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문화] 이지선 씨가 9일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 다시 시청자들에게 희망과 감동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지선씨는 13년 전 불의의 교통사고로 전신 55%에 3도 중화상을 입었고 40번이 넘는 대수술과 재활치료를 받았다. 현재 미국 UCLA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사고 2년 후 2002년 12월 5~24일 국민일보에 게재했던 이지선 씨의 이야기를 다시 소개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재우 기자
*거울엔 낯선 내 얼굴이 비치고…
14시간의 긴 수술끝에 손가락을 절단하고 얼굴에 인조피부를 이식했지만 인조피부는 녹아버렸습니다. 그래서 진통제 주사 3대로 겨우 버텨가며 하루 네번 피부 없는 얼굴에 피부 대신 덮어놓은 거즈를 뜯어내고 새 것으로 바꾸는,지금도 상상조차 하기 싫은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진통제조차 마약 중독의 의혹(?)을 받아가며 눈치를 보고 또 보며 사용해야 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때 그 병원의 의사는 내게 피부의 여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나같은 화상환자를 본 적도 없고 어떻게 수술해야 할지도 몰랐던 듯합니다.
결국 2001년 2월 언제 끝날지 모르던,늘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뒷걸음질만 치던 것같은 광야생활을 끝내고 하나님의 은혜로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 병원을 옮겨 드디어 얼굴에 피부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7개월만에 눈을 감을 수 있게 되었다고,세수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드디어 집에 갈 수 있게 되었다고 감사하고 또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정대로였다면 몸의 피부이식을 끝내고 사고 후 2개월 정도였으면 얼굴피부 이식수술을 받고 새 얼굴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 문제로 저는 7개월만에 새 얼굴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어느 날 사고가 제게 일어났고 저는 얼굴 전체를 잃었습니다. 저는 방에 있는 거울을 치웠고 목을 들 수 없게 돼 거울조차 보기 힘들었지만 저를 보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밤에 유리창에서,밥을 먹다가 숟가락에서 저는 문득문득 저를 보곤 했었습니다. 오래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고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몇 달이 지나면서 멀리서나마 거울에 비친 저를 바라보게 됐습니다. 태어나 처음 보는 얼굴이었습니다. 그 어색함을 이기기 위해,마음과 생각을 지키기 위해 낯선 나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 이지선”
거울 속의 새 지선이도 인사를 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더 가까이 내게 익숙해지며 새로운 나와 친해져 갔습니다.
이제 다시 얼굴 수술을 하지 못해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돌던 광야생활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그때는 이유를 다 알 수 없었던,그러나 한 순간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은 적이 없었던 2001년의 겨울 그 광야…. 매일 만나를 주셨지만 정작 예비하신 그 땅에는 데려가 주시지 않았던 그때를 저는 광야라고 칭합니다.
저는 그 광야의 의미를 다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늘 기도했었습니다. 섭섭한 마음에 제게 광야의 의미를 설명해달라고,하나님이 나를 고치실 것을 단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았던 제게 그 광야를 주신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이었는지,하나님을 증거할 때 온전히 감사한 마음으로 증거할 수 있도록 내 모든 그리고 아주 작은 섭섭한 마음이라도 없앨 수 있게 제게 알려달라고,그 안에서도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으리라 믿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집으로 가는 길에 하나님이 그 기도에 응답해주셨습니다. “과연 사고 후 석달 만에 새 얼굴을 갖고 집으로 돌아왔다면…그렇게 옛날 네 얼굴에 대한 모든 기억이 생생할 그 때,언제나 거울을 보면 당연히 보이던 네 모습이 여전히 머리에 남았을 그 때…거울로 너무나 달라진 새 얼굴을 보게 된다면…지금처럼 이럴 수 있었겠니? 감사할 수 있었겠니?”
