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의 금요일, 시사소설 ‘풍자’가 현실에서 일어나다…‘포도대장’ 채동욱 전격 사퇴>
[친절한 쿡기자] 친절한 쿡기자는 지난 13일 새벽 [전정희의 시사소설 ‘조선 500년 익스트림’] 코너에서 <13일의 금요일 검찰총장 파면…김해 귀양>이란 제목으로 시사소설을 게재했습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조선 숙종 때 포도대장(지금의 검찰총장)이 권력 암투 과정에서 모함을 받고 김해로 유배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12시간이 조금 지난 당일 오후 황교안 법무장관이 혼외자식 의혹에 휘말린 채동욱 검찰총장에 대해 진상규명을 위한 감찰을 발표하자 채 총장은 전격 사의를 표명하고 귀가했습니다. 조선시대엔 귀양 가면 그걸로 끝이었던 것과는 달리 만천하에 언로가 트인 현대사회에선 그것으로 파문이 가라앉기는커녕 더 큰 파고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검사들의 반발이 예상외로 커질 조짐을 보이자 청와대가 15일 직접 “진상규명이 우선”이라고 천명하고 나섰습니다.
검사들의 첫 포문은 서울서부지검 평검사들이 날렸습니다. 이들은 채 총장 사퇴 직후 평검사회의를 갖고 채 총장의 사퇴는 재고돼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김윤상 감찰1과장, “채동욱 호위무사 긍지 삼아 사는게 낫다”>
이어 대검찰청 김윤상(44·사법연수원24기) 감찰1과장이 14일 검찰 내부통신망에 공개적으로 반발하는 글을 남기고 사표를 던졌습니다. 첫 사표를 던진 것입니다. 다음은 김윤상 과장이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에 올린 <내가 사직하려는 이유>
1. 또 한번 경솔한 결정을 하려 한다. 타고난 조급한 성격에 어리석음과 미숙함까지 더해져 매번 경솔하지만 신중과 진중을 강조해 온 선배들이 화려한 수사 속에 사실은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아온 기억이 많아 경솔하지만 창피하지는 않다. 억지로 들릴 수는 있으나, 나에게는 경솔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법무부가 대검 감찰본부를 제쳐두고 검사를 감찰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경우다. 그래서 상당 기간의 의견 조율이 선행되고 이 과정에서 마찰이 빚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검찰의 총수에 대한 감찰착수사실을 언론을 통해서 알았다. 이는 함량미달인 내가 감찰1과장을 맡다보니 법무부에서 이렇게 중차대한 사안을 협의할 파트너로는 생각하지 않은 결과이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내 본연의 고유 업무에 관하여 총장을 전혀 보필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책임을 지는 게 맞다.
둘째, 본인은 소신을 관철하기 위해 직을 걸어놓고서 정작 후배의 소신을 지켜주기 위해 직을 걸 용기는 없었던 못난 장관과 그나마 마음은 착했던 그를 악마의 길로 유인한 모사꾼들에게, 총장의 엄호 하에 내부의 적을 단호히 척결해 온 선혈 낭자한 내 행적노트를 넘겨주고 자리를 애원할 수는 없다. 차라리 전설속의 영웅 채동욱의 호위무사였다는 사실을 긍지로 삼고 살아가는 게 낫다.
셋째, 아들딸이 커서 역사시간에 2013년 초가을에 훌륭한 검찰총장이 모함을 당하고 억울하게 물러났다고 배웠는데 그때 아빠 혹시 대검에 근무하지 않았냐고 물어볼 때 대답하기 위해서이다. '아빠가 그때 능력이 부족하고 머리가 우둔해서 총장님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단다. 그래서 훌훌 털고 나왔으니까 예쁘게 봐줘'라고 해야 인간적으로나마 아이들이 나를 이해할 것 같다.
2. 학도병의 선혈과 민주시민의 희생으로 지켜 온 자랑스런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권력의 음산한 공포속에 짓눌려서는 안된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딸이 'Enemy of State'의 윌 스미스처럼 살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된다.
모든 것은 분명해졌다. '하늘은 무너져도 정의를 세워라'는 경구를 캠퍼스에서 보고 다녔다면 자유와 인권, 그리고 정의를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쳐야 한다. 어떠한 시련과 고통이 오더라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위한 절대가치는 한치도 양보해서는 안된다.
미련은 없다. 후회도 없을 것이다. 밝고 희망찬 미래를 만들기 위해 난 고개를 들고 당당히 걸어나갈 것이다.
