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조선족 남성이 서울에서 대낮에 흉기를 들고 택시강도 범행을 저지르다 택시기사에게 붙잡혔다. 그 기사는 18년째 택시를 몰며 뺑소니범, 특수절도범 등 현행범 13명을 잡아 30여 차례 표창을 받은 태권도 3단의 ‘범인 잡는 기사’였다.
폭우가 쏟아지던 5월 27일 오후 3시50분쯤 40대 남성이 서울 용문동에서 이필준(54)씨의 택시에 탔다. 남성은 약간 술에 취한 상태로 “가까운 노래방에 가자”고 했다. 이씨가 노래방을 찾아 원효로 근처에 택시를 세우자 뒷좌석에 있던 남성은 강도로 돌변했다. 비닐봉투에서 길이 30㎝ 흉기를 꺼내더니 계기판 앞에 놓아둔 2~3만원 상당의 현금을 내놓으라며 이씨를 위협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이씨는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뒷좌석으로 고개를 돌려 남성을 똑바로 쳐다보며 1분 정도 ‘눈싸움’을 벌이는 동안 몰래 운전석 문을 열고 재빨리 택시 밖으로 나갔다. 쫓아 나온 남성은 이씨에게 수차례 흉기를 휘둘렀다. 이씨가 공격을 피하자 범인은 택시 보닛에 올라가 앞유리를 흉기로 내리찍은 뒤 도망치기 시작했다.
범인은 신호대기 중이던 택시에 올라탔다. 이씨는 택시를 몰고 뒤쫓아 그 택시 기사에게 “강도가 타고 있다”고 소리쳤고, 이에 황급히 택시에서 내려 도망치던 범인을 추격전 끝에 붙잡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넘겼다. 경찰 조사 결과 중국 지린성 출신인 범인은 이날 새벽 절도 혐의로 영등포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용산경찰서는 이씨에게 표창을 수여했다. 그는 범인 검거 공로로 이미 국무총리·경찰청장·서울경찰청장 표창을 비롯해 33여 차례 표창과 감사장을 받은 경력이 있었다. 이씨는 매일 출근시간에 동작구에서 교통정리 봉사활동을 한다. 택시기사를 시작한 뒤 하루도 거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매번 일정 금액을 사납금으로 채워 넣어야 하는 택시기사지만 돈을 버는 것 이상의 보람된 일을 하며 살고 싶다”면서 “나로 인해 많은 사람이 편안해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용상 문동성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