7개월의 광야생활동안 하나님은 이전의 나를 완전히 지울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머릿속에서 지울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지울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광야에서 훈련되지 못했다면 이 모습으로라도 살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기보다는 원망부터 하며 ‘하나님 왜요?’ 라는 질문만 퍼부었을 나약한 제 자신만이 남아있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모든 섭섭함을 떨쳐내 버렸습니다. 감사할 수밖에 없게 하시는,제게 늘 감사의 조건과 환경을 허락하시는,그 무엇보다도 누구보다도 내 영혼을 사랑해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런 모습이라도,지금 모습으로도,행복할 수밖에 없게 하시는 나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얀 눈보며 살아 있음을 감사”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돼버렸지만…가고 싶은 교회도, 성가대도, 학교도 맘대로 갈 수 없지만…그렇게 모든 걸 잃은 것 같지만…나약함 가운데, 상처투성이 몸 가운데 짧아진 손가락에도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고 소망을 주시며 날마다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들고 찬양하고 싶은 마음을 주십니다. 제가 기도했던 모습은 아니지만…하나님은 삶을 누리게 하시며 큰 일보다는 의미 있는 일을 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저는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며칠 전부터 산책을 시작했어요. 병원 로비에서 뛰기도 하고 엄마를 휠체어에 태워 밀기도 하고 거의 한달만에 밖에 나갔어요. 병원 나무에 걸린 크고 아름다운 트리 장식도 보았고 흰눈이 펑펑 내리는 것도 봤어요.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살아있어서 흰눈도 보게 하시고 추운 겨울을 다시 맞게 하시니”(2001년 1월11일).
얼굴에 피부 대신 거즈를 덮고 있던 시절,끝이 없을 것같은 병원생활을 하던 2001년 겨울 제가 처음으로 2개의 엄지 손가락으로 병실에서 쓴 글입니다. 그 해 생애 최고로 아름다운 눈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모두 잠든 밤,밖에 나가서 쐰 차가운 바람 속에서 저는 살아있음을 느끼며 무한한 감사를 드렸습니다.
또한 저희 가족에겐 광야와도 같았던 그곳 구로병원에서 만나게 해주셨던 병원 목사님과 사모님은 하나님이 저희 가족에게 보내주신 사랑이고 위로였음을 기억합니다. 이 지면을 빌려 두 분께 정말 가슴 깊이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늘 견딜 만한 힘을 주셨고 피할 길을 주셨습니다.
그해 2월 제게는 너무 귀한 의사 선생님인 오석준 원장님을 만나 다시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겼고 그곳에서 드디어 얼굴에 피부이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수술은 대성공이었습니다. 이식한 피부를 고정시키느라 수백개의 스테이플러가 박혔었지만 그걸 떼어내는 아픔 이후로는 더 이상 치료는 제게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치료 카트 바퀴가 구르는 소리만 들리면 나를 치료하러 오는 소리인 줄 알고 초긴장하며 떨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2001년 3월7일 저는 드디어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글은 퇴원하던 날,‘가출소녀 이지선,7개월만에 컴백홈∼!’이라는 제목으로 썼던 글입니다.
“지난 여름밤 돌아오려던 집에 계절이 3번째 바뀌고서야 이렇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현관에 들어서며 사진 한장 찍고 그리고 이제 환자복이 아닌 제 옷을 입고 침대가 아닌 의자에 앉아 글을 씁니다. 전도사님이 오셔서 예배도 드렸습니다. 제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 가출 안해본 사람은 잘 모를 거예요. 그리고 방금 전 너무너무 멋진 화분 하나가 배달되었어요. 퇴원을 축하한다고 시온성가대 지휘자님께서 보내주셨더군요. 너무너무 감사해요. 매주 거르지 않고 병원에 꼭 와주시고. 정말 긴 병에 효자 없다는데 하나님 사랑은 절대 그렇지가 않네요.
저는 알아요. 제가 이렇게 집에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제가 잘 참아서가 아니란 걸요. 모두의 사랑과 눈물어린 기도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다는걸 알아요. 감사해요. 아직 모두 끝난 게 아니지만 이렇게 행복한 날 맞게 하시고 더 기쁜 날을 소망하게 하신 주님. 온몸에 남은 상처,짧아진 여덟개의 손가락. 이 모든 것은 주님이 날 사랑하신 증거,하나님이 다녀가신 흔적임에 감사합니다.
거울 보기 겁나는 얼굴. 10년후에 제가 사고 얘기를 하면 “전혀 몰랐어요. 화상당하셨었어요? 이 얼굴이?”라고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치유받길 소망해요. 10년후에요. 얼굴만이라도요. 덤으로 사는 인생. 처음부터 버렸던 욕심,이제 와서 주섬주섬 담고 불행해지지 않도록 기도할 거예요. 감사해요. 정말 감사해요”(2001년 3월7일)
*이식피부 당겨 찢어질듯한 고통
이식한 피부는 자꾸만 작아지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 이식했을 때의 모습은 시간이 지날수록 없어져가고 당겨져서 완전히 다른 모습을 갖게 합니다. 퇴원하고 집에 돌아와서 살이 당기는 찢어질 듯한 고통에 아침마다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삼켜야 했습니다.