<박은재 미래기획단장, “장관님, 왜 그러셨어요? 검찰 독립성 훼손, 그렇게 가볍게 보였나요?>
김 과장에 이어 박은재(46·사법연수원 24기) 미래기획단장도 이날 오후 4시20분쯤 검찰 내부통신망(이프로스)에 '장관님께'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습니다. 다음은 박은재 대검찰청 미래기획단장이 올린 편지 전문.
장관님께
장관님, 왜 그러셨습니까?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누구보다 소신있게 검사생활을 하셨던 장관님이 이 상황에서 검찰총장 감찰지시라니요. 조직의 불안과 동요를 막기 위해서라구요? 검찰총장의 언론보도정정청구로 진정국면에 접어든 검찰이 오히려 장관님의 결정으로 동요하고 있습니다.
거두절미하고 한 가지 딱 한 가지만 설명해 주십시오. 도대체 어떠한 방식의 감찰로 실체를 규명하려고 하셨습니까? 유전자 감식, 임모 여인의 진술외에 이런 사안을 밝힐 다른 객관적 방법이 있는지요? 제 아둔한 머리로는 도무지 그 방법이 떠오르질 않습니다.
근데 유전자 감식, 임모 여인의 진술확보가 감찰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셨습니까? 그건 수사로도 불가능합니다. 수사를 함에 있어 객관적 증거 확보에 자신이 없으면 수사에 착수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배웠습니다. 객관적 증거없이 이것저것 파기식 수사를 하면 당사자에게 너무도 큰 피해를 주기 때문이지요.
저는 장관님을 믿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수사를 총 책임지고 있는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이니까 사전에 충실한 감찰계획이 서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검찰총장을 상대로 아니면 말기 식 감찰을 지시하였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객관적 자료 발견을 위한 감찰 방법을 검사들, 넓게는 국민들에게 공개해 주십시오. 동요하는 검사를 진정시킬 유일한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만일 객관적 자료를 확보할 감찰에 대한 치밀한 생각도 없이 감찰을 지시한 것이라면 그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검찰의 직무상 독립성을 훼손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검찰의 존립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상황은 대다수의 국민이 특정 세력이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정권에 밉보인 총장의 사생활을 들추어 총장을 흔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검찰의 직무상 독립성이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느닷없이 검찰총장 감찰이라니요? 오비이락이라고 이런 상황이면 오히려 감찰의 근거와 방법이 확실해도 신중에 신중을 기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정 정치세력의 마음에 들건 안 들건 국정원 댓글 사건은 직무상 독립성이 보장된 검찰의 결정입니다. 장관님은 그 과정에서 검찰총장에 대한 지휘권을 행사하실 수도 있었고 잘못된 결정이었다면 그 재판결과에 따라 책임을 물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해 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다면 총장이 책임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렇게 급하셨습니까? 검찰의 직무상 독립성 훼손문제가 그렇게 가벼워 보이셨습니까? 이건 검찰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상황이 이렇다면 법원의 소신있는 결정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검찰총장을 헌신짝처럼 날려보내는 상황인데요.
장관님 말이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혹시 하는 노파심에서 말씀드리지만 저와 채동욱 총장의 개인관계 때문에 제가 이런 글을 올린다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저는 채동욱 총장과 한번도 같이 근무를 해 본적이 없고, 사석에서의 모임도 거의 없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올리는 것은 절대 채동욱 총장 개인이 안 되었고 불행해서가 아닙니다. 법무부 검찰국의 과장도 해 본 사람으로서 장관님과 법무부, 그리고 검찰을 위해 드리는 말씀입니다. 장관님, 제발 장관님의 진정으로 검찰을 위하신다면 이번 사건 감찰계획을 공개해 주셔셔 제 무지를 깨우쳐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검찰엔 미래가 없습니다.
검찰국장님께
국장님 왜 그러셨습니까?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누구보다 소신있게 검사생활을 해 오신 국장님이 이 상황에서 검찰총장 감찰지시를 왜 못 막으셨습니까? 법무부 감찰관도 해외출장중인 상황에서 국장님이 막으셨어야지요. 검찰의 직무상 독립성을 위해서 반드시 막으셨어야 합니다. 참모는 윗분의 뜻을 잘 받들어야 하지요. 그러나 윗분의 결정이 잘못되었을 때는 직을 걸고라도 막아야 하는 것이 참모의 임무라고 배웠습니다.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국장님 제가 장관님께도 말씀을 올렸지만 지금 검사들의 동요를 막을 방법은 객관적 자료를 확보할 감찰방법 공개밖에 없습니다. 국장님 제발 장관님을 잘 설득하셔서 그 방법을 공개해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검찰엔 미래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 9. 14. 대검찰청 미래기획단장 박은재 검사 올림
<검사들의 반발 줄이어…추석 연휴 앞둔 ‘채동욱 감찰’ 절묘한 타이밍>
오늘(15일)은 서울북부지검 평검사들이 회의를 열고 부산지검 검사들은 내일(16일) 평검사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라는 소식입니다. 이런 추이라면 검사 수가 가장 많은 서울중앙지검 검사들도 평검사회의를 소집할 것으로 보입니다. 추석 연휴가 코 앞에 다가오긴 했지만 사태의 파장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양상입니다.
