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연예] ‘꽈’(過) ‘꽈’. 조연출을 맡은 지아퐝(賈方)은 배우 박해진의 신에서 ‘꽈’ 외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한자로 지나갈 과, 촬영 컷이 NG없이 OK란 뜻이다.
지난 25일 오후(현지 시각) 중국 베이징 대금사 골목에 자리 잡은 한 고택에서 중국 드라마 ‘멀리 떨어진 사랑’(원제 遠得要命的愛情)의 촬영이 계속되고 있었다. ‘멀리 떨어진 사랑’은 배우 박해진과 중국 신인 여배우 이비아를 투톱으로 내세운 달달한 로맨스 드라마다. 주요 얼개는 식품회사 오너인 심안(박해진)이 미혼모 맹초하(이비아)를 만나면서 배신으로 얼룩졌던 지난 사랑의 아픔을 이겨낸다는 내용이다. 이르면 올해 가을 중국 후난TV를 통해 1차 방송, 지역 위성을 통해 2차 방송된다.
이날 촬영신은 심안의 회사에서 만든 음식물에 독극물이 들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의 집에 두 주인공이 찾아가 사과하는 장면이었다. 촬영장소는 별도의 세트장이 아닌 600여 년 된 사방형 중국 전통식 가옥으로 실제로는 민박집으로 사용하는 장소였다. 세트장이 갖는 작위적인 느낌이 없어 감독의 모니터에 그림이 사실감 있게 들어왔다.
촬영은 박해진이 한국말로 대사를 치면 중국 배우가 중국어로 받는 방법으로 진행됐다. 방송에서 박해진의 대사는 중국어로 더빙될 예정이다. 박해진은 중국어 대본을 받으면 관계자 도움을 받아 한국어로 번역한 뒤 한국말로 외운다. 중국 배우의 대사까지 알고 있어야 호흡을 이어갈 수 있다.
박해진은 “중국어에 익숙하지 않아 현장에서 어려운 게 있다. 처음에는 어려웠는데 4번째 중국 드라마인 만큼 익숙해지고 있다”면서 “상대방의 말이 잘 안 들리기 때문에 표정이나 성조 같은 섬세함에 집중해서 촬영한다”고 설명했다.
박해진의 이런 ‘눈치’는 이미 현장 제작진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조연출은 “박해진은 촬영이 시작되면 많이 민감해져 잘 건드리지 않는다. 기분이 좋아 보이면 다가가고 안 좋아 보이면 옆에 안 간다(웃음)”면서 “그러나 카메라가 안 돌고 있을 때는 스태프와 가벼운 농담을 즐기고 마사지도 직접 해주는 등 현장에서 잘 어울린다. ‘남자아이’ 같은 매력이 있다”고 칭찬을 늘어놨다.
이어 “다른 한국 배우들은 한국 드라마를 통해 중국에서 인기가 있는 것이라면 박해진은 중국에서 중국 드라마로 유명한 것”이라며 “시간 약속 같은 원칙을 잘 지키고 캐릭터 연구에 대한 분석도 철저하다. 잘생긴 얼굴은 물론이고 섬세한 연기가 살아 있는 배우”라고 평가했다.
박해진의 중국 진출은 지난 2011년 후난TV로 방송된 ‘첸더더의 결혼이야기’였다. 첫 작품이 평균 시청률 5.7%라는 좋은 성과를 얻었고 연이어 ‘또 다른 찬란한 인생’도 찍었다. 이번 드라마의 연출을 맡은 주시무 감독은 “‘첸더더의 결혼이야기’를 본 후에 박해진을 캐스팅하려고 1년 넘는 시간을 기다렸다”고 전했다.
박해진은 중국에서 ‘한국 배우’라고 강조하지 않는다. 그저 섬세한 표정 연기와 현장에서의 눈치와 분위기 메이커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언어적 한계는 원칙과 예의로 상쇄시켰다. 혐한 분위기와 중국 정부의 중국 진출 한국 배우에 대한 압박, 중국에 진출했던 일부 한국 배우들의 부정적 평가 등에도 박해진이 살아남은 이유다.
박해진은 촬영 후 사석에서 “‘내 딸 서영이’를 끝내고 바로 이번 작품에 들어갔다. 몇 년간 쉬지 못해 지치기도 하지만, 할 수 있을 때 한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면서 “다음 작품은 조금 더 밝은 캐릭터를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전했다. 또 “중국은 100% 사전제작 드라마인 만큼 밤을 새우지 않고, 시스템적으로 한국보다 배려를 더 받는다”면서 “그러나 기술력은 한국이 더 좋아 서로 다른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이젠 중국 음식에 익숙해져 번데기 꼬치는 물론이고 전갈 꼬치도 먹는다는 박해진. 그는 한국에서는 한국 배우로, 중국에서는 중국 배우로 두 개의 인생을 살고 있는 카멜레온이었다. 시스템과 사람, 관계 등 모두 다른 두 공간에서 배우 박해진의 성장이 어디까지 계속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사진제공=더블유엠컴퍼니
북경(중국)=국민일보 쿠키뉴스 오대성 인턴기자 worldswithin@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