝혔다.

경찰이 김양 등이 투신한 아파트 CCTV를 자세히 살펴본 결과 김양 등은 이날 밤 친구들과 어울려 19층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간 것으로 확인됐으나 폭력장면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들 학생들이 평소에도 학교에서 2~3㎞ 떨어진 아파트 옥상을 방과 후 아지트 삼아 수시로 찾았다고 설명했다. 김양 등은 이날도 친구들과 함께 아파트 옥상에 올라갔다가 충동적으로 투신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경찰은 그러나 정확한 자살동기를 파악하기 위해 형사계 강력팀을 동원해 학교폭력 여부 등에 대한 정밀 수사를 벌이고 있다. 학교 측은 김양 등이 결손가정 자녀이고 그동안 결석도 가끔 하곤 해서 몇 차례 상담을 한 적은 있지만 소위 문제학생들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학교 측에 따르면 초등학교 입학 이전에 부모가 이혼한 김양의 경우 어머니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양은 아버지가 재혼을 위해 자신의 양육을 할머니에게 맡긴 뒤 그동안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에서 생활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최양은 지난 3월 경남 모 자연과학고에서 전학오면서 이혼한 부모와 떨어져 외롭게 살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에 이모 등이 살고 있으며 전학 이후 학교와 가까운 작은 아버지 집에서 학교를 다녔다.

학교 측은 특성화고인 탓에 전교생의 등록금이 전액 면제되기 때문에 학생들이 학비문제로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양 등의 투신 이후 광주시교육청은 장학사 등을 광주K공고에 보내 구체적 동반자살 경위를 알아보고 있다. 현장에 다녀온 장학사는 “담임교사들이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던 학생들로 입학 이후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많은 관심을 쏟았는데 이런 일이 벌어져 교사들도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한 것은 불행한 일”이라며 “서로 한쪽 손목을 묶어가면서까지 극단적 선택을 한 직접적 배경을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국민일보 쿠키뉴스 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장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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