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경제] 유럽 국가들이 유로존 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독일 경제가 유독 견고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사회적 혁신’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시장경제에 공정한 경쟁과 사회적 합의를 중요시하는 특성을 결합한 개념이다.
LG경제연구원은 9일 ‘표준에서 협력하고 적용에서 경쟁하는 독일의 사회적 혁신’ 보고서에서 “독일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는 자동차, 주방 가전 등의 산업분야를 보면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특징이 나타난다”면서 이를 사회적 혁신으로 설명했다. 완제품 기업을 중심으로 시장 생태계가 형성돼 있고 부품업체들은 다소 낮은 위상을 보이는 대다수 국가에서와 달리 독일은 완제품 기업과 부품 업체간 관계가 대등해 다양한 형태의 협력과 공조가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자동차 산업의 ‘AUTOSAR’(AUTomotive Open System ARchitecture)가 대표적이다. 독일 자동차 업계는 2000년대 중반 위기를 겪었다. 판매 수량 기준으로 폴크스바겐, 다임러 벤츠 등이 5위 안에 들었을 뿐 전반적인 기업들의 생존 여부가 불투명했고 최고의 품질을 보증하는 차량 상위 10개 중 9개가 일본기업 차지였다. 당시 독일 자동차 결함은 갈수록 복잡해지는 전기전자장비(전장)의 문제에서 비롯됐다. 이에 BMW, 폴크스바겐 등 완성차 업체들과 보쉬, 지멘스 등 부품업계가 전기전자 부품의 공통 규격을 만들어 호환성과 안전을 보장하는 연합을 설립했다. 과거 완성차 업체와 부품업체간 일대일 협력을 통해 특정 모델 개발이 이뤄졌다면 이제는 동일한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기반에서 호환 가능한 제품을 개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보고서는 “부품 업체는 완성차 업체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서 벗어나 전체 시장을 염두에 둔 제품을 개발하고 완성차 업체는 여러 부품 회사 중 최적의 파트너와 협력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현상은 독일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는 주방가전 부문에서도 나타난다. 밀레, 지멘스 등 완제품 업체들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만들어준 일등 공신은 쇼트, EGO 등 소재·부품 부문의 ‘히든챔피언’들이다. 쇼트사가 유리세라믹을 최초로 쿡탑(레인지)용 상판에 도입하고 EGO사가 쿡탑 조작에 터치컨트롤 기술을 적용하면서 여기에 적합한 고급 주방가전과 조리기구들이 잇따라 개발되는 식이다.
디스카운트 슈퍼마켓 ‘알디’는 중소 제조업체와의 협력으로 기존 유통업체들을 넘어설 수 있었다. 알디는 소비자 권장가를 적용하지 않는 중소 제조업체를 찾아 알디에서만 판매하는 최저가 전략 상품을 개발했다. 그 결과 알디는 전세계 8000여개 점포를 가진 유통업체로 성장했고 제조업체들에게는 세계 시장으로 향하는 판로를 열어줬다.
독일 정부와 업계간 협조도 원활하다. 독일은 2030년 50%의 전기를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생산할 계획인데 관련 업계와 협력·공조를 구체화해나가고 있다.
이서원 연구위원은 “기업간, 산업내, 이종산업간 협력이 시너지 효과를 내 독일 기업의 혁신을 가능하게 했다”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