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지난 5년간 전국 종합병원에서 버린 음식물쓰레기가 16만3173t이나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루 식사량 1.5∼2㎏의 성인 남성 6만여명이 5년간 먹을 수 있는 양이다.
환경부가 7일 새누리당 최봉홍 의원에게 제출한 ‘종합병원 음식물쓰레기 발생 현황’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전국 종합병원 298곳에서 연간 3만t이 넘는 음식물쓰레기가 배출됐다. 배출량은 2008년 3만77t에서 지난해 3만4371t으로 늘었다. 음식물쓰레기는 t당 운반수집비 5만원, 처리비 12만원이 든다. 지난해 종합병원 음식물쓰레기 처리에 약 58억4300만원이 든 것이다.
음식물쓰레기를 가장 많이 배출한 종합병원은 서울아산병원이었다.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순으로 배출량이 많았다. 이들 5개 병원에서 연평균 1378t의 음식물쓰레기가 나왔다. 성인 남성 2500여명의 1년치 식사량이다. 서울아산병원은 지난 5년 동안 연평균 2920t을 버렸는데, 이는 부산지역 26개 종합병원의 연평균 배출량(2902t)보다 많다.
지난해 서울에서 발생한 음식물쓰레기 총량을 주민등록 인구로 나눈 1인당 하루 평균 배출량은 0.32㎏이다. 같은 기준을 적용해 상주인원(입원환자+직원) 대비 음식물쓰레기 배출량을 조사한 결과 서울아산병원은 0.63㎏, 삼성서울병원은 0.57㎏이나 돼 서울 평균의 배에 육박했다.
전문가들은 병원의 음식물쓰레기가 유독 많은 이유를 환자식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양이 너무 많거나 입에 안 맞아 버려지는 환자식이 많다는 것이다. 최 의원은 “버려지는 환자식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인데도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며 “병원이 이익을 남기기 위해 입원 환자에게 관행적으로 식비를 부담시키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양은 많고 반찬 맛 없어”… 집밥 먹는 환자들
낮 12시30분이 되자 식판을 실은 수레가 병실마다 환자식을 날랐다. 점심메뉴는 쌀밥에 배추된장국과 숙주나물, 계란말이, 깍두기, 감자조림이다. 오늘도 3분의 1 공기만 비우고 수저를 내려놨다. 입에 맞지 않는데 양은 너무 많다. 여느 때처럼 5인 병실의 보호자들이 저마다 집에서 해온 반찬을 꺼냈다. 병원 밥을 뜨는 둥 마는 둥 하던 환자들은 ‘집 밥’으로 식사를 마쳤다.
올 초 유방암 수술을 위해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 입원했던 김모(53·여)씨는 병실의 식사시간 풍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김씨는 “환자식은 대부분 절반도 안 먹고 버려지곤 했다”며 “병원 밥이니 별 맛이 없는 건 그러려니 하는데 양도 너무 많아서 환자들이 먹기엔 버거웠다”고 했다.
지난 5월 삼성서울병원에 2주간 입원한 30대 여성 A씨도 식단이 깔끔해 만족스러웠으나 양이 많다고 느꼈다. 그는 “두 사람이 먹을 만큼 많아서 보호자가 따로 밥을 사먹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며 “식사량을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에 올 초 입원했던 20대 여성 B씨는 처음 이틀은 일반식을 먹고 수술 후부터 저염식을 받았다. 모두 생각보다는 맛있었지만 문제는 양이었다. 그는 “식성 좋은 내게도 양이 많아 간호하던 엄마와 나눠먹었다”고 했다.
식단의 질이 떨어져 환자식을 남기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 봄 수술을 마치고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 입원한 20대 남성 D씨는 “고봉밥을 주면서 먹을 만한 반찬은 달랑 전 두 개여서 황당했다”며 “맛도 없어 다 버리고 따로 사먹었다”고 말했다. 다른 대형병원에 2주간 입원했던 30대 여성 E씨는 한 달 입원한 같은 병실 사람들로부터 “여기서 지내려면 외부 음식을 가져다 먹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비정규직 조리사가 자주 바뀌어 맛이 들쭉날쭉했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환자식 음식물쓰레기 문제를 오래 전에 파악했지만 정부 차원의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2010년 7월 환경부는 병원 음식물쓰레기를 2012년까지 20% 이상 줄인다는 목표로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간호사·영양사가 순회 모니터링을 통해 남녀 환자별, 병동별 선호 음식과 식사량을 선택하는 ‘입원환자 식단 선택제’ 등을 도입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병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환경부 관계자는 “환자식을 관행적으로 입원환자 식비에 포함시켜 이익을 얻는 병원 입장에서 적극적인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아 결국 흐지부지됐다”며 “환자식 쓰레기가 문제인 것은 알지만 일괄적인 지침을 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는 각 병원이 자발적으로 음식물쓰레기 줄이기에 나서기만을 바라고 있다.
자체적으로 대책 마련에 나선 병원도 있다. 삼성서울병원은 그릇 크기를 줄였고, 서울대병원은 식사량을 3단계로 분류해 환자들에게 선택권을 줬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이나 서울성모병원은 메뉴를 미리 공지한 뒤 원하는 식단을 선택하도록 했다. 서울아산병원은 같은 열량과 영양소지만 처리 과정에서 남겨지는 부분이 적은 원재료를 택해 대체 메뉴를 개발 중이다.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박석순 교수는 “병원들은 맛없는 환자식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며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고영양 소량식을 개발하는 등 영양전문가들이 책임감을 갖고 맛과 영양을 모두 챙길 수 있도록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녹색소비자연대 박인례 대표는 “음식물쓰레기는 ‘예방’으로 관리해야 하고 환자식은 따져볼 요소가 많은 만큼 영양과 환경 측면을 세밀하게 고려해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