제 스스로 ‘고달픈 나의 인생’이라고 할 정도로 집으로 돌아와서 느끼게 된 기쁨만큼이나 이겨내야 할 현실은 참으로 고달픈 것이었습니다. 이식받은 피부가 가려워서 잠도 푹 잘 수 없었습니다. 목과 턱은 완전히 당겨져 내려가서 흘러내리는 침 때문에 입에는 늘 손수건을 물고 다녀야만 했습니다.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흘리는 게 더 많아서 밥먹을 때는 수건을 깔고 먹어야 했고 당겨지는 피부를 늘이기 위해 매일 물리치료와 운동을 해야 했습니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관절과 근육이 굳어버리기 때문에 게을리할 수 없었습니다. 늘 동생이 손을 못쓰게 될까봐 걱정하는 오빠랑 매일 싸우고 울며 달래고 애원하기를 반복하며 운동을 했습니다.
현실은 고달프고 힘들었지만 제겐 소망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애원하고 매달렸을 때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어느날 저녁 저는 안경을 끼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습니다. 안경없이 보았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렇게 웃다가 제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평범한 스물네살짜리 여대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전과는 다른 꿈을 꾸어야 합니다. 영화 같은 사랑 얘기에 가슴 들뜨기엔…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날 밤 저는 엄마에게 교회에 가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엎드려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 어떡하실 거예요. 이제 어떡하실 거예요. 하나님 살아계시잖아요. 전지전능하시잖아요. 저 좀 도와주세요. 저 좀 도와주세요”
그 다음날 주일 예배때 저는 찬양을 하다가 속이 상했습니다. 저 무대 위 성가대 자리가 아닌 여기 이 자리에서 남에게 보일까 봐 모자를 눌러쓰고 가면을 쓰고 흐르는 침 때문에 수건을 입에 물고 앉아 있는 현실이 혹시나 꿈은 아닐까. 내가 아주 긴 악몽을 꾸는 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 말도 안되는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이 속이 상했습니다.
찬양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고 뭐고 저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제게 들려주세요. 이제 저 어쩔 건지 말씀 좀 해주세요”
찬양이 끝나고 목사님 설교가 끝났습니다. 목사님이 단상에서 내려와 제 옆자리에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두 팔로 감싸안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선아. 내 사랑하는 딸아. 내 너를 세상 가운데 세우리라. 아프고 병든 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게 하리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는 상했던 마음이 풀어졌습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고 전에 함께 했던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 할 시온성가대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저는 종교 영화의 주인공입니다. 하나님이 시나리오를 쓰시고 감독까지 하는 기독교 영화입니다. 주인공의 실수로 조기 종영 위기를 맞았던 이 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주인공이 언제까지 고난을 받을지 아직은 모릅니다. 그러나 곧 감독이신 하나님께서 그녀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 푸른 초장에 누이실 것을 믿습니다. 분명 하나님의 메시지를 담은 영화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을 믿습니다.
*이식피부서 눈썹 자라 온가족 감격
상황은 나빴지만 저는 날마다 좋아졌습니다. 기대한 것만큼 아주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하나님은 제가 낙심하고 울고 있을 때에도 일하시는 분이셨습니다. 다물어지지 않던 입이 다물어졌고 드디어는 입에 수건을 물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입술이 닿지 않아 ‘오빠’라는 발음을 하지 못해 늘 ‘오까’라고 불러서 생긴 오빠의 애칭은 그야말로 애칭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식한 피부를 뚫고 눈썹이 하나 난 것을 보고 온 식구가 감격해서 울었습니다. 가려워서 먹던 약도 점점 줄게 되고 밤에 괴로워서 주무시던 아빠를 깨워 부르는 날도 적어졌습니다.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던 손도 움직이고 단추도 채울 수 있게 되고 혼자서 옷도 입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4월 저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저의 이야기를 글로 써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이만큼 고생했다”고 자랑하기 위함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을 울리기 위해서라든가 동정을 받기 위해서 쓰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 누구도 살 수 있을 거라 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나를 이렇게 살리셨고 또 사랑하셨음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부디 제 이야기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시길 기도합니다”
처음에는 지인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나누기 위해 만들었던 홈페이지인데 지금은 이곳 저곳에서 기사도 많이 나오고 해서 이제는 정말 많은 분들과 제 삶에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지선이의 주바라기’라는 이름의 제 홈페이지(http;//www.ezsun.net)는 처음 만들던 마음대로,기도대로,아니 그보다 훨씬 더 크고 귀하게 쓰임받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귀한 만남들이 있게 하셨고 무엇보다 “다시 교회에 나가기로 했다”“지선씨가 믿는 하나님을 나도 믿어보고 싶어졌다”라는 고백의 글들을 볼 때마다 정말 기쁘고 감사할 뿐입니다.
