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저격수’로 불리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삼성그룹 최고경영진에게 강연을 하면서 “삼성도 변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이재용 부회장에게는 “CEO의 리더십은 열린 공간으로 나와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형성된다”면서 세상 밖으로 나오라고 주문했다.
17일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서 열린 삼성사장단회의에서 김 교수는 ‘경제민주화와 삼성-사회 속의 삼성’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김 교수는 경제개혁연대 소장으로 있으면서 삼성을 직접 겨냥해 재벌개혁을 집중적으로 거론해왔던 터라 삼성이 그를 강사로 초빙한 것 자체가 화제가 됐다. 회의에는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등 삼성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30여명이 참석했다.
김 교수가 “저는 삼성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지만 그 방법이 다를 뿐”이라고 말문을 열자 사장들이 웃음과 박수로 화답했다. 이어 “삼성이 놀라운 경영성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 왜 명과 암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보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는 “삼성은 그 놀라운 경영성과 때문에 자부심이 자만심으로까지 연결돼 스스로를 한국사회 밖의 예외적 존재로 인식했다”며 “세계와 사회가 변했기 때문에 삼성도 한국 사회 안으로 들어와 구성원의 하나가 돼야한다”고 말했다.
삼성의 리더십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도 거듭 강조했다. 김 교수는 “재벌 총수는 주변 사람들에 의해서 필터링 된 정보만을 가지고 세상을 평가하기 때문에 세상의 한 면만 보고 있다”며 “진정한 리더십은 세상의 다른 면을 보는데서부터 길러야한다는 점에서 이 부회장에게 세상 밖으로 나오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상 밖으로 나오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냐는 기자들 질문에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찾아가서 말씀도 듣고 하라는 것“이라고 답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2007년 삼성 법무실에 근무했던 김용철 변호사와 함께 삼성 비자금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최지성 부회장은 강연 도중 “최근 국회를 통과한 경제민주화 법안이 김 교수의 기대에는 절반밖에 미치지 않다고 했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너무 세다. 기업 입장도 감안해 달라”고 의견을 냈다. 이에 김 교수는 “기업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답했다.
김 교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가 변했고 2012년 대통령 선거 이후 한국 사회가 변했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는 한계가 있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변화하지 않을 수 없는 모멘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재벌개혁이 경제민주화의 출발점이라면 하도급·중소기업·비정규직 노동자·영세자영업자로 상징되는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본령”이라고 덧붙였다.
이인용 삼성 커뮤니케이션팀장(사장)은 “김 교수를 모신 것 자체가 마음을 열고 생각을 달리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겠다는 취지”라며 “서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고 경영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