<靑, 채동욱 사표수리? 진상규명이 우선>
이런 시점에서 청와대가 지난 6일 조선일보의 첫 의혹 제기 이후, 그리고 지난 13일 채동욱 총장이 사의를 표명한 이후 줄곧 침묵을 지켜왔던 입을 15일(일) 오전 열었습니다. 추석 연휴를 사흘 앞둔 시점입니다. 청와대가 첫 입장을 밝힌 시점과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과 성격 규정을 보면 뭔가 ‘개념 발언’을 한 느낌이 역력합니다.
이정현 홍보수석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채 총장에 대한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면서 “진상규명이 우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진실이 규명되면 깨끗이 해결될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 수석은 이어 “이번 사안은 검찰의 독립성 문제라기보다는 검찰의 신뢰와 명예에 관한 문제”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수석과 청와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청와대는 검찰의 독립성 훼손이라며 반발하는 검사들의 견해와는 사뭇 다른 것만은 분명합니다.
<檢 독립성? 신뢰와 명예 문제야…성깔있는 검사들은 알랑가몰라>
우선 황교안 법무장관이 지난 13일의 금요일에 채동욱 총장의 감찰 사실을 발표한데 이어 휴일인 15일 추석연휴를 사흘 앞둔 시점에 적극 입장을 피력하고 나선 시점을 보면 치밀하고도 절묘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황 장관이 평일에 채 총장 감찰 사실을 발표했다면 검사들의 반발은 지금보다 훨씬 컸을 것이란 예상은 불 보듯 뻔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검사들이 반발할 시간(?)은 16일(월)과 17일(화) 오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17일 오후부터는 사실상 긴 추석 연휴에 돌입할 것이기 때문에 집단행동을 해봤자 여론의 주목을 받기는 쉽지 않습니다. 청와대는 할말은 다하고 검사들의 반발 움직임에 대해서는 김빼기 작전을 펼친 양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수석은 채 총장에 대한 진상규명이 먼저이고 사표는 아직 수리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채 총장이 빠른 시일 내에 적극적으로 진실을 밝히든지 어떤 방법으로든지 소명을 하는 것이 이 문제의 해결 방안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할지를 찾다가 법무장관의 감찰 지시가 내려진 것 같습니다. 청와대가 이렇게 전면에 나선 것은 그만큼 채 총장의 의혹에 대한 자신감의 발로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미 뭔가 확실한 물증을 잡았고 그 물증을 통해 채 총장을 만신창이로 만들 자신감 말입니다. 아직 사표수리를 안한 것도 ‘진상규명’이란 명분을 살리는 동시에 검사들이 반발하면 할수록 채 총장은 망신만 더 당할 것이라는 암시 같기도 합니다. 이런 관측이 맞다면 추석 연휴를 거치면서 채 총장의 ‘혼외자식’에 대한 방증들이 추가로 쏟아져 나올 개연성이 커 보입니다.
이 수석이 이번 사안은 검찰의 독립성이라기보다는 검찰에 대한 신뢰와 명예에 관한 문제라고 강조하고 나선 것도 뭔가 목에 가시가 걸린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총장 개인의 도덕성 문제를 검찰의 독립성 문제로 끌고 가려는 것은 성깔있는 정치 검사들의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보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 말입니다. 누가 그것을 했다느니 하는 의도적 프레임으로 몰아서 청와대에 책임을 묻고 본질과 다른 방향으로 가서 국론을 분열시키는 것은 박근혜 정권에서는 묵과할 수 없는 행위라는 평소 인식과 맞물려 있는 것 같습니다. 이와는 별개이지만 이 홍보수석은 이날 기자들에게 민주당이 채 총장의 의혹에 대해선 진실규명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며 “의아스럽다. 왜 정치적으로 악용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맥락으로 본다면 이 수석의 입장 표명은 반발하는 검찰을 향한 청와대의 경고장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채 총장의 전격 사의 표명 이후 검찰 내부에서 나왔던 “이 정권, 참 무섭다”는 반응이 이젠 어떻게 바뀔지 자못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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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쿠키뉴스 정재호 디지털뉴스센터장 jhjung@kmib.co.kr