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스몰토크 lite] ‘불패신화 강남’이 딱 한번 곤욕을 치루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지금과 같은 장마철입니다. 비가 많이 올 경우 그 튼튼한 성채 강남이 침수가 되는 거지요.
강남의 상징이자 강남 문화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강남역이 침수됐다고 합니다. 강남역의 경우 2000년대 들어서만 6번째 침수입니다. 강남역은 ‘강남’의 매트릭스(matrix)이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선 ‘오늘도 강남역 워터파크가 성황리 개장했다’ ‘강남역 9번 출구에 분수가 생겼다’ ‘강남역 침수, 출근도 못하고 집에도 못가는 상황’ 등의 글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한데 강남 비 피해 뉴스는 그 어느 침수 피해 소식보다 인기가 높습니다. 조회수가 높다는 얘기지요. 그러다보니 인터넷뉴스 매체들이 과도하게 확대·보도하는 경향도 보이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건 바로 ‘성채’ 같은 강남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 배어 있다는 겁니다. ‘강남 키드’가 이제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리더로 성장해 여전히 강남을 벗어나지 않고 살아가지요. 제가 접한 많은 강남 출신 오피니언 리더들은 “강북은 불편하다”는 겁니다. “(강북은) 뭔가 다 갖춰졌는데도 세련되지 못한 그 무엇이 불편하게 만든다”는 거지요. 그래서 그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주거와 비즈니스 등을 강남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사실 강남은 지형 자체가 낮아 큰 비에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 아무리 치수를 튼튼하게 한다 하여도 워낙 낮은 지역이기 때문에 감당하기 힘든 거죠. 대모산과 우면산 아래쪽은 강남 개발 이전만 하더라도 지대가 낮아 무논(항상 물이 고여 있는 논)이었습니다. 그만큼 살기 좋은 데가 아니었다는 거죠.
한데 40여년 전 무논이나 뽕밭(잠실)에 지나지 않은 강남이 개발 광풍에 휩싸이지요. 경부고속도로 건설보다, 새만금 개발보다, 청계천 개발보다, 4대강 개발보다 훨씬 대역사였습니다. 한국 사회 ‘욕망의 아이콘’의 탄생이었죠.
당시는 강남이라는 말보다 영동(永東)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름 없는 한적한 무논 동네를 뭐라고 이름 붙여야겠는데 한강 이남 최대 도심인 영등포의 동쪽에 있다 하여 영동으로 통칭한거죠.
4대강 개발도 그러하지만, 강남 개발이라고 문제없이 했겠습니까? 투기 광풍이 일었고, 개발 이익을 통한 정치자금 문제가 생겼고, 원주민의 도시 빈민화 문제가 있었죠.
그럼에도 70년대 중동 건설붐과 함께 ‘테헤란로’ 명칭 등이 붙기 시작한 강남은 점차 한국 사회 ‘불패의 신화’가 된거죠.
‘강남’이 분명 한국 사회 한 지역에 불과한데 부와 권력의 대명사가 되었고, 그 대명사가 이제는 성채라는 인식으로 국민의 머릿속에 자리 잡는 건 결코 좋은 현상 같지가 않습니다. 다행히 강남은 지방자치단체의 꾸준한 치수 대책으로 큰 비에도 저만큼 버티고 있습니다. 성채의 한 곳이 무너지긴 한 거지만 큰 피해가 나진 않았다는 거죠.
강남은 장마마저도 ‘욕망의 아이콘’으로 드러나는 동네입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