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좌담
산업의 지형도가 콘텐츠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저작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가수 싸이가 시건방춤의 저작권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 사례를 거론하며 지식재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저작권이 뒷받침되는 스마트 환경과 비즈니스 모델의 결합은 숙제다. 장차 한국경제의 새로운 견인차가 될 지식산업의 미래전략을 모색하고, 문화발전의 길을 찾는 자리를 마련했다. 좌담회는 19일 오전 서울 동자동 저작권교육연수원 회의실에서 열렸다.
사회=손수호 인덕대 교수 겸 국민일보 객원논설위원
-새 정부 들어 창조경제를 둘러싼 논의가 무성하다. 주목할 것은 저작권을 기반으로 하는 지식산업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하는 창조경제의 접목이 아닌가 한다.
△유병한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장(이하 유병한)=창조경제는 문화와 다른 분야를 융합해 기존 가치를 증대시키고 국가경제에 기여토록 하자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1990년대 후반부터 문화산업이 IT와 융합하는 등 새로운 비즈니스 환경을 만들고 있다. 저작권산업은 창조경제를 이끄는 중요한 축임에 틀림없다.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하 남형두)=흔히 ‘창조경제’에서 ‘창조’가 목적인 듯 얘기하는데 본뜻은 ‘창조를 통한 경제 살리기’다. 창조경제의 기반은 지적재산권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 공약집에 언급된 창조경제론 7대 실천과제 중 3개가 지적재산권과 관련 있는 내용이었다.
△이대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하 이대희)=기반이 구축되고 콘텐츠가 보호되면서 K팝은 물론 영화나 공연 분야의 경쟁력까지 높아졌다. 창조경제의 여건이 조성된 셈이다. 성공적인 창조경제는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 미국은 저작권 산업이 전체 경제 성장률에 기여하는 비율이 6%에 달하고, 일자리에 차지하는 비율은 12%에 이른다.
-저작권 환경이 중요하다는 데는 모두들 동의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정부와 국민의 인식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지 않은가.
△유병한=저작권산업의 GDP 기여도가 세계 평균 5.4%를 넘어 10%에 육박한다. 디지털 저작권 생태계의 구축을 위해서는 비즈니스 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것이 국민의식이다. 2012년 스마트기기를 이용한 불법시장 가운데 애플리케이션의 경우 전체 4032억원의 43%인 1774억원에 이른다. 이용자의 23.1%가 불법 앱을 이용하고 있으며, 불법콘텐츠 이용률도 20.3%에 달할 정도로 심각하다.
△남형두=경제 살리기에는 창의만이 아니라 모방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창조경제를 창작자에 대한 보호 일변도로 이해하는 것은 자제돼야 한다. 삼성이 애플을 베꼈다고 소송을 당하고 있는데, 삼성은 과도한 보호라고 주장한다. 창조경제를 지적재산권 수준에서 바라볼 때 보호와 공유라는 가치의 균형을 놓쳐서는 안 된다.
-스마트 환경을 뒷받침하는 인터넷 공간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사이버 스페이스의 특수성을 감안해도 법의 규범력이 미치지 않는 무풍지대가 확산되는 상황이 심각하지 않은가.
△이대희=이용자들이 저작물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플랫폼이 없으니 침해를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 저작물이 제대로 공급되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드라마 ‘아이리스’는 웹하드에서 한 편에 1000원씩 팔아 돈을 벌었다. 모바일이든 태블릿이든 합당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시장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유병한=지금은 저작권 체계가 산업화되고 있는 과정이다. 따라서 비즈니스 모델과 결합하면서 유통의 혁신을 이루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국민이 원하는 형태의 이용활성화 부분을 고려해 효과적인 법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그게 진정한 상생이다.
△남형두=현재 저작권 산업 구조는 다분히 사후적이다. 거미줄을 쳐놓고 먹이가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식이다. 사전에 저작권 계약을 체결하는 것보다 몇 배 이익이 남기 때문이다. 단속에 걸리면 ‘재수 없어서 걸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용자가 창작자를 존중해 더 좋은 창작물을 만들 수 있도록 배려하고, 창작자들 역시 작은 것에 대해서는 이용자를 인정해 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새롭게 도입한 ‘공정 이용(fair use)’ 제도가 재판에 반영될 경우 저작권 분쟁이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유병한=저작권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갈등과 분쟁 또한 늘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너무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국민감정에 부합하는 저작권법 체계를 해석하고 정립해 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성장통’의 성격이 강하다.
-전문가 집단도 마찬가지다. 대표적 사례가 ‘수업목적보상금’을 둘러싼 대학과 권리자 단체의 갈등이다.
