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하사탕’(2000)에서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광기 어린 연기를, ‘공공의적’ 시리즈에서는 영화사상 가장 매력적인 형사를, ‘역도산’(2004)에서는 몸집을 불려 실제 역도산과 흡사한 모습을, ‘해운대’(2009)에서는 평범하고 소탈한 시민의 모습을 보여주는 등 배우 설경구의 변신은 무궁무진하다.
지난 4일 개봉한 영화 ‘감시자들’에서는 감시전문가 황 반장으로 분해 색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영화는 정체를 감춘 채 범죄 조직을 쫓는 감시 전문가들의 추적을 그린다. 영화에서 설경구는 평소 털털하고 인간미 넘치는 성격이지만 현장에서는 강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인물이다. 기존의 강렬하고 인간적인 매력에 이성적이고 날카로운 카리스마가 더해져 영화 ‘강철중’ 속 형사 캐릭터와는 또 다른 모습을 선보인다.
영화 홍보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설경구를 최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에 대한 만족감은 대단했다. 설경구 스스로 “재밌게 본 영화”라고 말한 첫 작품이다.
“언론시사회 끝나고 간담회를 하는데 저도 모르게 ‘개인적으로 전 재밌게 봤습니다’라는 말이 나왔어요. 이렇게 말한 영화는 정말 처음인데, 그만큼 영화가 스타일리시하게 나왔고 괜찮은 것 같아요.”
그러면서 두 배우 정우성, 한효주의 스타일리시함에 자신이 된장을 바른 것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우성이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이라는 스타일리시한 영화가 있는데 제 작품 중에는 없어요. 그런 멋을 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 것들이 있긴 했지만 좋은 평가를 못 받았죠. 그런데 이제는 저도 그런 영화를 하나 가진 것 같아요. 우성이와 효주가 낸 멋에 제가 된장을 바른 것이지만…(웃음) 정말 감사하죠.”
이번 작품의 캐스팅은 배우 정우성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먼저 캐스팅된 정우성이 설경구에게 직접 전화했고, 설경구는 시나리오를 받기도 전에 출연을 결정했다.
“배우로서 책임감이 없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작품 고를 때 사람을 보고 선택하는 편이에요. 실제 이 영화는 신인감독 둘(조의석, 김병서)이 만들기 때문에 감독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었어요. 우성이가 출연한다고 해서 믿음을 갖고 캐스팅을 받아들였고 이후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정말 잘한 결정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믿음으로 뭉친 배우들이 함께하다 보니 현장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었다. 정우성과 함께하는 촬영 분은 적었지만 잦은 회식을 통해 친분을 돈독하게 했다.
“배우들끼리 모이기도 했고 전체회식도 했고 소모임도 했어요. 그만큼 자주 모여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와 살아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죠. 워낙 좋은 사람들이라 팀워크가 환상이었어요. 촬영이 끝나고는 서로에게 선물도 했어요. 우성이는 스태프 전체에게 핸드크림을 줬고, 저는 화장품과 티를 나눴죠.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 이런 것들이 바탕이 돼 좋은 영화가 나온 것 같아요.”
가장 인상깊은 장면을 묻자 영화에서 한효주가 말한 ‘지치면 지는 거고 미쳐야 이기는 거다’라는 대사를 떠올렸다. 이 장면은 한효주와 이준호가 경찰서에서 만난 실제 형사에게 들은 말로 영화에 그대로 사용했다.
“저를 미치게 하는 영화를 만나고 싶어요. 지금은 미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영화 시작할 초반에는 조금 미쳤던 것 같기도 한데 말이죠. 미친 작품을 만나면 저도 자연스레 미치게 돼요. 배우는 영화에 빠져들기 마련이니까요. 어떤 작품으로 만나게 될 지는 모르지만 미쳐서 이기는 배우가 되겠습니다(웃음).”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