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지난 4일 오후 5시45분쯤 지하철 7호선 상봉역 근처 인력개발 사무소 2층엔 남자 12명이 앉아 있었다. ‘지옥의 알바’라 불리는 ‘추석 단기 택배 알바’ 지원자들이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이들은 머리가 희끗한 아저씨부터 뿔테 안경을 낀 청년까지 다양했다.
오후 6시 지원자들은 사무실 앞에 서 있던 버스에 올랐다. 1시간여를 달려 경기도의 한 택배회사 물류센터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10분 간격으로 쉴 새 없이 버스가 도착해 20∼30명씩 ‘알바’들을 내려놓고 있었다. 오후 7시50분쯤 되자 400명 넘게 모여 물류센터가 북적였다.
오후 8시 본격적으로 작업이 시작됐다. 추석 택배 물류 알바는 크게 세 가지 작업으로 나뉜다. 물류센터에 접수된 택배 화물을 트럭에서 내리는 ‘하차’, 이를 배달 지역별로 나누는 ‘분류’, 다시 각 지역으로 갈 트럭에 싣는 ‘상차’. 이 세 작업이 유기적으로 이뤄져야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끊임없이 밀려드는 화물을 바로바로 처리할 수 있다.
이날 알바로 참여한 기자는 경기도 안성행 ‘상차’ 작업에 배치됐다. 첫 물품은 쌀이었다. 20㎏ 쌀 포대 8개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화물이 들어오면 일단 트럭 주위에 차곡차곡 쌓아야 한다. 낑낑대며 5포대쯤 옮겼을 때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도자기 세트가 들어왔다. 그 뒤로 타이어도 보였다. 순식간에 물량이 밀렸다.
‘분류’ 라인의 관리자와 인부가 동시에 기자를 향해 소리쳤다. “야! 빨리 안 해. 들어오면 바로 옆으로 치워.” 작업 10분 만에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그러나 포도 복숭아 등 과일부터 살아 있는 물고기, 장난감, 난(蘭)까지 다양한 화물이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왔다.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했다.
보통 트럭 하나에 짐을 다 싣는 데 40분쯤 걸린다. 2명이 화물을 밀고 옮기면 다른 2명이 트럭에 쌓는다. 이 작업을 6번 반복하자 팔이 떨어질 듯 아팠다. 쌀 포대를 나르다 삐끗한 허리는 쑤셨다. 트럭 하나를 채워 보내면 곧바로 대기하던 빈 트럭이 자리를 채웠다. 밀려드는 차량을 보며 한숨쉬던 기자에게 알바생 박모(39)씨는 “생각을 버려. 손에 닥치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져”라고 했다. 찜통 같은 물류센터 안에서 어떤 이들은 아예 웃통을 벗고 일했다.
택배 알바 작업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전반부인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7시간 동안은 휴식 시간이 없었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자 “시간 없으니 대충 트럭 옆에서 해결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옆에 정수기가 있었지만 역시 ‘시간이 없어’ 물을 마시지 못했다. 회사에서 제공한 빵과 음료를 교대로 먹는 데 5분이 걸렸다. 누군가 10여분 자리를 비우자 “그럴 거면 집에 가라”는 주변 사람들의 질타가 쏟아져 작업장 분위기는 한순간 사나워졌다.
5일 오전 3시. 전반부 작업이 끝나니 늦은 저녁식사가 나왔다. 이걸 먹으면 일당에서 5000원이 공제된다. 다리가 풀리고 정신이 멍해 대기실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포기하고 떠나는 사람들이 보였다. 화장실 가는 척하면서 집에 가버리는 것이다. 여러 번 이곳에서 알바를 했다는 B씨(40)는 “도망가는 놈들 때문에 남은 사람이 더 힘들다”고 했다. 1시간 휴식이 끝나고 다시 작업이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격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통상 오전 7시30분쯤 작업이 끝난다. 그러나 화물이 남아 있으면 일은 계속 이어진다. 모든 물량이 트럭에 실릴 때가 ‘작업종료’ 시점이다. 이렇게 해서 받는 일당은 9만여원. 군대 시절보다 고된 하루였다는 대학생 변모(25)씨는 “힘들 거라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혀를 내둘렀다. 각 가정에 찾아가는 추석 선물은 이런 ‘전쟁터’를 거쳐 배달되고 있었다.
글·사진=국민일보 쿠키뉴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