△이대희=기본적으로 수업목적보상금은 대학에 혜택을 주는 제도다. 정부와 권리자들이 지금까지 참아온 것도 대학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학교 측에서는 추가비용이 발생하니 싫어할 수 있지만 교수들은 굉장히 반긴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보상금 분배의 문제는 다음 단계의 일이다. 미분배보상금은 공익사업으로 사회에 환원되기도 한다. 나도 대학에 몸담고 있지만 먼저 대학이 제도의 취지를 이해하는 노력이 부족하다.
-우리 사회는 표절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연구집단의 대표격인 대학에서 표절문제가 깔끔하게 해소돼야 다른 분야도 기준으로 삼을 것 같다.
△남형두=자주 언급되는 유사도 검색 소프트웨어의 효용성은 있지만 그것에만 의존하면 위험하다. 검색 결과를 가지고 검증하는 것은 전문가들의 영역이다. 표절의혹만으로도 당사자들은 치명상을 입는다. 절차에 신중을 기하되 표절로 확인된 사람에 대해서는 반드시 제재를 가해야 한다.
△이대희=표절논란 이후에 우려할 현상이 새로 생겼다. 인용을 하면 표절이 아니라고 오해하는 것이다. 표절에 대한 인식은 나아졌으나 어떤 것이 표절이냐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미흡하다. 다만 정부 보고서로 작성한 것을 논문으로 옮기거나 신문 칼럼으로 쓰는 것까지 자기표절이라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
△남형두=교육부가 한때 만들었던 훈령에는 5년이라는 검증시효가 있다. 책이나 논문이 시중에서 유통되고 읽힐 수 있는 상태라면 여전히 피해가 발생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최근 서울대 교수의 예일대 교수 논문 표절 사건을 시효가 지났다고 검증하지 않았다면 국제 망신을 사지 않았겠나. 교육부가 잘못을 인정하고 폐지했지만 여전히 검증시효를 두고 있는 대학이 있다. 대학이 스스로 고치지 않는다면 원인제공을 한 교육부가 바로잡아야 한다.
-여러 문제점을 보면 저작권에 대한 교육과 홍보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다.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은 물론 입법부와 사법부도 동참해야 하지 않겠나.
△유병한=지금까지 저작권 정책은 사후규제 쪽으로 흐르다보니 불신이나 불편함을 유발했다. 우리 위원회는 저작권의 중요성을 체감토록 하는 ‘36.5도 캠페인’을 하고 있다. 올가을부터는 한국복제전송저작권협회와 공동으로 전국 12개 대학이 저작권을 교양과목으로 가르치도록 지원한다. 저작권에 민감한 청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대희=정부가 아직도 굴뚝산업만이 경제성장에 기여한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다. 스타트업 컴퍼니의 일자리 창출효과는 기존 기업보다 훨씬 크다. 국회에 주문할 것은 국회의원이 이익단체에 휘둘려 국제조약에도 어긋나는 법안을 발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남형두=사법부의 비전문성을 지적하고 싶다. 저작권 사건의 전문성을 인정해 전문가 감정을 활용할 것을 권한다. 큰 사법체계의 틀에서 보자면 전문성과 신속성을 갖추고 비밀까지 보장되는 대안적 분쟁해결수단(ADR)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도 건강한 저작권 환경이 필요하다.
△유병한=애플이나 페이스북의 성공은 소비자 욕구를 창의적인 서비스로 대응한 결과다. 애플은 창립 이후 60만명의 일자리를 창출했고, 페이스북은 정규직 개발자 18만명을 만들었다. 카카오톡 사용자가 1억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 지금은 ‘저작권 골든타임’이다. 법제나 국민인식을 스마트 환경에 적응시켜야 일자리 창출, 문화융성에 기여할 수 있다.
△이대희=지적재산권에 대한 교육콘텐츠를 바꿔야 한다. ‘지킬 것’을 강조하기보다 창작환경을 마련하도록 돕는 것이 우선이다. ‘묻지마 고소’의 남발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요구한다. 기업형·조직형 범죄는 국가가 개입하되 생계형 침해는 민사 조정하는 쪽으로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형두=영화 ‘서편제’를 보면 주인공이 장터에서 판소리를 하며 사람을 모은 뒤 약을 판다. 이 영화의 배경은 반세기 전이다. 약을 팔기 위해 문화를 덤으로 주는 모델이었다.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약을 사은품으로 줘도 되는 시기다. 산업의 중심은 지식산업으로 넘어왔다. IP(지적재산권)와 IT가 동시에 발전한 나라는 우리가 거의 유일하다. 창조경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위한 필수과제다.
정리=이용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