이 작고 보잘 것 없는 저를 세우시고 사랑받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저는 아직,여전히 많이 부족하지만 하나님은 제가 받은 은혜를 글로 쓰게 하셨고 나누게 하셨습니다.
제 글에 감동받았다고 하시는 많은 분들의 글 앞에서 저는 아주 많이 부끄러워지지만 정말 일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저를 통해,제 이야기를 통해,단 한명의 영혼이라도 하나님께 돌아온다면,단 한명이라도 고통스러운 현실속에서 죽음이 아니라 삶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된다면 제 아픔과 고난은 충분히 의미있고 가치있는 것이 됩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린도후서 1장 4,5절)라는 말씀처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제 고난이 위로가 되고 사랑이 되고 희망이 되길 원합니다.
세상의 눈으로만 보면 동정거리밖에 안되는 이야기이지만 제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위로를 통해 제 이야기가 하나님 안에서 정말 가장 값진 것으로 쓰임받으리라 믿습니다. 희망의 메시지가 되게 하시리라 믿습니다. 제 상처와 제 외모의 부족함과 짧은 손가락이 그저 장애로만 남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법칙에 감사드립니다.
*‘험한세상의 다리’ 되신 하나님
땅겨진 목 피부 때문에 저는 턱도 없어졌고 등도 굽어져 척추엔 압박 골절이 생겼고 고개를 들고 앞을 보는 것조차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2001년 7월과 8월 두차례에 걸쳐 목부분에 피부이식을 받았지만 퇴원을 하기도 전에 저는 다시 피부가 땅기는 것을 느꼈습니다.
물론 수술하기 전보다는 훨씬 좋아졌지만 고생했던 만큼 그리고 기대만큼은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얇은 피부를 떼어서는 열 번을 수술해도 마찬가지일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병원에서 목을 펴기 위해 수차례씩 같은 수술을 받는 분들을 보아왔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고자 했고 미국과 일본의 병원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알아보던 중,미국측병원의 어마어마한 수술비용을 감당할 수 없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일본에서 너무 귀한 의사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정말 기대하는 마음으로 일본행을 택했습니다.
저는 지금 일본 도쿄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치료를 위해서 온 줄 알았습니다. 미국과 일본을 놓고 제가 기도하고 선택한 것인 줄로 착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중앙영광교회 이용규 목사님을 통해 신앙 훈련을 받으며 그 안에서 공급해주시는 영적인 축복과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께서 저를 굳이 일본으로 보내신 크신 이유를 깨닫게 됐습니다.
요셉을 노예로 팔리게 해 애굽으로 보내셨던 것처럼 다니엘을 포로로 잡히게 해 페르시아로 보내셨던 것처럼 제게 화상과 치료 그리고 수술은 그저 구실로써,1차적인 목적으로 저를 일본으로 보내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일본에 와서 3번의 수술을 받았고 저는 드디어 편하게 목을 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전보다 훨씬 편해지고 좋아진 모습도 더할 수 없는 감사의 제목이지만,특히 이곳에서 더욱 깊고 풍성하게 느끼게 된 하나님과의 만남은 정말이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이고 기쁨입니다.
지금은 일본어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있고 내년 10월 학기에는 심리학과 대학원에 진학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상담심리학을 공부해서 아픔이 있는 분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위로하고 치료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저는 저를 잃음으로 더 많은 사람을 가슴으로 안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고난이 아니면 얻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누구나 나름의 크고 작은 아픔을 안고 사는 이 세상에서 그런 아픔을 나누고 또 그것이 치유받아야 할 아픔이라면치유받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상담자가 가져야 할 첫번째 조건은 내담자와의 ‘공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주는 것,이제 저는 적어도 이제까지 머리로 하던 것들을 마음으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정으로 감사드릴 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한 일본선교를 위해 하나님께서 저를 쓰시겠다면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더 멀지만,여전히 수술이 필요한 부분들이 많지만 저는 기쁨으로 가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더 험할 때도 지켜주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저의 모든 것을 책임져주실 분이시라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여기,제 안에,제 모습 속에 살아계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정리=김병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